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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준의 역사기행

[역사기행] 낙양의 용문석굴에 새겨진 고구려의 혼



[시사뉴스 박웅준] 중국의 석굴사원들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중국 것으로만 알고 있는 석굴이 사실은 많은 민족의 문화, 역사가 얽혀있고 부처님의 얼굴 마다 저마다의 의미와 만든이의 바람이 조각되어있다. 세계적인 보배이자 유네스코 세계 유산인 용문석굴, 이곳에도 고구려인의 숨결은 어려 있었다.

과거 9개 왕조의 수도 낙양, 이 곳 기차역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가량을 더 가다보면 세계 미술사의 진주 ‘용문석굴’이 그 찬란한 위용을 드러낸다.

용문석굴은 멀리서만 본다면 거대한 개미집을 연상시켜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점점 벌어지는 입을 도무지 다물기 어려워진다.

천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하나 하나 석굴 속 부처의 얼굴에는 당시 사람들의 고행과 염원 그리고 그리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3대석굴이 이민족에 의해 건립된 사연 

중국의 석굴 가운데에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하며 학술적 가치가 높은 3개의 석굴이 있다. 

감숙성 돈황의 막고굴, 산서성 대동의 운강석굴 그리고 하남성 낙양의 용문석굴이다. 각각의 특색을 갖고 있는 이 석굴은 모두 한족이 아닌 이민족 정권에서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돈황 막고굴은 오호십육국시대 저족(氐族)인 전진(前秦)에서 시작됐고, 운강석굴도 선비족(鮮卑族)인 북위(北魏)에서 조성했다. 용문석굴도 북위가 수도를 대동에서 낙양으로 천도해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3대 석굴 모두 중국의 강북을 지배한 이른바 오랑캐 정권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크로드를 통해 유입된 불교는 이민족 정권의 사상적 통치이념으로 적합했다. 대규모 토목공사에 가까운 이러한 불사(佛事)는 국가적 정책이었고, 부처와 황제를 동일시했다. 반면에 한족이 지배한 강남 또한 불교가 융성했으나 국가적 차원의 석굴사원은 조성되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지배세력의 문화적 차이가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효문제의 눈물, 태자의 생모를 죽여 외척을 배척했던 북위

낙양의 용문석굴은 북위의 효문제(467-499, 재위 471-499)가 낙양천도를 하면서 개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낙양은 황하 중류의 남쪽 언덕에 위치해 예부터 천하의 중심지로 여겼던 곳이다. 중국 역사상의 6대 고도(서안, 낙양, 개봉, 항주, 남경, 북경) 가운데 하나로 동한, 조위, 서진, 북위, 수, 당, 후량, 후당, 후조의 도읍이었다. 

효문제가 선비족의 수도인 대동에서 낙양으로 천도한 의미는 새로운 성격의 정권창출에 있었다. 그는 태화 17년(493) 남쪽의 남제(南齊) 정벌을 명목삼아 대군을 이끌고 남하해 낙양에 진을 쳤다. 그곳에서 남제정벌을 반대하는 군신들의 간언에 천도를 조건으로 내건다. 결국 낙양에 머무르며 궁성을 신축하고 다음해(494)에 선조 황제들의 위패를 평성(대동)에서 가져와 정식으로 낙양을 수도로 삼는다. 

효문제는 낙양천도 후 선비어와 선비복을 금지하고 선비족의 성씨인 탁발씨를 원씨(元氏)로 바꾸는 등 적극적인 한화정책(漢化政策)을 실시한다. 효문제는 문명태후 풍씨에게 철저한 한문화의 교양을 받아 신하들과 한시로 응수할 정도로 한문화에 대한 이해가 뛰어났으며 사전(史傳), 경전(經典), 백가(百家), 노장(老裝)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문명태후는 선비족인 북연과 한족인 낙랑의 혼혈로 의도적으로 한족의 문화를 교육한 것이다. 북위에서는 왕자가 태자로 책봉되면 그 생모를 죽이는 관례가 있었다.

이를 자귀모사제(子貴母死制)라하고 외척의 정치세력화를 막기 위한 제도였다. 효문제의 생모라고 하는 이귀인도 효문제가 3살 때 태자로 책봉되자 죽임을 당했고 효문제의 큰아들 순을 태자로 책정하려고 할 때 그 생모인 임씨도 태후가 죽음을 내렸다. 이러한 일을 경험한 효문제는 선비족의 문화를 혐오한 것일까?

이 제도 또한 다른 선비족 문화와 함께 낙양천도 이후 없어진다. 고구려 출신 황후를 위한 파반느 ‘용문석굴’ 북위 효문제(孝文帝, 재위 471-499)는 494년 낙양으로 천도하고 그의 아들 선무제(宣武帝, 재위 499-515)는 평성의 운강석굴을 대신해 낙양의 남쪽 근교에 위치한 이궐산(二闕山)에 석굴을 개착했다. 



이러한 사실은 『위서(魏書)』 「석로지(釋老志)」에 다음과 같은 기록에서 알 수 있다.
“경명(500-504)초에 세종은 대장추경(大長秋卿) 백정(白整)에게 조서를 내려 대경(大同)의 영암사(靈巖寺)석굴(운강석굴)에 준하여 낙수의 남쪽 이궐산에 고조(효문제)와 문소황태후(文昭皇太后:고조의 황후이며 세종의 어머니)를 위해 석굴 2곳을 조영토록 하였다. 

이 석굴은 처음 건립할 때에는 석굴의 정상이 땅과의 거리가 310척의 높이였다. 정시 2년 (505) 중에 이르러 비로소 산의 바위 23장을 깍았다. 대장추경 왕질(王質)은 산을 깎는 것이 너무 높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어 이루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상주하여 아래로 옮겨 평평한 땅에 나아가 땅과의 거리를 1백척, 남북 140척으로 하기를 간청하였다. 

영평 년간(508-513)에 중윤 유등이 상주하여 세종을 위해 또 굴 하나를 (더)조영토록 함으로써 무릇척의 도움을 받았듯이 고씨의 추선공양과 관련있는 국가주도의 대규모 공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했으리라 짐작된다. 고구려 고씨의 몰락 후 빈양동이 완공이 되지 못했고 비슷한 시기의 연화동도 완공이 되지 못한 채 폐기되었기 때문이다.

‘고양동’ 고구려 출신 어머니를 향한 사모곡 사서에서는 기록되지 않고 있지만 용문석굴에서 가장 오랜된 석굴은 고양동이다. 불상의 양식과 남아있는 조상기로 알 수 있는데 그 가운데 북해왕원상조상기(北海王元詳造像記, 498년)를 주목해야 한다.

“태화18년(494) 12월 11일 황제는 남쪽의 폭도 소씨(남제의 명제)를 무찌르기 위하여 친히 군대를 지휘했다. 군대는 낙수 유역에서 두 편으로 나눠졌다. 전진하거나 주둔하는 군인들의 함성이 대궐 밖에서 나눠졌다. 태비께서는 나의 원정에 좋은 충고를 해 주셨다. 나는 효심이 북받쳐 말을 할 수 가 없었고,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같은 날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셨고, 이수에는 나는 모자의 평화를 기원했다. 태화22년(498) 9월 23일 미륵불상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나는 채식연회를 준비하고 나의 심정을 표현하기 위해 조상기를 썼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나의 소망을 다시 빌었다. 

나는 어머니와 내가 오랫동안 번영하고, 내외의 권속들이 시종일관 영광스러운 시간을
즐기고 모든 중생들도 같은 복을 나누기를 빌었다. 북위 태화23년 9월 23일 시중호군장군북해왕 원상 만들다.”

원상(元詳, 476-504)은 헌문제의 7번째 아들이자 효문제의 배다른 형제로 태화 9년(485)에 왕으로 책봉되었으며 후에 시중이 되고 태화 23년(499)에는 사공공(司空公)이 됐다. 경명 2년(501)에 태부(太傅)가 되나 정시 원년(504) 29세때 누명을 쓰고 죽었다. 

그가 불상을 조성한 이유는 어머니를 위해서인데 이름은 고초방(高椒房)이다. 사서에 자세히 나오지 않아 확실치 않지만 고씨성을 가진 황실가 여인은 고구려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위서>에는 북해왕 원상이 안정왕 원섭의 부인 고씨를 간음했고 이 일로 어머니에게 크게 질책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어머니가 말하길 북해왕은 부인과 비빈이 많은데 왜 고려 여인과 간통했느냐고 꾸짖었다. 

여기서도 고씨가 고구려인 임을 확실히 하고 있기 때문에 고초방도 고구려인 일 것이다. 고양동에는 원상과 어머니 고초방을 위해 스님 법생이 만든 불상이 있고 고초방이 손자 보를 위한 불상도 있다. 이로 미루어 가장 먼저 만들어 진 고양동도 빈양동과 같이 고구려 고씨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흥미롭다.

고구려, 중국 다민족 융합 정책의 시작을 만들다




현재 2300개 이상의 굴과 감이 있고 11만의 불상과 60기의 불탑을 확인할 수 있는 용문석굴은 호한융합(胡漢融合)의 증거라 할 수 있다. 서울대 박한제 교수는 위진남북조시대에 호족과 한족이 중국 영토에서 서로 뒤섞여 하나의 문화체제를 융합·형성해가는 현상을 호한체제라고 명했다.

이는 한족과 비한족이 모순과 갈등을 겪으며 상대를 인정하는 공존관계로 바뀌면서 결국엔 수(隋)와 당(唐)으로 이어지는 통일된 대제국 형성을 이끌었다는 이론이다. 즉 한쪽의 체제와 문화를 고집하지 않고 좋은 점은 서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개방적인 분위기가 대국을 만들었다는 논리다.

그 시작점에 용문석굴이 있고 개착할때 고구려인이 관여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석굴 자체에 고구려적인 요소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지만 미감(美感)은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곳 불상의 얼굴에서 고구려인의 얼굴이 스친다면 나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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