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박철호 기자] 지난 봄 프로배구 V-리그에는 거센 개혁의 바람이 불었다.
리그를 양분하던 삼성화재 신치용(60) 감독과 현대캐피탈 김호철(60) 감독이 나란히 현장을 떠났다. 김세진(41) 감독의 성공을 본 구단들은 앞다퉈 참신한 인물들을 사령탑으로 내세웠다.
임도헌(43) 삼성화재 감독도 변화의 물살을 타고 지휘봉을 잡은 케이스 중 한 명이다.
최근 경기도 용인의 삼성트레이닝센터(STC)에서 만난 임 감독은 "어느 날 신치용 감독님(현 단장)이 오시더니 '월요일에는 사장님께 인사를 가야 하니 양복을 입고 나와라'고 하셨다. 긴가민가했는데 내가 감독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떠올렸다.
임 감독은 현대캐피탈의 전신인 현대자동차써비스를 대표하는 선수였다. 현대캐피탈로 팀명이 바뀐 뒤에도 명성은 여전했다. 그런 그가 은퇴 후 팀을 떠났다.
행선지는 삼성화재였다. 팀을 옮기기도 쉽지 않았던 시기에 현대캐피탈 대표 선수가 삼성화재로 갔으니 배구계가 발칵 뒤집힌 것은 물론이다.
임 감독은 코치로 삼성화재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10년을 보낸 그는 어엿한 한 팀의 수장으로 새로운 배구 인생의 출발선에 섰다.
임 감독은 "언젠가는 감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했다. 코치 생활을 10년 동안 한 곳에서 감독을 맡아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고 미소를 지었다.
젊은 사령탑을 모셔온 팀은 삼성화재만이 아니다. 현대캐피탈은 지도자 경력이 전무한 최태웅(39)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고 우리카드는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던 김상우(42) 감독을 불러들였다.
사령탑 경험이 있는 김세진 감독과 대한항공 김종민(41) 감독, KB손해보험 강성형(45) 감독도 40대다. 50대 지도자는 한국전력 신영철(51) 감독뿐이다.
임 감독은 "모두 같은 시대에 배구를 했던 이들이다. 같이 운동을 해서 정도 많이 들었고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가끔은 배구에도 무승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웃었다. 이어 그는 "물론 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경기장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선수 시절을 보낸 이들이 한꺼번에 감독이 되면서 팀 간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다. 앙숙 관계인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비시즌 중 연습 경기를 갖게 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임 감독은 "단장님 말로는 현대캐피탈과의 연습 경기는 배구단 창단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끝나고 단장님, 최태웅 감독과 식사도 함께 했다"고 전했다.
삼성화재는 지난해 OK저축은행에 져 챔프전 8연패에 실패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어렵게 버티던 삼성화재가 더는 정상권에 머무를 수 없을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하기도 한다.
임 감독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그는 "우리가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들렸다. 좋은 전력을 갖추면 우승할 확률은 높지만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고 힘줘 말했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팀워크와 희생이 필요하다. 전력상 7대3으로 밀리면 어렵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6대4 정도면 충분히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화재 선수단 구성은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다.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꼽히는 레오도 건재하다. 레오가 개인사를 이유로 아직 팀에 합류하지 않은 것이 맘에 걸리지만 임 감독은 변함없는 신뢰를 보내고 있다. 레오는 이달 말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다.
문제는 김명진과 최귀엽이 버티는 라이트 포지션이다. 두 선수 모두 블로킹이 약하다. 레프트의 레오와 류윤식, 센터의 이선규와 지태환은 높이가 좋지만 라이트에서 구멍이 생긴다. 임 감독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임 감독은 "명진이는 2단 공격을 잘 때리고 귀엽이는 세트 플레이에 능하다. 두 선수를 합치면 정말 이상적이다. 그런데 둘 다 블로킹은 안 된다"면서 "매일 밤 명진이와 귀엽이만 블로킹 연습을 한다. 이들이 잘해줘야 팀이 잘 될 수 있다"며 두 선수를 키플레이어로 지목했다.
올 시즌에는 대한항공의 전력이 가장 좋다고 평가한 임 감독은 "우리 목표도 우승"이라면서 대권 도전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동안 숱한 성공을 거뒀던 스타일에 큰 변화를 줄 생각은 없다고 했다.
임 감독은 "명품백은 디자인이 자주 바뀌지 않는다. 다른 백들이 디자인을 크게 바꿀 때도 기존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사랑을 받는다. 화려한 것이 멋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우리 배구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것들을 유지하면서 시대의 흐름과 팀 구성원, 상대팀 성향 등에 맞춰 대처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이제 막 첫발을 뗀 임 감독의 최종 목표는 '삼성화재=명문'의 공식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는 "많은 우승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감독직에서 내려왔을 때 '이 팀은 정말 좋은 팀이다. 선수들의 인성과 자세가 매우 좋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