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6.03.27 (금)

  • 맑음동두천 3.5℃
  • 맑음강릉 5.3℃
  • 박무서울 5.9℃
  • 박무대전 6.7℃
  • 박무대구 6.9℃
  • 박무울산 8.6℃
  • 맑음광주 7.6℃
  • 연무부산 12.3℃
  • 맑음고창 2.5℃
  • 구름많음제주 10.7℃
  • 흐림강화 5.1℃
  • 맑음보은 2.9℃
  • 맑음금산 3.6℃
  • 맑음강진군 4.7℃
  • 맑음경주시 4.5℃
  • 맑음거제 7.6℃
기상청 제공

기본분류

서바이벌 오디션과 문화생태계

URL복사

황정미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한국사람은 노래를 좋아한다. 한 통계에 따르면 길모퉁이마다 성업중인 노래방에서 매일 190만명이 마이크를 잡는 곳이 한국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방송사들 간에 이른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경쟁이 뜨겁다. 환풍기 수리를 하던 젊은이가 일약 스타 가수로 탄생하면서 이른바 대박을 터뜨린 한 프로그램의 경우 전국 예선 참가자가 100만명을 훌쩍 넘어선다. 이런 ‘열풍’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양하다.
 
서바이벌 오디션의 인기몰이는 대형 기획사가 만들어낸 아이돌 일변도의 가요계에 약이 되는 안티테제라고 지지자들은 주장한다. 외모는 ‘루저’급이라도 노래실력과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 스타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분명 신선하다. 일부 언론은 한술 더 떠서 ‘공정사회’를 외친다. 학연과 지연으로 점철된 기성사회에 대한 반발심리로 사람들이 공개오디션을 찾아오며, 경쟁에서 진 참가자를 탈락시키는 게임의 규칙이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정사회 축소판인가 무한경쟁 각축장인가

그런데 과연 대중투표로 순위를 매기는 서바이벌 게임을 통해 ‘보통 영웅’이 탄생한다고 해서 공정사회 실현이 앞당겨질까? 프로그램 기획 차원에서는 매우 훌륭한 논리지만, 서바이벌 오디션이 우리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어줄 것이라 기대하는 순진한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더 적극적인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무한경쟁 코드를 오락 프로그램 안에 심어놓고 승자독식을 자연스레 수용하도록 만드는 효과는 결국 신자유주의 식의 기획이 아니냐는 것이다. 약간 변형을 주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아메리칸 아이돌’이나 ‘브리튼스 갓 탤런트’로 널리 알려진 글로벌 콘텐츠의 틀을 수입했다는 점도 신자유주의 비판론에 설득력을 더한다. 적나라한 점수와 순위 공개, 심사위원의 독설, 탈락의 좌절과 합격을 위한 혹독한 연습 등 화면에 비친 출연자의 모습에는 요즘 청년들의 고단한 세상살이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하지만 공정사회론이나 신자유주의 비판론이 놓치는 것이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원조 노래자랑 프로그램이 시들해진 이즈음, 서바이벌 오디션이 새삼스레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문화적 맥락을 들추어봐야 한다. 1980년 12월 시작된 장수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은 말 그대로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신명나는 노래판을 벌인다. 평범한 이웃들의 때로는 멋진, 때로는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함께 웃고, 한국인의 전형적인 공동체 정서를 확인하는 놀이문화가 바탕에 있다. 여기에서 노래는 공동체의 정을 확인하기 위한 매체 노릇을 한다.

‘전국노래자랑’에서 진화한 놀이문화

그런데 요즘 서바이벌 오디션은 한층 진화한 모습이다. 예선 분위기는 ‘전국노래자랑’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일단 열명 내외의 본선 진출자가 가려지면 그때부터는 전혀 새로운 판이 벌어진다. ‘18번 노래를 잘 뽑아내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매회 이른바 ‘미션’으로 주어지는 새로운 곡을 소화해야 하며 까다로운 과제 때문에 실수를 연발하기도 한다. 기성 가수 역시 다른 가수의 히트곡을 새로운 스타일로 표현하는 모험을 감수해야 한다.
 
‘전국노래자랑’ 외에도 다양한 형식의 가요순위 프로그램, 심야시간대의 콘서트 프로그램 등이 있었지만 이번 경우는 좀더 새롭다. 가수가 자기 히트곡을 부르거나 익숙한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틀에서 벗어나, 매번 선곡-편곡-새로운 스타일의 연출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쇼의 중심으로 부각된다. 무대에 서는 것은 출연자 개인처럼 보이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공연의 콘텐츠는 기획자, 편곡자, 보컬 코치, 반주를 담당하는 밴드와 악기연주자를 아우르는 하나의 큰 시스템에 의해 좌우된다.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오디션이 연출하는 다양한 무대를 보고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대중의 취향이다. 누구는 선곡을 잘못 했다느니, 누구는 리듬감이 뛰어나다느니, 누구는 계속 같은 스타일의 노래만 부른다느니 하는 나름의 비평을 주고받으며 재미를 느끼는 익명의 청중은 서바이벌 오디션 열풍의 숨은 주역이다.

문화생태계를 풍요롭게 가꾸려면

‘아이를 키우는 데 마을 전체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서바이벌 오디션의 스타 탄생은 취향을 길러주고 재능을 인정해주는 대중문화 생태계가 있기에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화생태계 안에는 생산자와 수용자, 자본과 권력을 거머줜 대형 기획사부터 가난한 인디 뮤지션, 짬짬이 갈고닦은 실력으로 동호인 밴드를 결성하거나 자기 연주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공유사이트에 올리는 프로슈머(prosumer, 생산자+소비자)까지 다양한 구성원들이 공생한다.
 
문화생태계의 생명력은 다양성과 개방성에서 나온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획일적인 자기증식은 곧 한계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엇비슷한 아이돌의 난립, 이른바 중독성 강한 후렴구의 무한반복, 어느 가난한 인디 가수의 쓸쓸한 죽음 등은 대중문화 생태계의 위기를 알리는 적신호다. 서바이벌 오디션에서 엿보이는 다양한 음악 스타일과 개성, 그에 호응하는 청중의 취향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녹색신호가 되기를 바란다.
 
문화생태계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키우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이 바로 문화권(cultural rights)이다. 문화권이란 누구나 문화에 접근하고 문화를 향유할 기회, 다양한 문화적 표현을 보장받을 권리를 말한다. 문화권의 위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오케스트라 운동 ‘엘 시스테마’다. 가난을 물려받은 아동과 청소년들이 무기나 마약 대신 악기를 손에 잡고 오케스트라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이들의 삶을 바꾸려는 운동은 1975년 허름한 창고에서 불과 11명의 청소년으로 출발했다. 그 후 무려 30만명의 청소년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갔다. 현재 베네수엘라에는 500개의 오케스트라가 조직되어 있으며 이제 국제적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오케스트라 프로그램을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엘 시스테마’는 단지 글로벌 트렌드나 히트상품이 아니라 문화권 보장을 위한 사회운동이자 정책 인프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운동을 처음 시작한 아브레우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전국에 오케스트라의 씨를 뿌리면서 우리는 베네수엘라의 모든 지역에서 누구든 문화와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문화접근권을 민주화했다.”

경제적·사회적 약자 위해 문화접근권 보장해야

최근 취업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젊은이들을 인터뷰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의 문화적 목마름이 무척 크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내가 만난 많은 젊은이들은 취업 면접에서 계속 고배를 마시고 88만원에도 훨씬 못 미치는 아르바이트 수입으로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자기 나름의 문화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있다. 구립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거나 틈틈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가 하면,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이면 집안 곳곳에 페인트칠을 하는 사람도 있다. 가난한 어린이, 청년 실업자, 은퇴한 노인, 그리고 인생의 고비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문화는 자신의 인간다움을 확인해주는 소중한 체험이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쪼개어 피아노와 작곡을 배운다는 이야기를 비밀처럼 털어 놓던 서른 즈음의 한 청년이 기억난다. “열심히 연습해서 ‘슈퍼스타 K’에 나가보세요.” 내 격려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정도는 못되고요, 그냥 나중에 직장인밴드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서바이벌 오디션의 극적인 스타 탄생보다, 어느 청년실업자의 소박한 꿈이 내게는 훨씬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특집-조재희 더불어민주당 송파구청장 예비후보】 송파의 삶을 디자인하다
[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이번 6.3 지방선거는 단순한 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회 의원 선출을 넘어 ▲정권에 대한 평가 ▲중앙 정치 영향력의 반영 ▲행정구역 재편에 따른 새로운 선거구 조정 ▲선거 질서 관리 강화 등의 이슈가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중요한 정치 이벤트로 평가되고 있다. 2024년 말 비상계엄 사태와 2025년 정권 교체(탄핵 등 정치적 격변 시나리오 포함) 이후 치러지는 선거인 만큼, 민심의 향방이 어디로 향할지가 최대 관심사이다. 집권 여당이 된 민주당은 지방권력을 새로 잡거나 수성해야 하는 입장이고, 야당이 된 국민의힘은 상황 반전을 위한 토대마련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감을 극복해야 하는 양상이다. 특히, 정치 양극화와 중앙정치 흐름이 지역 민심에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송파구청장에 출사표를 던진 조재희 예비후보를 만나 구청장 출마의 변과 구청장이 되면 어떤 구청장이 될 것인가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이번 송파구청장 선거에 출마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저는 약 40년 동안 송파에서 거주하며 세 아이를 키웠고, 송파의 변화를 몸소 겪어온 '진짜 송파 사람'입니다. 동시에 이재명 대통령 선대위 정책부본부장을 지냈

정치

더보기
대구광역시장 공천배제 가처분 주호영, 무소속 출마에 “모든 경우의 수 준비”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오는 6월 3일 실시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대구광역시장 공천에서 배제된 것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음을 밝히며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2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해 “저는 오늘 국민의힘 <중앙당 공직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이하 공천관리위원회)> 이정현 위원장 주도로 이뤄진 저에 대한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결정을 바로잡기 위해 서울남부지방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다”며 “내일 오후 2시 30분 가처분심문기일이 잡혔고 가까운 기간 내에 결정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말했다. 주호영 부의장은 “저에 대한 컷오프 결정은 정상적인 의결 절차가 없었다. 찬성-반대-기권수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사람을 모두 찬성으로 간주했다”며 “헌법, 공직선거법, 당헌·당규, 공천심사규정에 비춰 전혀 민주적이지도 않다. 나는 컷오프 요건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절차적인 흠결 사례가 있는 경우는 법원이 이미 수차례 무효임을 선언했다”고 강조했다. 주호영 부의장은 “보수 정당이 배출했던 대통령 두 분의 탄핵이 보수 위기를 낳은 결정적인 원인이지만 그동안

경제

더보기
중동전쟁 대응 유류세 5월 31일까지 리터당 휘발유 763→698원, 경유 523→436원 인하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중동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유류세를 많이 내린다. 정부는 26일 청와대에서 비상경제점검회의를 개최해 이같이 결정했다. 휘발유의 경우 유류세 인하폭을 현행 7%에서 15%로, 경유는 10%에서 25%로 확대한다. 현행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법 제2조(과세대상과 세율)제1항은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를 부과할 물품(이하 ‘과세물품’이라 한다)과 그 세율은 다음과 같다. 1. 휘발유와 이와 유사한 대체유류 리터당 475원. 2. 경유 및 이와 유사한 대체유류 리터당 340원”이라고, 제3항은 “제1항에 따른 세율은 국민경제의 효율적 운용을 위하여 교통시설의 확충과 대중교통 육성 사업, 에너지 및 자원 관련 사업, 환경의 보전ㆍ개선사업 및 유가 변동에 따른 지원 사업에 필요한 재원의 조달과 해당 물품의 수급상 필요한 경우에는 그 세율의 100분의 30(2024년 12월 31일까지는 100분의 50)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행 지방세법 제136조(세율)제1항은 “자동차세의 세율은 과세물품에 대한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액의 1천분의 360으로 한다”고, 제2항은 “제1항에 따른 세율은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율의 변동 등으로

사회

더보기
이상훈 서울시의원, 서울교통공사 사장 인사청문회서 ‘현장 안전 인력 공백’ 강력 질타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서울특별시의회 이상훈 의원(더불어민주당, 강북2)은 지난 24일 열린 서울교통공사 사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김태균 후보자를 상대로 공사의 고질적인 현장 인력 부족 문제와 관련한 당면 현안인 진접차량기지 개통 준비 부실을 지적하며 사장 후보자의 역량을 검증하였다. 이상훈 의원은 서울교통공사의 경영목표인 ‘안전한 도시철도, 편리한 교통서비스’를 언급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적정인력 확보’와 ‘적절한 설비 유지관리’를 꼽았다. 특히, 사장 후보자가 도시철도 안전대책으로 ‘인적 오류(Human Error) 리스크관리’를 여러 차례 강조한 것에 대해 “안전에 필요한 적정 인력 배치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적 오류를 관리하겠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상훈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서울교통공사 4급 이하 현업 인력은 정원 대비 393명이나 부족한 반면, 본사에서 일하는 4급 이하 현원은 정원보다 96명이나 더 많은 기형적 상황이다. 이 의원은 “현장에서 시민안전을 책임지는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데 본사만 비대해진 상황에서 어떻게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겠느냐”며 조속한 정원 확보와

문화

더보기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의도한 듯한 제작 연출은 ‘과유불급’이었다
최근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영된 트롯 경연 프로그램 ‘미스트롯4’가 큰 인기를 끌며 많은 화제를 낳았다. 매회 참가자들의 뛰어난 노래 실력과 화려한 무대가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고, 프로그램은 높은 시청률 속에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연 프로그램의 연출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장면도 적지 않았다. 특히 한 여성 참가자의 이야기는 방송 내내 시청자들의 감정을 강하게 자극했다. 그는 결승 무대에서 탑5를 가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2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최종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득표를 얻어 순위를 뒤집고 결국 ‘진’의 자리에 올랐다. 실력 있는 가수가 정상에 오른 것은 분명 당연한 결과였고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을 지켜본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또 다른 평가도 나왔다. 우승 자체보다 방송이 보여준 연출 방식이 과연 적절했느냐는 문제 제기였다. 이 참가자는 이미 예선전부터 뛰어난 가창력과 안정된 무대매너로 주목을 받아왔다. 예선 1회전에서 ‘진’을 차지하며 일찌감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됐고, 무대마다 탄탄한 실력을 보여주며 심사위원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그는 10년 차 가수였지만 그동안 큰 기회를 얻지 못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