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종근 기자]롯데그룹의 후계자 정당성이 신동주 전 부회장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지는 모양새다.
31일 KBS가 공개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육성이 담긴 파일에는 신 총괄회장이 신 전 부회장에게 보고를 받는 형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가 담겼다.
대화 내용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은 "츠쿠다(츠쿠다 다카유키 일본롯데홀딩스 이사)가 지금 무슨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물었고 이에 신 전 부회장은 "일본 롯데 회사의 사장을 맡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어 신 총괄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들을) 그만두게 했잖아. (어떻게 된 것인가)"라고 묻자 신 전 부회장은 "그만두지 않았다. 츠쿠다가 못 그만두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신 총괄회장은 자신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에 대해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로 했다.
그동안 롯데 그룹이 신 총괄회장의 명령대로 움직여왔던 것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는 것에 화를 참지 못하는 모습으로 풀이된다.
이어진 대화에서 신 총괄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들은)그만둬야 하니까 강제로 그만두게 해야지"라고 말했다.
이어진 대화에서 신 총괄회장은 "신동빈도 그만두게 했잖아"라고 따져물었고 신 전 부회장이 "안 그만뒀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일본 롯데홀딩스에서의 자신의 직위를 해제한 아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해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하기도 했다.
신 총괄회장은 신 전 부회장이 "신동빈이 아버지를 대표이사에서 내려오게 했다"고 보고하자 "신동빈이? 그래도 가만히 있을거냐"라고 언급했다.
현 시점에서 이 같은 대화 내용이 사실이라면 신 롯데그룹 회장 측이 한국과 일본 롯데를 장악하기 위해 아버지를 속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신격호 총괄회장의 대표이사 해임을 결정하고 명예회장으로 추대한 사실 자체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반기를 들어올린 것과 마찬가지다.
이날 열린 신 총괄회장의 부친 신진수 씨의 기일에 신 롯데그룹 회장이 참석하지 않은 점도 이번 상황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로 작용할 수 있다.
본인이 아버지의 뜻대로 한국과 일본에서 회장직에 올랐다면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정당성을 부여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당성이 없어 기일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게 된다.
신 총괄회장이 그동안 구두로 지시를 하는 방식으로 롯데 그룹을 경영해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신 총괄회장의 육성 공개로 상황은 급 반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 총괄회장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회장에서 그만두게 해야 한다는 발언이 언론을 통해 만천하에 공개된 만큼 그의 경영 스타일대로 롯데 측에서 후속 절차를 밟아나갈 공산이 크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신 롯데그룹 회장이 한국에 들어오는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최대한 이른 시기에 신 총괄회장이 다시 한 번 불러 일본 롯데홀딩스 회장직에서 내려오라고 명령할 가능성도 높다.
신 총괄회장의 육성 공개가 신 전 부회장에게 롯데그룹 후계자가 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할 지 아니면 동생인 신동빈 롯데 회장이 자리를 지킬 수 있을 지 여부에 이목이 집중된다.
한편 앞서 지난 27일 신격호 총괄회장은 신 전 부회장과 함께 일본을 방문,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일본롯데 홀딩스 이사 6명을 해임했다.
또 신 전 부회장은 지난 30일 자신을 다시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에 임명한다는 내용이 담긴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시서를 언론에 공개했다. 해당 지시서에는 신 총괄회장의 자필 서명이 담겨있었다.
신 전 부회장은 지시서를 공개하며 자신이 동생 신동빈 롯데 회장을 해임시키려고 했었던 것은 '쿠데타'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임을 강조했다.
이날 신 전 부회장이 공개한 두장의 지시서 중 한 장에는 '신 전 부회장을 집행이사 사장에 임명하고 롯데그룹 경영의 전반과 재무관리 담당을 맡긴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다른 한 장에는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과 고바야시 마사모토 전무 등 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직위해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