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6.03.04 (수)

  • 맑음동두천 12.0℃
  • 맑음강릉 9.8℃
  • 맑음서울 10.8℃
  • 맑음대전 12.1℃
  • 맑음대구 13.2℃
  • 구름많음울산 11.2℃
  • 맑음광주 12.3℃
  • 맑음부산 12.8℃
  • 맑음고창 11.2℃
  • 구름많음제주 13.4℃
  • 맑음강화 9.2℃
  • 맑음보은 10.2℃
  • 맑음금산 10.7℃
  • 맑음강진군 13.4℃
  • 맑음경주시 13.1℃
  • 맑음거제 11.9℃
기상청 제공

사람들

【책과사람】 훈민에서 계몽으로, 계몽에서 민주로 <한글연대기>

URL복사

우리 피에는 한글이 흐른다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한글의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시간순으로 펼치면서 한글이 만들어진 후 어떻게 쓰이고 어떻게 변해 왔는지뿐만 아니라, 한글이 쓰이고 변하는 맥락을 짚으면서 한글을 어떻게 생각하고 한글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 왔는지를 보여 준다.

 

체제 유지의 도구에서 해체의 도구로

 

세종은 성리학적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쉽고 간편한 한글이 삼강오륜의 이치를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도구가 되리라 기대했겠지만, 한글은 동학, 천주교 등 삼강오륜의 이치에 반하는 지식과 사상조차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쉽고 간편한 글자였다.

 

한글은 백성을 가르칠 글자이면서 백성이 자신의 뜻을 펴는 글자이기도 했다. 한글을 배운 백성은 자신의 뜻을 펴는 데 한글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한글을 창제한 후 6년이 지난 시점에 한글 벽보가 나붙었다. 당시 기록을 보면 한글 벽보뿐만 아니라 한글 투서도 횡행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정조 임금은 민심이 동요하는 국면마다 한글로 유지를 내려 백성을 안심시켰다.

 

한글은 상하 계층이 공유할 수 있는 문자로 사용자가 가장 많았기에, 조선 사회의 체제 유지를 위한 도구로 적극 활용됐다.

 

한문을 교육하는 데도, 과학 기술의 성과를 보급하고 교육하는 데도 한글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문자였다. 중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널리 보급된 한글은, 근대화의 압력이 거세지는 시기, 근대 사회를 여는 강력한 도구로 새롭게 등장했다.

 

백성에게 삼강오륜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백성의 문자로 깊이 뿌리 내린 한글이 삼강오륜으로 상징되는 중세적 질서를 해체하고 근대적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공론장의 주류 문자가 되었던 것이다.

 

상처입은 민족의 자존심을 치유하다

 

한글은 그 기대의 방향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세종은 자신이 창제한 문자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세종을 포함하여 당시 사람들은 진서(眞書) 혹은 문자(文字)로 불렸던 한문과 한자에 대비하여, 훈민정음을 ‘언문’(諺文)이라고도 불렀다. 근대에 오면서 언문은 ‘국문’(國文)이 되었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곧 일본에 병합됐고, 국문과 국어는 일문과 일본어를 뜻하는 이름이 되었다. 우리말과 글이 주류 영역을 벗어나면서 조선인들은 ‘국문’을 대신할 이름을 찾았고, 이에 ‘한글’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한글’은 대한제국의 글 또는 문자라는 뜻으로 사용되던 ‘한문’(韓文)을 풀어쓴 것이었다. ‘국문’에 대비된 비주류 문자의 이름이었지만, 나라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한글’은 독립의 의지를 일깨우는 이름이기도 했고 민족의 얼을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대한제국의 문자’라는 의미는 새롭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고, 상처 입은 민족적 자존심을 치유하기 위해 ‘한글’에는 ‘큰’, ‘위대한’ 또는 ‘유일한’이라는 의미가 덧붙었다.

 

1894년, 고종이 “법률·칙령은 모두 국문을 기본으로 하고 한문으로 번역을 붙이거나 혹은 국한문을 혼용한다”는 칙령을 내린 뒤부터 한글 글쓰기는 무한 확장됐다.

 

한글 글쓰기는 한글 신문의 연대기 속에서 구체화됐다. ‘독립신문’에서 시작하여 ‘대한매일신보’에서 분명해진 한글 신문의 가능성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거쳐 ‘한겨레신문’에서 꽃을 피운다.

 

한편, 이 책은 이외에도 외래어 표기의 연대기, 어문규범 제정의 연대기, 국어사전 편찬의 연대기, 한국어 세계화의 연대기, 한글 기계화의 연대기, 한글 응용의 연대기, 한글날 제정의 연대기 등 다각도로 한글의 역사와 그 의미를 치밀하게 분석한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정치

더보기
윤희숙, 서울특별시장 출마 선언...“윤석열과 절연 주저하면 심판, 용적률 500% 제4종 일반주거지역 도입”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국민의힘 윤희숙 전 의원이 오는 6월 3일 실시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에 출마할 것임을 밝혔다. 윤희숙 전 의원은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해 “지금 대한민국을 힘으로 짓누르며 나라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이재명 정부가 이번 지방선거로 서울마저 장악하게 된다면 대한민국과 서울은 모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질 것이다”라며 “제가 사랑하는 서울이 끝없이 추락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저는 대한민국의 심장인 서울을 지키고 다시 일으키는 싸움을 시작하려 한다”고 말했다. 윤희숙 전 의원은 “저는 작년 국민의힘 혁신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계엄과 파면에 대한 당의 입장변화를 촉구하며 단호하게 절연을 주장했다. 역사의 준엄한 흐름을 거슬러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며 “만약 당 지도부가 지금처럼 결단을 주저한다면 결국 지방선거라는 심판대에서 국민의 선택으로 매듭지어질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윤 전 의원은 “집값이 오르기 시작하면 더불어민주당 정부는 과거에나 지금이나 예외 없이 세금폭탄, 대출 봉쇄, 투기꾼 사냥, 이 3종 세트로 부동산 시장을 초토화시켰다. 그러나 지금같이 가파른 공급 절벽을 넘는 길은

경제

더보기

사회

더보기

문화

더보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작곡가 손다혜·홍민웅 신작과 대표작 소개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 전속단체 국립국악관현악단(예술감독 겸 단장 채치성)은 관현악시리즈Ⅲ ‘2025 상주 작곡가: 손다혜·홍민웅’(이하 ‘2025 상주 작곡가’)을 3월 20일(금)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이번 무대는 2025년 상주 작곡가로 선정된 손다혜·홍민웅과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들이 지난 1년간 호흡하며 빚어낸 결실을 발표하는 자리로, 두 작곡가의 신작과 대표작을 동시에 선보인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상주 작곡가 제도는 지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국악관현악 분야 최초로 도입된 프로그램으로, 국내외 최고 작곡가들이 악단과 밀도 있는 소통을 통해 완성도 높은 국악관현악 창작곡을 발표해 왔다. 김성국(2016년 상주 작곡가)의 ‘영원한 왕국’과 최지혜(2017-2018 시즌 상주 작곡가)의 ‘감정의 집’이 대표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국악관현악 주요 레퍼토리로 사랑받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립국악관현악단은 2025년 창단 30주년을 맞아 8년 만에 상주 작곡가 제도를 부활시켰다. 이번에 선정된 작곡가는 한국 창작음악의 차세대 대표 작곡가로 주목받는 손다혜와 홍민웅이다. 손다혜는 창극·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천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분노를 잠재운 적절한 리액션과 공감의 힘
갈등의 시대, 우리는 왜 먼저 ‘앉아도 될까요’라고 묻지 못하는가. 지난 2월 25일 오후 4시 30분경, 오이도에서 진접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4호선 안은 여느 때보다 고단한 공기로 가득했다. 출근 시간대가 아닌데도 노인석 주변은 빈틈없이 붐볐고, 연로한 분들이 서 있는 모습이 곳곳에 보였다. 어느 정류장에서인가 붐비는 노인석의 중간 한 자리가 나자마자 한 어르신이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평화는 채 두 정류장을 가기도 전에 깨졌다. “아 XX, 좀 저리로 가라고!” 먼저 앉아 있던 노인의 입에서 날카로운 고함과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다. 좁은 자리에 가방까지 메고 끼어 앉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새로 앉은 이는 “나도 앉을 만하니 앉은 것 아니오”라며 항변했지만, 쏟아지는 폭언 앞에 결국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래, X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속담을 떠올리며 자리를 뜬 노인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험악해진 분위기 탓에 어느 누구도 그 빈자리에 선뜻 앉지 못했다. 분노의 에너지가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오지라퍼 계열인 필자는 객기 부리듯 용기를 냈다. “여기 좀 앉아도 될까요?”라고 묻자, 화를 내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