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5.08.03 (일)

  • 흐림동두천 29.3℃
  • 흐림강릉 30.6℃
  • 흐림서울 32.3℃
  • 구름많음대전 30.7℃
  • 구름조금대구 32.7℃
  • 구름많음울산 30.7℃
  • 구름조금광주 31.8℃
  • 맑음부산 32.0℃
  • 구름조금고창 32.7℃
  • 구름조금제주 31.6℃
  • 흐림강화 30.0℃
  • 흐림보은 29.2℃
  • 구름많음금산 31.4℃
  • 구름조금강진군 31.5℃
  • 맑음경주시 32.0℃
  • 맑음거제 31.0℃
기상청 제공

기본분류

자기 손발 묶는南, 벼랑 끝 걷는北

URL복사

조효제 - 베를린자유대학 초빙교수

호메로스의 《오디쎄이아》 12장에는 유명한 쎄이렌의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이 통과할 뱃길 길목에 두 쎄이렌이 기다리고 있음을 안 오디쎄우스는 밀랍을 손으로 이겨 뱃사람들의 귀를 막고, 자신의 손과 발을 돛대에 묶게 한다. 쎄이렌의 노랫소리에 유혹되지 않기 위해서다. 마침내 쎄이렌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뱃사람들은 더 열심히 노를 젓는다. 오디쎄우스가 유혹에 넘어가려 하자 일행인 에우릴로코스와 페리메데스가 그를 더욱 세게 밧줄로 묶어서 일행은 결국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신화에서 힌트를 얻어 국제관계학에서 이른바 ‘결박 이론’이 나왔다. 자신의 손발을 묶어버림으로써 온건한 협상의 퇴로를 스스로 차단한다는 뜻이다.

전쟁의 발발도 ‘결박 이론’으로 해석 가능하다. 무력충돌은 언제나 무력의 사용 가능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상대방이 계속 어깃장을 놓으면 우리 쪽에서 무력을 사용할 것이라는 암시를 해도 상대가 그것을 진짜로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저 협박용 발언이거나 강경한 수사에 불과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이때 우리 쪽에선 우리 의도가 그저 공허한 언사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더욱 강경한 메세지를 발표하거나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1차 걸프전 당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 대한 자신의 결전 의지가 확실함을 보여주기 위해 수 차례 공개적으로 쿠웨이트 해방을 단언했고 실제로 50만 이상의 미군병력을 걸프지역에 배치했다.

강경대응 선언에 뒤따르는 정치적 효과

이렇게 스스로 손발을 묶어버리는 행위엔 두 가지 효과가 따른다. 우선 상대방에 대해 우리 쪽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 진정한 의도가 있음을 새삼 인식시킬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행동이 자기 쪽에 대해서도 구속력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게까지 호언장담해놓고 막상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을 경우 받게 될 공신력의 추락은 충돌 자체보다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청중 비용’이다. 국제적으로든 국내에 있어서든 자기가 한 말을 실제로 실천하지 않을 때 받게 될 타격을 뜻한다. 그러니 잠재적 ‘청중 비용’이 커질수록 공언이 공언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급격히 늘어난다.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은 이같은 전쟁 이론이 아주 잘 적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연평도 사태에 대해 대통령은 “북의 도발에는 반드시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하면서 “결단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신임 국방장관은 북의 추가공격이 있다면 “항공기를 동원해 폭격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이 정치적 결박이었다면 장관의 발언은 군사적 결박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국내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추가 공격이 있을 경우 공언해온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청중 비용’을 치러야 할 판이다. 다시 말해 군사 정면충돌의 위험이 연평도사태 이전보다 더 높아진 셈이다. 항공기로 폭격하면 북은 북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니 이는 거의 자동적인 확전을 뜻할 수도 있다.

무력충돌의 가능성 냉정히 인식해야

국제적으로 볼 때 한반도를 둘러싼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있는 것 같다. 우선 본격적인 전면전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중국과 미국이 전쟁을 원치 않는다, 동북아시아에 몰려 있는 국제경제적 이해관계상 전쟁이 발생할 수 없는 구조다, 북한에는 전면전을 수행할 수 있는 물자·에너지·역량이 없다, 전쟁시 상상할 수 없는 피해가 예상된다 (그러니 전쟁을 상상할 수 없다) 등등의 이유가 제시된다. 다른 하나는 남북간 긴장을 단순한 외교적 갈등 정도로 보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적어도 제한된 국지전 정도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런 시각은 ‘제한된’ 무력충돌이 일어나고 ‘제한된’ 피해 (예컨대 수 백 명의 사망자?)만 발생하더라도 그것의 충격파는 엄청날 것이라고 본다. 네 사람이 죽어도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지는데 수 백 명이 죽는다면 어떤 상황이 조성될까? 

우리로서는 자연히 첫 번째 시각에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남북 대치상황에서 체득한 심리적인 부인(否認)기제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시각도 모른 척할 순 없다. 얼마 전 발레리아노와 마린이라는 국제전문가들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전쟁으로 가는 길목에는 다섯 가지 선행조건이 있다고 한다. ① 분쟁 당사자들의 한쪽 또는 양쪽에 정치·군사 동맹관계가 형성되어 있는가 ② 상호간 군비를 증강하고 있는가 ③ 영토를 둘러싼 갈등이 있는가 ④ 상호갈등의 역사가 있는가 ⑤ 한쪽 또는 양쪽에 강경파들이 득세하고 있는가. 경험적으로 보아 이 가운데 세 가지 조건만 충족되면 전쟁 가능성은 아주 높아진다고 한다. 이 논리를 한반도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제한전만 일어나더라도 전쟁은 전쟁이다. 그리고 20세기의 위대한 영적 지도자 토마스 머튼이 지적하듯 제한전이 제한전으로 끝난다는 보장도 없다(‘머튼의 평화론’). 현대전에 있어 일단 충돌이 발생하면 그것이 깔끔하게 마무리될 것이라는 희망은 환상에 불과하다. 적이 내게 가한 만큼만 정당하게 보복한다는 전쟁론, 즉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제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백보를 양보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단 1퍼센트만 된다 하더라도, 전쟁이라는 현상의 성격상 그 1퍼센트를 방지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사리에 맞다. 99퍼센트에 의존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북한의 위태로운 도박과 기대심리

전쟁 발발의 ‘결박 이론’ 외에도 우리가 잘 아는 ‘벼랑 끝 이론’이 있다.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위태위태한 도박을 벌인다는 위기협상 전략을 말한다. 그런데 ‘벼랑 끝’이라는 이미지는 한번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끝이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이론을 창안한 토머스 셸링에 따르면 ‘벼랑 끝’보다는 ‘진창의 가파른 길’이라는 비유가 더 정확하다고 한다. 한발 한발 더욱더 위험한 비탈길로 발을 내딛는다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아직까지는 괜찮겠지 하는 불확실한 요행을 바라는 기대심리가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러니 벼랑 끝 전술은 한번으로 끝나는 행동이 아닐 수 있다. 북한의 행위도 이런 경우에 속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게다가 추가공격까지 공언하고 있으니 더욱 위태로운 도박을 약속한 거나 다름없다.

요약하자면 현재 북한은 질퍽거리는 비탈길로 치닫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위험한 불장난이 아닐 수 없다. 한편 남한은 스스로 손발을 묶는 결의를 과시하고 있는 듯한데 이 또한 미숙하고 감정적인 대응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군사도발을 통해 어떤 양보를 얻어내고자 했다면 그 목표는 더욱더 멀어질 수밖에 없고, 남한이 정당한 보복 운운하면서 군사적으로 상황을 제압하겠다고 하면 그 목표 역시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대화와 협상말고 과연 다른 방법 있을까

고전적인 전쟁이론이 한반도에서 이렇게 전형적인 모습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아주 원론적인 말 같지만 이 시대에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우리의 실존에 얼마나 중핵적인 자리를 차지하는지 엄중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현 국면에서는 양쪽 모두 대화와 협상 테이블로 나오는 길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본다. 공존이든 번영이든 통일이든 일단 전쟁 가능성의 불길을 끈 다음에야 생각할 수 있는 일 아닌가?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정치

더보기
방송3법·노란봉투법, 여당 주도로 국회 법사위 통과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국회 법사위는 1일 전체회의를 열고 방송3법과 노란봉투법을 여당 주도로 의결했다. 이춘석 법사위원장은 방송3법에 대한 질의응답이 진행되는 중 국회법에 따라 토론을 중단시키자는 민주당 측의 제안을 받아들여 곧바로 방송3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쳤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무슨 토론 종료냐" "이렇게 진행하는 게 어디 있느냐"라며 항의했다. 국민의힘 간사인 박형수 의원은 "몇 시간을 준비한 토론 절차를 생략하면 국회랑 의회는 왜 있나. 헌법재판소 판결에도 소수의 의견 표명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상황에 대해 법사위원장이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이 일방적인 법안 상정과 발언 기회 박탈을 놓고 지속적으로 항의하자, 이 법사위원장이 "회의장 질서를 어지럽혔다"며 한때 퇴장을 요구하기도 했다. 방송3법은 KBS·MBC·EBS 공영방송 이사 수를 확대하고 이사 추천 주체를 늘리는 내용이 골자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개념을 근로계약 체결 당사

경제

더보기
IBK기업은행, 창립 64주년 기념식 개최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IBK기업은행은 1일 창립 64주년을 맞아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에서 임직원 약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64주년 기념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날 김성태 은행장은 중소기업을 향한 사명감과 진심을 원동력으로 성장해 온 기업은행의 역사를 돌아보며 글로벌 초일류 금융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한 도전과제를 밝혔다. 김 행장은 “특히 올해 전례 없는 각종 위기상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면서, 미국 발 관세위기 등 대내외 위기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중기대출 지원으로 중기금융 역대 최대 점유비를 달성하는 한편, 소상공인의 금융비용 부담을 완화하고 상생금융을 적극 실천한 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아울러 ‘하남데이터센터 이전’과 ‘나라사랑카드 3기 사업 유치’ 등 미래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사업자등록 원스톱 서비스’, ‘AI 기술을 활용한 보이스피싱 탐지기술 도입’ 등을 통해 고객가치를 최우선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한 것도 그간의 주요 성과로 꼽았다. 이어 “불확실성의 위기가 심화할수록 변하지 않는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고객을 향한 진실 되고 선한 마음으로 고객의 가치를 높이는 혁

사회

더보기

문화

더보기
KNSO아카데미 ‘컬러풀’ 공연... 지휘자 크리스토프 포펜 협연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예술감독 다비트 라일란트)는 오는 8월 20일(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KNSO아카데미 5기 청년 교육단원들의 성과를 담은 무대 ‘컬러풀’을 선보인다. KNSO아카데미는 클래식 음악의 다양한 무대 경험과 실무 교육을 통해 균형 잡힌 역량을 갖춘 차세대 음악가를 양성하는 실전형 교육 프로그램으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2020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올해 초 통합 공모를 통해 교육단원 60명이 선발됐다. 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단한 이들은 국립심포니뿐 아니라 파리 오케스트라와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등 내한한 세계 유수 교향악단의 단원들과 솔리스트들의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국제적인 수준의 밀도 높은 교육을 받았다. 또한 올해 총 14회의 실내악 및 지역 공연에 참여하며 무대 경험과 앙상블 역량을 실전에서 체득할 예정이다. 이번 공연은 이들이 상반기 동안 갈고닦은 성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자리로, 현대음악, 협주곡, 교향곡을 아우르며 단원들의 음악적 스펙트럼과 가능성을 보여준다. 공연의 포문은 김은성 작곡가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만화경’이 연다. 2023년 ‘작곡가 아틀리에’ 우수작으로 선정된 이 작품은 국립심포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의대생 전공의 복귀하려면 무조건 사과부터 해야
지난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해 집단 이탈했던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지난 14일 전격 복귀 의사를 밝히면서 17개월 만에 의정 갈등이 마침표를 찍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복귀자들에 대한 학사일정조정, 병역특례, 전공의 시험 추가 응시기회 부여 등 특혜 시비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면 의정갈등의 불씨는 계속 남아있게 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1년5개월 만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 의정 갈등의 해법은 의대생, 전공의들이 무조건 국민과 환자들에게 의정 갈등으로 인한 진료 공백 사태에 대해 사과부터 하고 그 다음 복귀 조건을 제시하는 수순을 밟는 것이다. 지난해 2월부터 발생한 의정 갈등은 정부가 고령화 시대 의료 수요 증가와 지역·필수의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과 지역의료 강화, 필수 의료 수가 인상 등을 묶어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 추진을 강행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의료계는 이에 대해 의사 수 부족이 아닌 ‘인력 배치’의 불균형 문제이며, 의료개혁이 충분한 협의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었다고 반발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의료계는 의사 수 증가가 오히려 과잉 진료와 의료비 증가를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