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사망의 길로 가던 사람에게는 생명을 불어넣으시며, 무질서와 혼돈 속에서 질서를, 다툼이 있는 곳에는 평화를 주시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선하고 아름다운 진리의 마음으로 행복하고 강건한 삶을 영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빛의 자녀로 거듭나면 빛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과연 빛의 열매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풍성히 맺을 수 있을까요? 에베소서 5:9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먼저 착함이란, 선하고 악의가 없는 아름다운 마음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상대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것, 병든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을 돌아보고 선을 베푸는 것,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뿐만 아니라 실례를 범치 않는 마음, 남을 섬기고 자신을 낮추는 마음, 화평하고 양보하는 마음, 욕심이 없는 마음, 자랑하거나 들레지 않는 마음,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마음 등이 다 착함에 속하
천국 새 예루살렘 성곽에 있는 열한 번째 기초석은 청옥입니다. 청색을 띠는 투명한 보석으로 이것이 상징하는 영의 마음은 ‘청결함과 거룩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청결은 마음에 죄가 없는 상태입니다. 어떤 흠과 티도 없는 깨끗한 마음을 청결하다 하십니다. 몸은 물로 씻으면 깨끗해지는데, 마음은 어떻게 해야 청결해질까요? 마음도 물로 씻으면 됩니다. 곧 영적인 물, 하나님 말씀으로 씻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0:22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만큼 깨끗한 참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버리라, 하지 말라’ 하신 대로 순종하면 점점 마음에서 비진리와 악이 씻겨 나갑니다. 또한 ‘하라, 지키라’ 하신 말씀대로 순종하면 죄악에 다시 물들지 않고 계속해서 맑은 물을 공급받아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8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한 대로,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직접 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단지 대면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깊고 크신지를 알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윗의 일생을 예로 들어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마음이 선과 사랑 자체이심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축복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연단이 닥쳐올 때도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나의 아버지이심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던 소년 시절에 장차 왕이 될 사람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 후 다윗은 승승장구만 했을까요? 그 과정에서 다윗이 가장 먼저 직면한 현실은 반역자라는 누명을 쓰고 타국과 광야를 떠도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 미친 척하기도 했고, 나발 같은 무례한 이에게 심한 모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블레셋으로부터 구해 주었던 그일라 거민들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동고동락하던 부하들이 돌을 들어 자신을 쳐 죽이려 하는 일도 당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연단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너무나 아름다운 찬송 시들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감사하며 찬송하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결국 가장 좋은 것, 바로 이스라엘 온
천국 새 예루살렘 성곽의 아홉 번째 기초석은 담황옥입니다. 담황옥은 토파즈라 불리는 붉은 오렌지색의 투명한 보석입니다. 담황옥이 상징하는 영의 마음은 ‘양선’입니다. 양선의 사전적 의미는 ‘어질고 착함’인데, 영적 의미는 ‘성령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세상에서는 ‘양심’이 있습니다. 양심은 옳고 그름이나 선과 악을 판단하는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서 시대나 나라,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양선의 기준은 오직 하나입니다. 진리인 하나님 말씀만이 변함없는 기준입니다. ‘자기 보기에 선’을 추구하는 마음은 영적 양선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과 이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 영적 양선입니다. 양선이 임한 사람에게서는 자연스럽게 선이 배어나옵니다(마 12:35).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선한 말과 행실이 나오지요. 향수를 뿌린 사람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듯이, 양선한 사람에게서 선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만 선을 추구하는 것은 양선이라 하지 않습니다. 선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선한 말과 행실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주변에 덕과 사랑을 베푸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양선입니다. 어
천국 새 예루살렘 성곽의 여덟 번째 기초석은 녹옥입니다. 녹옥은 파란색 혹은 연한 청록색의 보석으로 바다의 물빛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녹옥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루기 위해 범사에 ‘오래 참는 것’을 의미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을 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하나로 오래 참음이 나오고,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에도 오래 참음이 나옵니다. 이들 오래 참음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사랑장에 나오는 오래 참음은 내게 돌을 던지는 사람이나 내게 오는 갖가지 시련에 대한 오래 참음, 곧 개인적 차원의 오래 참음을 말합니다. 반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나오는 오래 참음은 진리 안에서의 참음을 말하며 매사에 하나님 앞에 오래 참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성령의 열매에 속하는 오래 참음이 더 큰 범주의 개념으로, 개인적인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한 오래 참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녹옥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성령의 열매인 오래 참음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으로 한번 하신 말씀은 반드시 실행하며 변함이 없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어떤 약속을 받았다면 그것
천국 새 예루살렘 성곽에 있는 일곱째 기초석은 황옥입니다. ‘크리솔라이트(귀감람석)’라 불리며 올리브빛을 내는 올리빈(감람석)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천국 보석은 이 땅의 보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찬란한 빛을 냅니다. 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영안으로 본 천국 보석과 가장 닮은 보석의 이름을 기록했지요. 천국 보석의 이름이 따로 있지만 그 이름을 기록한다면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나마 닮은 이 땅의 보석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 황옥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자비’를 뜻하며 도저히 이해하거나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능히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진리 안에서 이해하고 용서한다는 것은 선으로 이해하고 사랑으로 용서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자비의 마음을 이룬 사람은 편견이 없기 때문에 ‘누구는 이래서 좋고, 누구는 저래서 싫다.’ 하지 않습니다. 걸리거나 불편한 사람이 없으며 원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아름답고 좋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설령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해도 긍휼히 대해 줍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으며 도리어 이해하고 포근히 감싸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아
홍보석은 진한 붉은빛의 투명하고 맑은 보석입니다. 이는 천국 새 예루살렘 성곽의 여섯째 기초석이며 영적으로는 열심과 정성,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루기 위한 ‘열정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사명을 뜨겁게 감당하며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지요. 사랑에도 차원이 있어 크게 영적 사랑과 육적 사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영적 사랑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변함이 없지만 육적 사랑은 나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쉽게 변질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사랑은 아무리 숭고해 보여도 영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영적 사랑은 오직 진리 안에 들어와야만 이루어지는 주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진리 안에 들어왔다 해서 곧바로 영적 사랑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주님의 마음을 닮아야 비로소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있는 영적 사랑의 정의에 자신을 비추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래 참을 수는 있지만 자기 이익을 구한다거나, 성내지는 않지만 무례하다거나 이렇게 사랑의 기준에 비추어 한 가지라도 걸리는 것이 있다면 아직 영적 사랑을 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영적 사랑을 하는 것 같은데도 여전히 외로움이나 허전함이 틈탄다면 자신도 모르게 사랑을 받
천국 새 예루살렘 성곽의 넷째 기초석인 녹보석은 일명 ‘에메랄드’라고 불리는 초록색 보석입니다. 녹보석은 영적으로 ‘의와 푸름’, ‘정의롭고 깨끗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에베소서 5:9에 나오는 ‘빛의 열매’의 빛깔과 같지요. 곧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함께 어우러진 빛깔이 바로 녹보석의 영적 빛깔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로움이란 죄를 버리고 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것, 생명을 다해 충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 반듯하고 절도 있는 행함, 도리를 저버리지 않는 것, 옳은 일에 대해 뜻을 굽히지 않는 것 등이 다 의로움에 속하지요. 아무리 온유하고 착해도 의롭지 못하면 빛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게 아무 잘못 없이 멱살을 잡힌 채로 심한 모욕을 당하는데 바라만 보고 있다면 참된 의라 할 수 없습니다. 의가 없는 선은 하나님 편에서 인정하는 영적인 선이 아닙니다. 비굴하거나 우유부단한 것이 어찌 선이 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선이 없는 의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의가 아니라 자기 보기에 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함이란 거짓되지 않는 것, 약속을 지키는 것, 어떤
고넬료는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 군대인 이달리야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의 행함을 기뻐하시고 천사를 시켜 베드로가 머문 곳을 알려 주며, 그를 부르게 하셨지요. 베드로에게도 환상과 성령의 음성으로써 고넬료의 초청을 허락하고 그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와 보니, 그는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까지 모아 놓고 사모함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자 성령이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임해 고넬료뿐만 아니라, 그의 일가와 함께한 친구들까지도 구원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넬료 가정이 축복받은 이유는 그가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가족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으며 신뢰받는 가장이었음을 증명합니다. 그러기에 온 가족이 그에게 순종하고 하나 될 수 있었으며,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니 가족도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자녀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 줘도 자녀가 그에 응하지 않는다면 이는 자녀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자녀의 거울인 부
천국 새 예루살렘 성곽의 셋째 기초석은 옥수입니다. 옥수는 보통 반투명한 백색을 띠며 회색, 청색, 적색을 띠는 것도 있습니다. 옥수의 영적인 의미는 ‘결백과 희생적 사랑’입니다. ‘결백하다’는 것은 행동이나 마음씨가 깨끗하고 아무런 허물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이 바로 옥수에 담긴 영의 마음입니다. 희생적 사랑이란 내 것을 다 내어주되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주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마음이지요. 육적인 사랑은 자기의 이익을 구하기 때문에 상대를 위해 희생한 만큼 자신도 받기를 바라며, 기대한 만큼 받지 못하면 공허하고 슬퍼집니다. 자신의 유익에 맞지 않으면 상대가 미워지기도 하고 가까이했던 사람과 원수를 맺기도 합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짐승과 다름없는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우리의 가난을 대신 담당하고자 가난한 길을 가셨습니다. 갖가지 병을 고쳐 주고 연약한 사람을 강건케 하시며, 소망이 없는 사람에게 소망이 되고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오직 선과 사랑만을 베풀었지
천국 새 예루살렘 성곽의 둘째 기초석인 남보석은 일명 ‘사파이어’라 불리는 투명한 남색의 보석입니다. 그러면 남보석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세상의 어떤 유혹이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진리 안에서 결코 흔들림이 없는 절개를 의미합니다. 곧 남보석은 변치 않고 곧게 나갈 수 있는 진실을 상징하며, 하나님 뜻이라면 무조건 옳다 여기는 ‘정한 마음’을 나타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 중에서 영적 절개를 대표할 만한 인물로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를 들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비록 왕의 명령이라도 하나님 뜻에 어긋난다면 결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왕명을 거슬러 사자굴에 던져질지언정 하나님에 대한 의를 지켰지요.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믿음과 절개를 기뻐하시고 천사를 보내 사자의 입을 봉하여 조금도 상하지 않게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로 크게 영광 받으셨습니다. 다니엘 3:16~18을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 역시 정한 마음으로 믿음을 지키기 위해 극렬히 타는 풀무불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우상 앞에 절하는 죄를 범치 않기 위해 왕 앞이라 해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고백하였습니다. “…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천국 새 예루살렘 성곽의 기초석은 열두 보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열두 보석의 영적 의미를 종합한 마음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고, 하나님 마음이며 사랑의 결정체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새 예루살렘 성곽의 첫째 기초석인 벽옥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벽옥은 ‘영적 믿음’을 나타냅니다. 믿음은 크게 영적 믿음과 육적 믿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육적 믿음은 단지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고, 영적 믿음은 마음에 믿어 행함이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영적 믿음입니다. 영적 믿음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온전히 마음 중심에서 믿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으면 행함이 따르기 때문에 열심히 성결하려고 힘쓰며 새 예루살렘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그래서 영적 믿음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믿음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고,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없으며 천국에 소망을 둘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6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진정 믿음이 있다면 상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을 소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부활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부활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능’을 나타냅니다. 오늘날 의학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일시적으로 사람의 호흡이 끊어졌다가 소생되는 일은 있지만, 완전히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명하시자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나왔지요. 이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주님이 공중에 강림하실 때에는 이보다 더 놀라운 부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살전 4:16~17). 마른 뼈도 아니고, 완전히 썩어 분해된 몸이 다시 살아납니다. 몸의 형체가 복원되어 몸의 주인인 영혼과 결합되지요.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권능으로 모든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또한 이 권능으로 살리셨지요.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행적을 성경에 기록하심으로 성도의 부활이 실제로 일어날 일임을 확실히 믿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