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타에 열광하는 10억 중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 간과하는 이도 많아 얼마전 중국에선 한국의 인기 탤런트 김희선씨가 중국에서 장예모 감독과 TCL전자 회사의 이동전화 광고를 찍어,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또한 안재욱씨는 이미 중국에서 삼성전자의 Anycall 광고를 중국어로 방송해, 높은 수익률을 올린 바 있다. 이것은 바로 최근 중국에서 일고 있는 한류(韓流) 바람을 이용해 얻은 광고 효과의 한 단면이다. ‘사랑이 뭐길래’라는 TV 드라마를 시작으로 대만을 포함한 중국 전역에서는 한국의 각종 드라마와 쇼 프로그램이 하나 둘씩 방송돼 중국인들에게도 이젠 한국의 스타 군단이 이미 친숙해져 있는 상태이다. 최근 심은하씨가 결혼식 이틀을 앞두고 파혼한 사실까지 중점 보도하는 등, 중국 지역에서 한국의 연예소식 역시 중국인들의 귀를 솔깃하게 할만한 화제거리라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물론 중국인들이 특별히 선호하는 몇몇 스타가 정해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중국인들은 단순한 관심의 차원을 넘어 한류가 왜 대단한지 연구하고 싶어한다. 한국의 이러한 대중문화의 뿌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부터, 현재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김희선, 안재욱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교육개혁 없이 일본의 미래는 없다 하고 싶은 과목만 공부하는 고등학교, 노력 없이도 갈 수 있는 대학이 일본 기반을 흔들어 1999년 9월30일 일본지방 소도시 동해촌에서 발생한 방사능 사고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우라늄을 취급하는데 양동이를 사용한 사실, 직원이 그것을 맨손으로 사용한 사실, 방사선의 의미조차 몰랐던 현장의 직원들. 실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 것에 대해서 일면 이해가 간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인들이 너무도 많다. 대학만 지어 놓고 보자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나? 1960년대부터 시작한 대학 대중화를 들 수 있다. 고도경제성장에 힘입어 대학 진학율은 70년대에 10%에서 30%로 급성장했다. 90년대에는 대학의 수용능력이 한층 확대되었고 진학율은 40%을 넘어섰다. 문부성은 베이비붐이 올 것을 예상해서 국토청과 합의 하에 전국종합개발기획을 세워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던 대학을 전국의 지방도시에 분산하였다. 문부성과 국토청의 이런 기획에 지방행정부들은 대학신설, 학부증설 등을 적극적으로 행하여 왔다. 현재 대학수용능력은 확대되었으나 대학입학 인구는 심각할 정도로 줄어들고 있
사회주의 중국에서 스승의 위치는 교육개혁 바람에 교사들의 처우 좋아지고 자질도 나날이 향상 중국은 각 학교마다 새 학기가 시작된지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지난 9월 10일은 중국 정부가 제정한 ‘스승의 날’이다. 올해로 열일곱번째 스승의 날을 맞는 중국의 분위기를 색다른 조사와 함께 전달하려 한다. 스승의 날의 유래 우리나라 스승의 날은 가정의 달인 5월에 들어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하필 9월에 스승의 날을 기념하고 있을까? 그것은 중국의 신학기가 9월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새 학기를 스승에 대해 감사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자는 뜻이다. 그럼, 처음부터 중국의 스승의 날이 9월 10일이었을까? 중국의 스승의 날의 유래는 무엇일까? 그 유래는 1931년 모두 교수가 당시 남경대학에서 집회를 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당시 교수의 대우 및 교육계에 종사하는 이들의 보장성을 개선해야 함을 주장했으며, ‘스승의 날’을 제정하여 스승에 대한 은덕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 그 당시 중국의 ‘스승의 날’은 6월 6일로써 ‘6·6’이라 칭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국민당 정부가 법적으로 인정하였고, 나중에는 그 날짜를 8월
중국인 “닫힌 성벽을 넘어 세상 밖으로” 개혁개방 정책 이후 유학생 수만 38만명에 달해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의 움직임속에, 많은 중국인들은 옛날부터 해외로 눈을 돌려 꿈을 갖기 시작했다. 오늘날 몇 대에 걸쳐 세계 각지에서 살고 있는 화교들이 충분한 예가 될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에서 같은 상황을 보면 과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요즘에는 중국인으로서 출국을 하려면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지금 중국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밖으로, 세상 밖으로 향해 나가려고 애쓰고 있다. 유학생 귀국해 사회발전에 기여 어떤 중국인은 도피를 하다시피 중국이라는 성을 빠져 나간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지난 번 필자가 게재했던 것처럼 맹목적인 국제 결혼을 통해 해외로 나가려는 망상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8월20일, 중국 인사부에서는 중국이 개혁정책을 실시한 이후로 38만명의 학생이 유학을 위해 출국했다고 발표했다. 그 중 13만명은 이미 공부를 마치고 귀국을 하였으며 나머지 25만명은 아직 공부하거나 일하는 중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들 중 대부분이 교육이나 과학계에 있으며, 국제기술이나 금융, 관리 등 각계 분야에서 능력을 과시하고
“중국을 이해하려면 문화와 역사를 공부해야” 개방했지만 보수적인 중국, 궁핍하지만 여유로운 중국인 늘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구와 광활한 대륙의 나라, 중국.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에 대한 관심은 정말 끊임없이 있어왔다. 개방은 했지만 여전히 보수적 우리나라가 1992년 중국과 처음 수교를 맺었을 때, 한국의 많은 기업들은 중국에 대해 어떤 정보나 지식도 없이 섣불리 진출해 사업이 실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개방적으로 변해가고 있지만, 아직도 중국인들은 외국인에게 아주 보수적이다. 이러한 현상은 너무도 당연하다. 제1,2차 대전 때 우리와 마찬가지로 무수한 침략전쟁을 겪어야 했고, 1949년 10월 사회주의체제의 정부 수립이후 모택동은 철저히 외국을 배척하는 정책을 펼쳐왔기에 우리가 중국이나 중국인을 알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웠다. 등소평이 개방정책을 편 이후로 수 많은 외국기업들이 몰려들었지만 많은 제한이 있었다. 지금도 외국기업이 자사의 브랜드로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꼭 중국기업과 합작을 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일본의 유명한 라면회사가 중국에 진출하였는데, 중국의 한 식품회사와 합작을 함으로
중국의 7월은 대입 시험의 달 일본이나 한국 못지않게 입시열기 뜨겁다 한창 여름이 시작되는 7월,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의 수능과 같이 중국의 고 3학생들이 대학입학시험을 치른다. 가을학기인 9월에 신학기가 시작되는 관계로 우리나라와는 정 반대인 한여름에 대학입학 시험이 실시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수험생들은 비지땀을 흘려가며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중국도 명문대가 대기업 보장 중국의 교육방식도 이전 우리나라 교육처럼 주입식이다. 그러므로 중요시하는 과목이 따로 정해져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국영수가 바로 그것이다. 중국의 어언(語言)이란 것은 바로 우리나라의 언어 영역을 뜻한다. 시험의 난이도는 우리의 언어영역이 그렇듯 아주 어렵다. 그러나 합격이냐 아니냐의 결정적인 과목은 역시 영어와 수학이다. 필자의 중국 친구와 은사님은 수학이 특별히 어렵다고 강조했다. 모든 과목을 만점을 받았을 경우 받게 될 점수는 600점이며, 여태까지 만점을 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한다. 560점대를 맞는다면 북경대나 청화대의 수석은 맡아 놓은 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상당한 고득점이다. 그렇다면 중국인민들의 대학시험에 대한 열기는 어떠할까? 한국과 비교해 볼 때, 전체적으로
현대중국, 모택동이 출산 등소평이 양육 창당 80주년 맞은 중국공산당 “공산당이 존재하지 않은 중국에 새로운 발전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 이 구호는 중국 공산당 창당 80주년 열흘을 앞두고 근 한달전부터 방송되는 공익광고이다. 중국은 중국 공산당이 지배하는 일당체제 국가로서, 중국의 주요 대내외 정책은 정부가 아니라 일차적 으로 중국공산당이 결정한다. 이 중국공산당이 80년전, 그러니까 1921년 7월 1일 상하이에서 창당되었다. 중국공산당, 1921년 7월 1일 상하이출생 중국공산당은 중국 노동자·농민운동과 마르크스주의가 결합된 것으로, 1917년 소련에서 볼세비키 혁명이 성공하면서 공산주의가 현실세계에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그 물결은 지리상으로 가장 가까운 중국대륙 안으로 흘러 들어와, 1919년 ‘5·4운동’을 전후하여 중국의 일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1920년부터 베이징과 상하이를 중심으로 공산주의를 연구하는 모임을 결성하였다. 1921년 7월 23일부터 31일까지 소련공산당으로부터 파견된 사라므이 도움으로 상하이의 프랑스 조차지역인 망지로(望志路) 106호에서 각 지역의 대표 13명이 모여 중국 공산당 제
현대중국의 영원한 스승 ‘루쉰’ 탄생 120주년 맞아 5·4운동의 주역으로 새롭게 조명 중국 5.4문화운동의 위대한 인물이자, 중국인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혁명가 루쉰이 탄생한지 올해로 120주년을 맞는다. 중국인들에게 있어 루쉰의 존재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영웅적인 위인이다. 그가 외치던 계몽사상은 현재까지도 중국인의 마음속 깊이 되새겨지며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루쉰의 위대함은 우리나라 독자들도 그의 작품을 통해 익히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그가 남긴 업적과 발자취가 무엇이었는지 그의 탄생을 즈음해 재조명하려 한다. 루쉰의 욕, 양약고구(良藥苦口) 루쉰선생이 살던 1930년대, 중국사회는 여러 가지가 뒤죽박죽 얽힌 그야말로 혼란한 모순의 시대였다. 나라가 망해가는 시점에서, 루쉰이 한평생 중요하게 여긴 일은 중국 국민성의 연구와 그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이었다. 이 분야에 있어서 그는 어떤 지도자나 정치가들보다도 큰 업적을 남겼다. 루쉰은 중국 새 문화에 기초를 다졌다. 중국인민공화국을 건립한 모택동도 살아생전에 루쉰에 대해 이렇게 평한바 있다. “루쉰 선생이 가는 방향이야 말로 바로 중국의 새문화가 나아갈 방향이다 라고.” 최근 몇 년 사이
모래에 잠겨 사라져가는 중국 대륙 황사로 인한 사막화 피해 심각해 현재의 황사현상을 고대 중국에서는 ‘흙비’라 칭했는데, 한번 불기 시작하면 온세상이 캄캄해져 대낮에도 호롱불을 밝혀야 했다고 한다. 지금 중국은 완전한 여름이지만, 두 달전 까지만 해도 황사바람이 불어 봄을 실감케 했다. 개나리 꽃이 피는 한국의 봄과는 달리, 황사바람으로 계절이 바뀜을 알 수 있는 중국의 북쪽인 베이징은 올해 작년과는 사뭇 다른 봄 날씨였다. 얼굴도 들 수 없을 정도의 심하게 불던 작년의 황사바람이 올해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전에 필자는 잔뜩 긴장을 하고 봄 맞을 준비에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놨었던 탓에 매일 날씨를 자세히 관찰하였다. 사막화 현상의 가속화 일반적으로 황사현상으로 인한 중국의 손실은 적지 않다.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토지 황량화인데, 과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1950~60년대, 토지의 사막화는 매년 1,560㎢씩 커져가고 있다. 동시에 폭풍같은 황사바람은 매년 5~6차례씩 꼭 있었다. 70~80년대에 들어와서는 사지(沙地)현상이 2,100㎢로 그 범위가 더 확대되었고 황사바람은 13~14차례로 그 회수가 훨씬 더 잦아졌다. 그렇다면
외국인과의 결혼이 돈벌이 수단으로 많은 문제점 안고 있는 중국인의 국제결혼 5월달은 결혼해야하는 달로 착각할 만큼 올해 5월 중국엔 결혼하는 커플들이 유난히 많아졌다. 중국의 5월은 연중 가장 이상적인 날씨이고, 올해는 작년과 달리 황사현상도 거의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5월엔 노동절(5월 1일부터 7일까지 휴일)이 끼어 여유가 있으니 결혼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절이라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렇게 좋은 계절에 결혼을 한다는 것은 아주 부러워할 만 한 일이다. 그러나 결혼이 성공을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하니 그 사연이 무엇일까 ? 개방이후 늘고 있는 국제결혼 최근 국제결혼을 하는 것이 중국인들 사이에서 화제 거리가 되고 있다. 사랑에 국경이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면 그 누구도 할말이 없을 테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개혁ㆍ개방 이후 중국인들은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그 중의 하나가 돈이 아닌 듯 싶다.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외국인과 결혼을 하는 풍경 즉, 70~80년대 한국에서 흔히 ‘아메리카 드림’이라 불리어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지금 중국인들은 우리의 그때처럼 미국만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자전거, 버스, 지하철이 공존하는 사회 중국교통문화의 현주소 베이징은 최근 2008년 올림픽 유치를 위한 움직임중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도로 공사이다. 공사 내역중에는 도로를 확대하고 새 다리를 건설하기도 한다. 올림픽 유치를 위한 노력이 대단하지만, 덕분에 곳곳에는 공사중이란 표지판과 함께 이용불편을 겪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베이징의 교통체증은 이미 소문나 있는데, 베이징 전체 공사라니 필자는 외출하기 전부터 겁이 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밖에서는 한참 공사가 진행중이다. 베이징의 교통 체증의 주요 원인중의 하나가 바로 큰 대교가 적다는 것이다. 그래서 길을 통하게 여러 방향으로 다리를 짓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횡단보도와 신호등도 눈에 띄게 많아 졌다는 것이다. 독자들의 일반 상식속엔 땅덩어리가 넓은 이 중국에서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당연히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질 것이다. 물론 중국 전역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국제적인 도시인 상하이엔 아주 잘 되어 있다. 그러나 수도인 베이징에서는 필자가 처음 왔을때만 해도 길을 건너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기다려 보지만 단 한 대의 차량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중국의 소득수준 천차만별 부자 중국과 가난한 중국의 심각한 격차 중국의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중국인들도 삶의 질에 관해서 많은 관심을 갖기 시 작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유치나 가정집 인테리어, 해외 여행 등 이 모든 것이 최근 베 이징을 비롯한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가 있는 도시인들의 화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중 국인들의 삶은 어느 정도로 풍요로운 것일까? 중국 GDP 81위, GNP 7위 한 국가의 부(富)를 따진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바로 GDP(국내 총생산)이다. 중국인들의 부유함을 이 GDP로 평가할 때, 중국은 세계 192개 국가 중 81위의 순위에 밖에 미치지 못한다. 매년 출간되는 <세계 발전 보고서>에는 각 나라의 GDP순위가 매겨져 있 다. 중국이 GDP로는 아프가니스탄(29위)이나 부탄(Bhutan, 30위)보다 훨씬 더 뒤떨어지지만 1998년 <세계 발전 보고서>에 발표된 중국 GNP는 세계 7위의 수준이다. 국가의 부유함의 정도를 나타내주는 GDP의 결과를 지켜볼 때, 중국인들의 생활수준은 아직까지 빈곤층에 속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선진 국가들과 비교해 보자. 중국의 GD
버림받은 동지(同志), ‘동성애자’ 사회적 멸시받는 중국동성애자 3600∼4800만명 “나는 이때까지 살면서, 막연히 사람은 때가 되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어요. 물론 서로 다른 성(性)을 가진 상대끼리 말예요. 처음 동성연애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좀 신선하면서도 이론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여겼었죠. 그러나, 나중에 실제로 한 쌍의 동성 커플을 보았을 때, 정말이지 토할 것 같았답니다.” 이 말은 북경에 거주하는 한 평범한 직장여성의 동성연애에 대한 솔직한 자신의 생각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얼마전, ‘COMMING OUT’이란 단어를 유행케 했던 모 방송인이 있었다. 모든게 현대화가 되어간다고 하지만, 아직 인류의 머리속엔 동성연애에 대해 관대하지 못하고 현대적인 생각으로 바라보긴 힘든 점이 많다. 아직도 많은 선진국에서 동성연애자들의 사랑 표현은 자유롭지 못하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중국, 동성연애에 눈을 뜨는 중국인들도 계속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롭게 사랑하고 결혼을 할 수 없다. 중국은 대중매체나 공개적인 장소에서 절대 동성연애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중국인들은 동성연애에 대해 비정상적인, 인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