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란 오해의 연속이다. 무엇에 대해 알고 있다는 판단은 본만큼만 한정된다. 한정된 정보로만 엮어놓은 것이 이해라는 실체다. 보이는 것만 보고 재단해버리는 우를 범한다.
피아니스트 임동혁(30)은 이러한 실체를 지닌 이해라는 미명 하에 숱한 오해를 사고 있다.
쇼팽, 프로코피예프, 라벨 등 주로 로맨틱하면서 화려한 곡들을 들려준 그는 일부에서 낭만주의 성격만 짙은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미소년 이미지 때문에 이러한 부분이 도드라진다.
콘서트 청중의 80%는 10~30대의 여성이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 아이돌 무대를 방불케 하는 환호성이 들린다. 퀸 엘리자베스(3위·수상거부), 쇼팽 콩쿠르(3위), 차이콥스키 콩쿠르(1위 없는 4위)에 입상하며 세계 3대 콩쿠르를 석권한 '신동'의 이력도 있다. 임동혁을 다룰 때 스타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 뉴욕에 있는 임동혁을 전화로 만났다. 자신도 "아이돌 같다는 평가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세간의 그런 평가가 솔직히 "아쉽다"고 고백했다.
예컨대, 일부 청중이 그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보지 않고 재단하는 식이다. 임동혁은 형 임동민(34)과 함께 형제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한데 나이가 많은 형은 당연히 학구적, 임동민은 동생이기 때문에 가볍다고 판단해버린다. 동생이 당사자라면, 그 누구라도 아쉬워할 법하다.
"제가 이미지와 달리 음악에 대해서는 보수적이거든요. 그런(아이돌 같은) 이미지를 싫어해요. 제가 과연 인터뷰를 할 만한 사람인가라는 생각 때문에 인터뷰할 때마다 조심스럽고 쑥쓰럽기도 하고요. 제 음악을 듣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 봐주셨으면 해요."
2004년 2월 예술의전당 첫 리사이틀 이후 2년 주기로 독주 무대를 꾸려온 임동혁은 1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무엇보다 그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자리다.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중 '달빛', 바흐의 '토카타, 아다지오와 푸가 BWV 564', 베토벤의 소나타 14번 '월광', 슈베르트 소나타 20번 D. 959 등 그간 들려주지 않았던 곡들을 주로 선곡했다. 팬들은 "가장 임동혁스럽지 않은 스타일로 잘 치고 싶은 곡들"이라고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부러 변화를 꾀한다는 또 오해를 받을 법한 정황이지만, 임동혁은 "심경이 변했다기보다는 사실 음악을 하다보면 오랫동안 희로애락이 쌓여요. 그래서 균형을 맞춰가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제가 하는 것만 하면 질문이 덜 할텐데 하지 않던 것을 하니 의심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무대에 올리지 않았을 뿐이지 집에서 쳤던 곡들이거든요. 이번 프로그램이 저답지 않다기보다는 무대 위에 올리지 않은 곡들이죠. 베토벤, 바흐 무대에서 잘 할 자신이 없었어요. 무대에서 긴장감을 느끼는 편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욕심이 갑자기 들었어요. 하하하. 솔직히 음악가들이 성향을 바꾸는 것은 힘들죠. 그럼에도 욕심을 낸 것은 균형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에요."
자신이 하는 음악을 의심하지 않았던 그다. "그런데 점점 무대가 아닌 방에서 치는 곡들도 알쏭달쏭한 거예요. 예전 같으면 감정적으로 혈기왕성하게 쳤던 곡들에 대해 최근에는 고민하는 거죠. 제가 의외로 동경하는 분이 베토벤이에요. 엄격하게 치는 것을 좋아하게 됐어요."
자아가 부딪히고 있는 중이라는 설명이다. "그렇게 밸런스를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어느 때보다 이번 연주회가 중요할 듯하다. "지금까지 중요하지 않은 연주회는 없었다"는 답이다. 그래서 더 듬직했다. 이번 공연은 편견을 덜어내기 위해, 임동혁이 아닌 '피아니스트'의 곡들을 들으러 간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무대가 끝나면, 또 다른 임동혁이 그곳에 앉아 있을 테니.
임동혁은 서울 공연 전후로 지방 투어도 돈다. 8일 입국하는 그는 11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14일 노원 문화예술회관, 15일 양산 문화예술회관, 20일 과천 시민회관, 21일 김해 문화의전당, 22일 춘천 문화예술회관, 23일 광주 문화예술회관에서 청중과 만난다. 3만~10만원. 크레디아 클럽발코니 1577-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