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이야기하는 책이다."(방현석)
김남일(57) 방현석(53), 두 명의 소설가는 1994년 베트남으로 향했다. 1980~90년대, 당대 현실을 다루던 작가들이 90년대 초반 해외여행 자유화를 기회 삼아 떠난 여행이다. "우리가 우물 안에 있었던 게 아닌가"라는 자성이 여행의 동력이었다.
1994년 베트남 여행은 20년이 지나 '백 개의 아시아' 1, 2권을 탄생시켰다. 두 작가는 베트남행 비행기를 함께 탄 10여명의 소설가들과 여행 후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 모임을 결성, 만남을 이었다. 베트남에서 아시아로 관심을 확장한 이들은 사단법인 아시아문화네트워크를 거쳐 아시아 문학을 소개하는 계간 '아시아'로 활동반경을 넓혔다.
"아시아 문학을 소개하면서 문학 작품들의 출현 배경, 아시아의 오래된 정신들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작품을 읽는데 제한적이었다. 그리스 로마나 서구의 신화들을 잘 알고 있는 것에 비해 그에 뒤떨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을 거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방현석)
문화체육관광부 아시아문화전당이 진행하는 '아시아 스토리 자원 사업'의 지원으로 5년 전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소수민족 작품을 제외한 중국·일본 작품, 아랍 '천일야화'의 상당 부분을 뺀 국내 발간 아시아의 우화, 서사시들을 훑었다. 모두 495종, 전체 5141편의 작품이다.
"우리가 연구자였다면 이런 책이 나오지 못했을 거다.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통로 역할을 하는 책은 우리처럼 능력은 없지만 겁 없이 돌아다니는 소설가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김남일)
책에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100개의 이야기가 담겼다. 2011, 2012년 아시아 100대 대표 스토리에 선정된 200개의 이야기를 추리고 이야기의 출현 배경, 다른 나라 이야기와의 관련성 등을 적었다. "100개의 이야기는 최고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시아 정신을 이루는 수많은 이야기로 가는 관문이다. 100개의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아시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방현석)
두 소설가가 "진작 알았더라면"하는 이야기로 상상력을 뽐내는 이야기들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매력적인 서사시로 손꼽힐 만한 '마하바라타' '샤 나메' '라마야나' '길가메시'를 비롯해 '게르세르' '마나스', 우리의 '바리공주'까지 아시아의 매력적인 서사들을 한 데 모았다.
"지난해부터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했는데 내가 이 이야기들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 문학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한국 작가들에게도 권하고 싶다"(방현석), "'라마야나'의 경우 그리스 로마 신화 못지않은 대단한 상상력을 담고 있다. 내가 재미없는 소설가로 알려졌는데 '라마야나'를 일찍 알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할 정도로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김남일)
소수자나 경계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더 쏟았다. 책은 거대한 존재가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수직적인 세계창조가 아닌 지렁이와 까치 등이 협력해 세상을 만드는 방글라데시 산탈족의 창조신화 등 주류의 상상력에 일침을 가하는 이야기 등을 소개한다.
"국토의 크기와 관계없이 정신의 크기대로 읽힐 수 있도록 노력했다. 작지만 큰 이야기, 짧지만 놀라운 상상력을 가진 이야기들을 담으려 했다"(방현석), "이야기 자체로 과거의 내가 가지고 있었던 좁은 울타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한국 소설에 부족하다고 평가되는 서사라는 측면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바람을 해본다."(김남일) 382·328쪽, 1만6800·1만5800원, 아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