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천세두 기자]과연 로봇에게 주식 종목 분석과 추천, 주문까지 맡길 수 있을까? 구글 딥마인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 9단을 꺾으면서 증권가에도 인공지능을 이용한 주식 투자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7~8년 전 로봇 투자자문사, 즉 '로보 어드바이저'(Robo-advisor) 사업이 시작돼 정착 단계에 이른 미국에 비하면 걸음마에 불과하지만 국내 증권사들도 잰걸음을 보이고 있다. 특히 기존의 시스템 트레이딩이 투자자가 특정 조건을 프로그램에 입력하면 컴퓨터가 매매 여부를 결정해주는 '트레이딩 매매'에 그쳤다면 최근에는 투자자의 특성을 분석해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투자자문을 하는 '로보 어드바이저'(Robo-advisor)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들을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모니터링할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을 통해 트레이딩까지 하는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투자도 인공지능 시대에 본격 돌입했다.
◆최적의 가격으로 매매하는 AI 주문시스템 선보여
15일 핀테크 업체인 씽크풀은 로봇이 하는 '주식투자 통합 로봇시스템' 즉, 라씨(RASSI : Robot Assembly System on Stock Investment)를 공개했다. 라씨는 인공지능(AI) 뉴스 자동생산 시스템, 로보 애널리스트, 로보어드바이저, 로보트레이딩 등 총 4개의 시스템으로 이뤄졌다.
이날 씽크풀의 발표가 주목을 받은 것은 '로보 트레이딩' 시스템을 갖췄다는 점 때문이다. 기존의 '로보어드바이저'는 개인의 투자 성향을 분석하고, 최적의 상품 배분 및 추천 상품, 예상 수익률 등을 제시하는 등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자동으로 관리해주는 것이 통상적이다.
씽크풀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로봇이 최적의 가격으로 매매가 되도록 하는 인공지능형 주문시스템을 선보였다. 예컨대 한 계좌 안에서 특정 종목을 매도하면, 매도된 만큼의 현금을 다른 종목으로 매수해서 채워넣는다. 종목 단위로 매수와 매도 교체 작업이 자동적으로 이뤄지도록 했다.
다만 투자자가 포트폴리오 변경을 원치 않을 경우에 대비해 반자동으로 이뤄진다. 미체결 상태에서 개인에게 변경을 통보한 뒤 투자자가 결정하는 방식으로 향후 씽크풀은 라씨 3.0 단계에서는 자동으로 체결이 이뤄지도록 할 전망이다.
◆증권가, 로보어드바이저 도입 발걸음 재촉
현재 미국에서는 로보어드바이저 전문 회사들이 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면 해마다 수요가 늘고 있다. 소요비용과 투자 시간이 절약된다는 측면에서 투자자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미국 상위 11개 로보 어드바이저 업체의 자산관리 규모는 200억 달러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으며, 로보어드바이저 시장 규모가 2014년 140억 달러에서 2019년 255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도 나왔다.
외국에 비하면 여전히 걸음마 단계이지만 국내 증권사들도 속속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 말 증권업계 최초로 자체 개발한 'QV로보어카운트'를 선보였으며, 조만간 상품과 연계해 판매키로 했다. 로보어카운트는 투자성향과 재무목표에 따라 최적의 투자대상과 매매전략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최적화 매매전략을 수정해 적용할 수 있도록 고객에게 자동으로 안내되는 시스템이다.
삼성증권은 자체 개발한 로보어드바이저 플랫폼을 1분기 중에 선보일 예정이다. 다양한 상품을 종목 수에 관계없이 포토폴리오 형태로 구성해 리밸런싱, 매매에 이르는 투자의 전 과정을 로봇이 알아서 해주는 플랫폼이다. 국내 최초로 '투자성과 정밀검증 알고리즘 시스템' 특허 출원을 완료했다.
대우증권은 지난해 말 디셈버앤컴퍼니, AIM 등 8개의로보어드바이저 업체와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며, 올해는 미국의 로보어드바이저 업체와 업무 제휴를 추진하고 있다.
이밖에 로보어드바이저 업체인 '쿼터백 투자자문'과 디셈버앤컴퍼니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로보 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사도 속속 늘어나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 애널리스트 대체할 수 있을까?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예상을 깨고 3승을 했지만 4국에서 이 9단에게 패했다. 결국 로봇이 침범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을 맞딱드린 셈이다. 로보어드바이저를 도입하고 있는 증권가에서도 과연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이날 씽크풀 김동진 대표는 "로봇이 사람과 비교해 부족한 것이 통찰력이다. 미래의 성장성이나 기업에 대한 내부자 정보 등 통찰력은 부족하다는 점이 약점"이라며 "다만 좋은 주식은 누가 먼저 빨리 사느냐가 관건이다. 알고리즘의 차이가 있지만 속도 때문에 기계가 이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인공지능이 상상 이상의 방대한 정보를 소화하고, 분석해내면서 학습 능력과 속도 측면에서는 애널리스트나 펀드 매니저를 뛰어넘고 있다. 인공지능은 감정이나 욕심에 휘말리지 않고, 꾸준히 자산 관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강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검증을 받지 못한 로보어드바이저가 고객들의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아울러 통계적 기법에 따른 주식투자를 하되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대체 불가 영역이라는 반론도 여전하다.
인공지능을 통한 자산 관리를 하는 것 역시 투자자의 선택인 만큼 로봇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로보트레이딩을 선보인 씽크풀 역시 마지막 매매 직전 투자자에게 포트폴리오 조정 여부를 물음으로써 투자 책임을 '고객'에게 돌렸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박지홍 연구원은 '자산관리업의 로보 어드바이저 열풍' 보고서를 통해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100% 대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향후 기술력과 사람의 지능이 혼합된 사이보그 형태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