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종근 기자]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세월호 선장 이준석(69)씨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구형됐다. 주요 승무원들에게는 무기징역형과 징역 15년∼30년형이 구형됐다.
광주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임정엽)는 27일 오후 법정동 제201호 법정에서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승무원 15명에 대한 결심공판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수사검사는 “이씨가 선장으로서의 의무를 다 하지 못해 수 많은 생명이 희생됐다. 수사과정과 법정에서 허위 진술과 변명으로 일관하는 등 한번도 진심어린 반성을 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이씨는 살인과 살인미수, 업무상과실 선박매몰, 수난구호법 위반, 선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이씨의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될 경우를 대비해 예비적으로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 선박의 선장 또는 승무원에 대한 가중처벌), 업무상 과실 선박 매몰, 선원법 위반, 유기치사·상 등의 혐의도 적용했다.
수사검사는 또 “구호조치를 이행하지 않아 무고한 수많은 생명이 희생당하거나 부상을 입었다”며 1등 항해사 강모(42)씨와 기관장 박모(53)씨, 2등 항해사 김모(46)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검사는 세월호 침몰 사고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점, 선장을 보좌하는 지위와 역할을 하는 점 등을 감안했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3등 항해사 박모(25·여)씨와 조타수 조모(55)씨에 대해서는 징역 30년을, 1등 항해사(견습) 신모(33)씨는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조타수 박모(59)씨와 오모(57)씨, 1등 기관사 손모(57)씨, 3등 기관사 이모(25)씨, 조기장 전모(61)씨, 조기수 이모(56)씨와 박모(59)씨, 김모(61)씨에 대해서는 각각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공판 32회·첫 원격중계’ 세월호 선원 재판이 남긴 기록
한편 검찰이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세월호 이준석(69) 선장 등 선원 15명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과 무기 징역 등을 구형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6개월이었다. 첫 재판이 시작된 6월10일을 기준으로는 모두 4개월 가량이 걸렸다.
선원들에 대한 재판을 맡은 광주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임정엽)는 이처럼 짧은 기간 공판준비기일 3회, 집중 심리로 진행된 29번의 공판기일 등 32번의 공판을 열었다.
4개월 동안 32번의 공판이 열린 것은 우리나라 사법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이례적이다. 이 기간 재판부에 제출된 증거만 동영상을 제외하고 3200여개, 서류 증거는 증거 기록 2만여 장, 공판 기록이 1만여 장에 달했다.
제3회 공판준비기일과 제1회 공판기일이 같은 날 오전·오후 나눠서 진행된 점을 감안하더라도 재판이 열린 일수만 31일, 이 과정에서 출석한 증인 수는 75명이나 됐다.
광주지법은 특히 세월호 사건의 원활한 재판진행을 위해 2주 간격으로 재판이 열리는 일반 사건과 달리 매주 1차례 이상 공판을 진행, 신속히 선고하는 집중심리방식을 채택했다.
7월22일부터는 3일 연속 공판을 열어 일반인 탑승객 13명에 대한 증인 신문을 마무리했다. 이후 재판부는 주 3회까지 공판 일정을 늘리며 재판 일정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법원은 아울러 주법정과 보조법정을 연결하는 화면 송출 장치 등을 설치했다. 피해자의 수, 국민적 관심을 고려해 주법정인 201호 법정 이외에도 204호 법정을 보조법정으로 지정한 것이다. 보조법정에서는 화면을 통해 재판을 방청할 수 있다.
피해자·가족 및 증인을 위한 안내 리플렛과 재판절차·사건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피해자 의견서 등의 서류도 201호 법정 출입문 앞에 비치했다. 이를 바탕으로 피해자 가족들은 매 공판마다 1~2차례씩 직접 또는 재판부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법정에서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지난 8월19일에는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고 있는 단원고 피해 학생들의 가족들을 위해 광주지법에서 진행 중인 선원들의 재판이 처음으로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생중계됐다.
법률심인 대법원이 아닌 사실심인 하급심 재판에서 원격중계가 이뤄진 것은 우리 사법 역사상 이번이 첫 사례였다. 임정엽 부장판사 등 재판부는 첫 공판준비기일 때부터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의미로 가장 먼저 퇴정하는 기존 관례를 깨고 마지막으로 법정을 나서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