전체기사

2025.11.25 (화)

  • 흐림동두천 6.5℃
  • 흐림강릉 11.3℃
  • 흐림서울 8.5℃
  • 대전 8.0℃
  • 박무대구 6.7℃
  • 연무울산 9.9℃
  • 흐림광주 9.4℃
  • 연무부산 12.0℃
  • 흐림고창 8.9℃
  • 흐림제주 12.0℃
  • 흐림강화 6.5℃
  • 흐림보은 6.5℃
  • 흐림금산 7.3℃
  • 구름조금강진군 10.0℃
  • 구름조금경주시 5.8℃
  • 구름조금거제 13.3℃
기상청 제공

박웅준의 역사기행

지상에 펼쳐진 미륵의 유토피아 속리산 법주사

URL복사



[시사뉴스 박웅준 칼럼니스트]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처럼 자신이 믿는 것을 성스럽게 만든다.”(프랑스 언어학자·철학자·종교사가·비평가 에르네스트 르낭, 1823-1892)

구불구불한 말티고개를 넘어 법주사로 가는 길에 정이품송을 봤다. 예전의 당당했던 모습은 간데없고 지지대에 힘겹게 의지해 있는 모습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고정된 것, 영원한 것이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대변하고 있는 듯 했다. 

이 같은 무상(無常)의 범위 안에는 우리가 사는 이 세계도 포함되어 있음을 불교는 설한다. 지금은 많이 변한 모습이지만 초창기 법주사는 그것을 세속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하여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번 답사는 그 흔적을 확인하고자 했는데 고목(古木)에서 그 첫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 공경과 화목, 자비로운 유토피아

경내에 들어서자 금동미륵불상이 눈의 띈다. 현대에 만들어졌지만 이 사찰이 신라의 열렬한 미륵 신앙자였던 진표 율사와 제자 영심이 중흥시킨 미륵도량이라는 것을 강하게 인식시키려는 듯 크고 위압적이다. ‘미륵래시경(彌勒來時經)’에는 먼 미래에 도래할 미륵의 신장이 십육장(十六長)이라고 한다. 1장을 3m라고 하면 48m의 거인으로 출현하는 셈이다. 이 때문인지 중국 사천성에 산을 깎아 만든 71m 크기의 낙산대불이 미륵이고 돈황막고굴(敦煌莫高窟)에서 가장 큰 불상인 33m에 달하는 제96굴의 상도 미륵이다.

탈레반이 2001년 폭파시킨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Bamiyan) 대불(53m)과 우리나라 최대의 석불인 고려시대의 관촉사석불(약 18m)도 미륵으로 알려져 있다. ‘속리산대법주사사적기’에 의하면 지금 법주사의 금동미륵대불이 있던 자리에는 원래 용화보전(龍華寶殿)이라는 전각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현 경내의 가장 큰 전각인 대웅전이 28칸인데 그보다 큰 2층 35칸이었다고 하니 그 내부에 미륵대불이 모셔져 있었고 사찰의 중심이었음은 자명하다.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에는 미륵이 도래할 때는 인간 수명이 아주 길어 병으로 앓는 일이 없이 8만4000세를 살며 여인은 500세에 결혼을 한다고 한다.

또한 미륵이 태어나는 케투마티(Ketumati)라는 성은 항상 풍요하고 아름다우며 청정한 곳이다. 밝은 구슬이 밤낮으로 밝혀주며 대소변이 생기면 땅이 열리고 그 속으로 사라진다. 도둑질과 기근도 없으며 사람들은 항상 자비로운 마음으로 서로를 공경하고 화목하게 산다.

재물을 보면 “예전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서로 죽이고, 도둑질하고, 속이고, 거짓말을 하면서 죄의 인연을 키웠지”라고 생각한다.

영국의 토마스 모어가 1516년에 쓴 소설 ‘유토피아(utopia)’에서도 계급이 없으며 하루에 6시간만 일해도 매우 풍요롭게 사는 나라를 그리는데 그 나라에서도 귀금속이나 보석을 하찮은 것으로 여겨 죄수에게 금 족쇄를 채울 정도라고 묘사하고 있다. 동양과 서양이 생각하는 이
상향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다. 

◇ 미륵불이 석가모니의 가사를 입은 이유

불교는 여기에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부여하는데 바로 거대한 미륵상의 조성이다. 현재 법주사의 미륵불입상은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다. 과거에는 그 역할이 더욱 지대했을 것이다. 또 다른 흔적은 없을까. 경내를 돌아다보니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두 개의 석조물이 눈에 띈다. 석연지(石蓮池)와 희견보살입상(喜見菩薩立像)으로, 각각 국보64호 보물1417호인 중요 유물들이다. 

지금은 미륵불상 좌우에 위치해 있지만 원래는 미륵불상 앞에 일렬로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륵과 깊은 연관이 있는 유물로 봐야할 것이다. 조선시대 기록인 ‘법주사사적기’에 의거한 두 유물의 명칭은 미륵신앙과는 관련이 크게 없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다르게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두 유물이 만들어진 신라시대 본래의 의미를 복원할 필요가 있다.

우선 석연지를 살펴보면 높이 1.95m에 둘레 6.65m의 거대한 석조물이다. 물을 채우고 연꽃을 띄워 불국토의 연지를 모방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높다. 물을 채우기에도 그 위의 연꽃을 보는 것도 힘든 구조이다. 화려한 장식과 정성스럽게 만든 받침으로 보아 유물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추정하건데 이것은 발우(鉢盂, 승려의 식기, 그릇)일 것이다. 경전에 의하면 석가모니가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제자인 가섭존자에게 맡겨 미래에 미륵불이 내려올 때 전달하라는 의무를 지어준다.

가사와 발우는 석가모니불이 미륵불에게 주는 부처의 증표인 것이다. 발우를 묘사한 통도사 봉발탑(보물 제471호)도 용화전(龍華殿=미륵전) 앞에 있듯이 미륵과 발우는 중요한 연결 관계를 갖는다. 그 크기가 거대한 것도 내려오는 미륵의 크기에 맞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사는 어디 있을까? 그 가사는 이미 하생한 미륵이 입고 있다. 미륵불의 가사는 석가모니의 가사인 것이다.

◇ 희견보살상은 미륵 아닌 천신의 형상

희견보살상도 미륵과 관련이 있을까? 역시 조선시대 기록에 의해 향로를 머리에 이고 고행하는 희견보살로 알려져 있지만 미륵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그 모습으로 인해 당나라때 유행한 곤륜노(崑崙奴)상이라는 설이 있지만 이 역시 미륵과의 연관성은 찾기 어렵다. 미륵과 연관되어 의발(衣鉢)을 이고 있는 가섭상이라는 설도 있지만 가섭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그 정체는 무엇일까? 

이는 결국 부처님의 말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석가는 자신이 열반한 후 불법의 흥망성쇠를 말하며 발우가 세상과 천계를 떠돌아다니다가 미륵불이 하생할 때 사리와 함께 나타난다고 예언한다. 이 두 가지 석가의 유물은 미륵에게 전해지며 신통력을 발휘해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석연지는 발우임이 다시 증명이 되고 희견 보살상이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은 향로가 아닌 사리가 들어있는 용기라고 할 수 있다. 

상의 얼굴을 보았을 때 흑인의 모습을 본딴 곤륜노라기보다 서역인 또는 사나운 천왕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어 사리를 받들어 모시는 천신(天神)으로 봐야할 것이다.

머리에 이고 있는 자세도 정대(頂載, sirasodvahata)라 하여 부처의 유물을 옮기거나 받칠 때 공경의 의미로 고대 인도의 예법에 기원을 두고 있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머리에 이고 도량을 도는 정대불사(頂載佛事)도 같은 의미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발우와 사리는 석가가 미륵에게 주는 성스러운 유물(relic)로 미륵불과 자연스러운 도상을 이룬다. 이 세 가지가 일직선을 이루던 원 모습을 상상해 볼 때, 신라인들은 미륵이 내려와 석가모니의 유물을 받고 중생을 제도하는 장면을 충실하게 이미지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장소는 세속과 분리된 성(聖)의 세계였으며 그 세계에 들어간 신라인들은 미륵의 세계를 체험하였다.



◇ 법주사, 미륵의 불교적 이상향 품어

한참을 있다 사찰 경내를 빠져나와 주차장까지 이어진 숲길은 아주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이 길을 걸으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경전상의 미륵은 이미 건설된 유토피아에 내려온 것이 아닌가. 고통 없이 8만4000세까지 사는 사람들을 제도할 필요가 있을까? 숙소에 돌아와 경전을 뒤적여 석가모니는 그 나라(케투마티) 사람들은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도 마음 깊이 있을 뿐,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는다”라고 한 말을 찾았다. 

겉으로 아무 걱정이 없는 것처럼 보일뿐 속으로는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미륵은 그 세상에 숨어있는 오욕(五慾)을 발견하고, 사람들이 죽음과 같은 삼악도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알고 출가한다고 말한다. 결국 석가는 미륵을 통해서도 깨닫기 혹은 구제받기 전까지는 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불교의 기본교리를 충실하게 설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것은 깨닫기 위한 방편일 뿐 지상에 완벽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토피아(Utopia)란 단어의 뜻 자체도 그리스어로 ‘없는 곳’에 기원한다. 이러한 개념은 현실도 유토피아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미륵이 오기 전 이상향에 가까운 세상은 사람들이 건설하기
때문이다.

법주사는 미륵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석가의 유물을 받고 사람들을 제도하는 불교적 이상향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이곳을 방문한 옛사람들이 어떠한 생각을 했는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상향의 도래에 대한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인간의 손을 빌어 창조한 불교적 이상향인 법주사. 미래에 존재 하는 진정한 미륵의 유토피아가 펼쳐진 곳이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정치

더보기
백승아 의원 등 “재외한국학교에도 무상교육 유치원·초등학교부터라도 조속히 시행하라”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재외한국학교를 위한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국회에서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백승아 의원과 재외한국학교이사장협의회는 2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늘 우리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가 재외한국학교에 대한 국가적 책임과 지원을 더욱 확대하고, 특히 국내에서 시행 중인 무상교육을 재외한국학교에도 최소한 유치원·초등학교 학생부터라도 조속히 시행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백승아 의원과 재외한국학교이사장협의회는 “재외한국학교는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 자녀들이 대한민국 초·중등 교육과정에 따른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설립한 교육기관이다”라며 “현재 세계 16개국 34개 학교에서 13000여명의 학생, 1200여명의 교원이 한국인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지키며 교육 활동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백승아 의원 등은 “대한민국은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시행하고 있지만 재외한국학교는 여전히 기본적인 교육조차 무상으로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러한 불합리한 현실은 명백한 국가 정책의 모순이며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권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해 심각한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

더보기

사회

더보기
도시정책의 핵심 엔진··· 계획·집행·관리 신속히 추진해야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서울특별시의회 도시계획균형위원회 김원태 의원(송파6, 국민의힘)은 24일 도시공간본부 예산안 심사에서 “신속통합기획은 서울 도시정책 전반을 견인하는 핵심 엔진”이라며 “대상지 확대 흐름에 맞춰 기획·집행·관리 전 과정을 정교한 시스템으로 신속히 처리하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이번 심사에서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지원과 보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실무 역량 강화의 필요성을 짚었다. 그는 “예산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기획의 속도와 품질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운영 기반”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김 의원은 2025년 11월 기준 신속통합기획 집행률이 52%에 머물고 있는 점을 언급하며 “원인행위가 연말로 집중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겠지만, 기획과 집행 간 간극을 줄이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신속통합기획은 초기 계획과 신속한 집행이 맞물릴 때 비로소 성과가 극대화된다”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도시공간본부장은 “집행관리 강화를 통해 불용·잔액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신속통합기획의 추진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의원은 대기업판매부지 도시계획 수립 용역과 관

문화

더보기
판소리로 읽는 한국 근대소설 대표 작가 현진건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서울남산국악당의 상주단체 ‘판소리아지트 놀애박스’의 신작 ‘판소리 쑛스토리 III : 현진건 편’ 공연이 오는 12월 19일부터 20일까지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에서 펼쳐진다. 이 작품은 판소리아지트 놀애박스가 선보여온 단편시리즈의 세 번째 무대다. 앞선 두 번의 시리즈가 프랑스의 대문호 모파상의 단편을 1인극 판소리로 선보였다면, 이번 신작에서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소설가이자 한국 근대소설의 지평을 연 현진건의 작품을 판소리 언어로 풀어낸다. 소리꾼 박인혜가 작창·극본·연출을 맡아 최인환 음악감독과 함께 풍부한 이야기와 섬세한 음악으로 관객을 현진건의 작품 세계로 이끌 예정이다. 공연에서는 현진건의 대표작 △운수 좋은 날 △그립은 흘긴 눈 △정조와 약가 3편을 1인극과 다인극 형식으로 만나볼 수 있다. 박인혜, 이예린, 황지영, 이해원 등 네 명의 소리꾼이 홀로 혹은 함께 소설 속 각 인물의 삶과 비극, 욕망, 사회적 균열을 판소리로 읽어낸다. 현진건의 소설 속 인물들은 때론 비극적이면서도 한심하고, 때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근대적 개인의 초상을 보여준다. ‘판소리 쑛스토리 III : 현진건 편’은 그들의 얼굴 속에서 ‘오늘을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또 만지작…전국을 부동산 투기장으로 만들 건가
또 다시 ‘규제 만능주의’의 유령이 나타나려 하고 있다. 지난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규제 지역에서 제외되었던 경기도 구리, 화성(동탄), 김포와 세종 등지에서 주택 가격이 급등하자, 정부는 이제 이들 지역을 다시 규제 지역으로 묶을 태세이다. 이는 과거 역대 정부 때 수 차례의 부동산 대책이 낳았던 ‘풍선효과’의 명백한 재현이며, 정부가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땜질식 처방을 반복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규제의 굴레, 풍선효과의 무한 반복 부동산 시장의 불패 신화는 오히려 정부의 규제가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곳을 묶으면, 규제를 피해 간 옆 동네가 달아오르는 ‘풍선효과’는 이제 부동산 정책의 부작용을 설명하는 고전적인 공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10.15 부동산대책에서 정부가 서울과 수도권 일부를 규제 지역으로 묶자, 바로 그 옆의 경기도 구리, 화성, 김포가 급등했다. 이들 지역은 서울 접근성이 뛰어나거나, 비교적 규제가 덜한 틈을 타 투기적 수요는 물론 실수요까지 몰리면서 시장 과열을 주도했다. 이들 지역의 아파트 값이 급등세를 보이자 정부는 불이 옮겨붙은 이 지역들마저 다시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만약 이들 지역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