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55세에 전세금을 빼서 아내 아들과 함께 자동차로 9만Km를 달려 15개월간 세계를 여행한 조용필(57) 씨.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시작으로 한국 번호판을 단 차로는 최초로 몽골 국경을 넘고 중동 유럽을 거쳐 남미로 건너가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를 찍고 북중미까지 거침없이 달렸다. 이 같은 여행 전 과정을 기록한 ‘조용필의 블로그’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며 조씨는 ‘블로그 스타’로 떠올랐다. 최근에는 이 블로그를 엮은 책 ‘내 차로 가는 세계여행’ 1, 2편이 출간됐다. 무엇이 중년의 가장인 그를 움직여 지구 두 바퀴를 돌게 했을까? 조씨에게 여행 이야기와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을 들어보았다.
세계 여행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15년간 은행에서 근무하다 퇴직하는 순간 빚보증에 얽혀 나락으로 떨어졌다. 파지 줍기, 대리운전 기사, 길거리 생수장사, 고철 장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노동과 생활고에 허덕였다. 그런 과정을 넘기고 숨을 돌려보니 어느덧 내 나이는 더 이상 꿈을 미룰 만큼 젊지 않았다. 세계 여행은 중학생 시절 ‘김찬삼 세계여행기’를 읽고부터 가슴에 품어온 꿈이다. 생활고에 허덕이며 입 밖에도 낼 수도 없었던 꿈이었지만 더 이상 미루면 실천에 옮기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계획을 이야기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
처음에는 혼자 여행을 떠나려고 구상했다가 막내가 동참하면서 바이크를 가르쳐 2대의 바이크로 두 사람이 여행을 가는 것으로 수정했다. 하지만 아내도 선뜻 따라가겠다고 나서면서 자동차로 최종 결정됐다.
왜 자동차로 결정했나.
세 가족이 여행하는 데는 ‘내 차’로 가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됐다. 아직까지 아무도 실행해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도전의식도 발동했다. 한국인 최초로 내 차로 몽골 초원을 달려보자, 내 차로 파미르 고원에 올라보자, 처음으로 도버해협을 건너고, 최초로 남미를 일주해보자는 욕심도 있었다.
자동차 여행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경제성, 안전성, 안락함은 물론이고 가고 싶을 때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대로 떠날 수 있는 자유로움은 자동차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이다. 시간표에 따라 움직일 필요가 없으니 일정에 훨씬 자유롭다. 하지만, 대도시 관광의 불편함과 주차 문제는 자동차 여행의 단점이다. 차량 고장 시의 대처 등 관리의 어려움도 있다.
자동차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이 있다면.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세계 어디를 가도 사람이 사는 곳에는 자동차가 있다.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사소한 고난이나 시련을 즐기는 자세가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것들이 가장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는다. 출발 전에 경로에 맞게 차량을 잘 보완하고, 각종 장비와 예비 부품들을 챙기는 게 좋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해도 돌발적인 상황들은 있을 것이다. ‘Fun한 자세’로 각종 상황에 대처하고 부딪치며 세상을 즐기기 바란다.
여행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면.
카자흐스탄에서 키르기스스탄으로 건너갈 때 국경에서 자동차 서류 문제로 7시간가량 가족들과 연락도 못하고 생이별을 하며 애태운 적이 있다. 런던에서 차를 선적해 브라질의 리우로 보냈으나 통관이 안 돼 3주일간 매일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뒹굴며 조급해 했다. 콜롬비아의 험준한 안데스에서 차가 고장 나 한 달 이상 고생하기도 했다. 여행 중 수많은 현지 한국인들의 환대를 받는 등 따뜻한 기억도 많다. 독일에 유학중인 아들에게 매일 조금씩 다가간다는 사실도 큰 기쁨이고 즐거움이었다. 손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추억을 가지게 됐다.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거나 후회했던 적은 없나.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경찰서 정문 앞에 세워둔 차가 없어진 적이 있다. 경찰서에 신고하고 기다리는 동안 차가 없어졌으니 이제 여행을 포기해야하나 잠시 망설인 적이 있을 뿐 후회한 적은 없다.
세계여행을 마치고 삶이 달라진 점, 얻은 것이 무엇인가.
당연히 통장 잔고도 비었고, 현금 유동성이 아주 나빠졌다. 하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매사가 긍정적으로 변했다. 너른 세상에 나가보니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사는 줄 깨달았다. 세상에 사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깨우쳤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이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하며 멋진 존재인가도 알게 됐다.
중년 이상에서 여행에 대한 로망과 함께 두려움, 또는 현실적 포기도 많다. 무엇보다 하루라도 빨리 여행을 떠나라고 권하고 싶다. 가슴이 떨릴 때 여행을 떠나야지, 다리가 떨리기 시작하면 떠나는 게 불가능해진다. 금전적인 문제를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여행 경비를 아꼈다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좋은 건지, 죽는 순간까지 여행을 못 가본 것을 후회하며 아쉬움 속에 사는 게 좋은 건지 다시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여행은 시간이 많은 사람이 가는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은 사람이 가는 것도 아니다. 여행은 가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당분간 틈틈이 내 차로 국내여행을 다녀보고 싶다. 지방 구석구석을 ‘차박’을 하며, 조용히 다녀보고 싶다. 봄이 오면 내 차로 2달 정도의 일정으로 일본을 갈 예정이다. 환경이 허락한다면 내년엔 호주와 뉴질랜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아프리카를 여행하지 않고는 제대로 세계여행을 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 차로는 다니기 힘든 중국과, 동남아시아와 인도, 스리랑카, 네팔 히말라야를 거쳐 아프리카로 들어가는 그날을 꿈꾸고 있다.
처음에는 내 꿈을 향한 가족의 여행이었지만 나날이 늘어나는 블로그 이웃들의 관심과 기대에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차로 떠나는 자동차 여행을 꿈꾸고 갈망하는지 미처 몰랐다. 다음 여행은 많은 사람들의 꿈이 함께하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