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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화순의 아트&컬처] 중견화가 도윤희, 과감한 도전과 파격 변신 담은 <BERLIN>으로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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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7일까지 갤러리현대서 40여점 전시
데카당스한 베를린에서 새로운 길 찾아
촉각, 질감, 색채의 향연이 빚어낸 베를린

 

 

40여년간 시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해온 중견화가 도윤희가 오랜만에 갤러리현대에서 과감한 도전과 파격을 보여준다. 

 

도상봉 화가의 손녀로 잘 알려져 있는 그가 오랜만에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다. 전시명은 <BERLIN>. 2016년부터 2021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도윤희의 과감한 도전과 파격적 변신을 담은 40여점을 걸었다. 2012년 독일 베를린 동쪽에 스튜디오를 마련해 새로운 작품세계를 열었던 도윤희 작가가 2015년 <Night Blossom>전을 연 이후 7년 만에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개인전이다. 이번에는 코로나19로 서울에서 작업한 작품도 1/3 정도 된다. 이번 전시를 위해 갤러리현대의 운송팀이 베를린 스튜디오에 가서 작품을 운반해왔다. 

 

 

작가에게 “어떤 동기로 베를린으로 떠났는지, 그에게 베를린은 어떤 의미였는지” 물었다. 


“갑자기 답답해서 어디론가 떠나야지만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때가 왔다. 마치 내가 갇혀서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 만난 곳이 베를린이었다.”


40대에도 여러 레지던시와 파리, 뉴욕, 사하라 사막, 중국 차마고도 등지를 돌아다녔고, 그러다가 베를린에 닿았다. 그때가 1995년경. 이상한 에너지를 감지했지만 떠나온 그곳을 다시 찾은 것은 2000년.


뉴밀레니엄을 맞아 파티겸 뉴욕에 갔다가 뭐에 이끌리듯 베를린으로 갔다. 베를린의 테크노 음악의 그 깊이가 남다르다고 느낀 그는, 베를린 장벽이 뚫린 동베를린의 독특한 아름다움, 구조적 미와 영혼을 뒤흔드는 음침한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공산주의 치하였던 동베를린은 과거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보존돼있으면서도 정치적인 느낌도 있고, 자본주의의 과잉 친절과 서비스가 없으니 내가 말하기 싫을 땐 침묵해도 상관없는 곳이었죠. 그래서 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오롯이 내 자신에게 집중하게 하는 정말 제게 딱 맞는 곳이었어요.”


베를린이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알려줬다고 한다. 카페에 앉아 있으면 ‘아, 내가 이런 사람인데...’ 하는 생각도 들어 스스로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됐단다.  

 


자신을 끔직하게 예뻐해주셨던 할아버지(도상봉 화백)도 떠올랐다. 자신의 화가로서의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기도 했다. 아주 어렸을 때는 화려한 색채를 썼다가 30대에는 오히려 어두워졌다가 지금은 다시 자유로워졌다. 


그는 본래 연필을 사용하기도 했고, 문학적인 분위기도 좋아했다. 그런데 그것이 회화적인 부분과 상충됐고, 지금은 연필 사용과 문학적인 부분을 버렸다. 


“결국 페인팅은 화가의 내면적 현실의 반영이에요. 자신의 생각과 정신이 손을 통해 물질화되죠. 내 몸과 마음이 협동을 해서 새로운 경험을 창조하구요.”


도윤희는 촉각적인 부분, 색채의 자유로움을 과감하게 보여준다. 


“회갑을 지나면서 자유로와졌다”는 그는 말에서부터 자유로움이 넘쳐 흘렀다. 


그동안 해온 모든 작업들이 서로 만나서 부딪치면서 새로운 예술의 길을 만났다. 

 


“촉각적인 것, 색채가 새롭게 다가왔어요. 제게는 색이 혼합되고 부딪치며 일어나는 감정이 대단히 중요해요. 물감을 손으로 조각하듯 만지면서 촉각적인 부분을 표현했죠. 맨질맨질 우둘투둘하게 표현하고 또 빠른 속도도 천천히 다지는 것으로 바뀌더군요. 직관 등이 많이 작동하며 완전히 저의 내면을 드러냈어요. 옛날 작업보다 정신과 몸이 하나되어 작업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어요.”


마치 무당이 굿을 한 듯 작업을 하면서 시간도 잊고 황홀경에 빠졌다 나왔다.

 

갤러리에서 만난 <BERLIN>


인간의 궁극적인 욕망이 내 안의 신화대로 살고 싶은 것이라면, 화가 도윤희는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낸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가장 관능적인 소모를 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작품들은 마음이 지적으로 이해한 것을 몸이 화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페인팅은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뭔가 계속 쌓인 두께와 통찰력으로 나오는 것, 적후(積厚)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나이되니 세상과 화해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갤러리현대 1층 전시장은 작가가 베를린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작품 7점으로 구성된다. 전시의 출발점이 되는 이 작품들은 2015년 <Night Blossom> 전시로 변신을 꾀한 작가가 한 단계 전진하는 과정에서 완성된 서정성을 간직한 초기 모델들이다.


지하 전시장에는 화면의 촉각적 질감과 색채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는 베를린과 서울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작품들이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2층 전시장은 팬데믹 이후 대다수 서울에서 작업한, 높이 3m 이상의 대형 작품과 최근작으로 채워져 있다. 

 

국제적 주목 받은 전시


도윤희는 20세기 최고 화상 에른스트 바이엘러가 설립한 스위스 갤러리바이엘러(Galerie Beyeler)에서 2007년 아시아 작가로는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그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어떤 현상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것들을 섬세한 회화 언어로 포착한다. 

 


2011년 갤러리현대와의 첫 개인전 <Unknown Signal>에서 작가는 세포나 화석의 단면, 뿌리를 연상시키는 유기적 이미지를 흑연으로 그리고 위에 바니쉬를 반복적으로 칠해 올리는 작품을 발표했다. 


고대의 시간성을 연상케하며 생명의 본질과 근원을 철학적으로 성찰한 이 작품에, ‘읽을 수 없는 문장’, ‘눈을 감으니 눈꺼풀 안으로 연두색 모래알들이 반짝인다’, ‘살아있는 얼음’, ‘어떤 시간은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 등 한 편의 시구와 같은 문학적 제목을 더해, ‘쓴다’와 ‘그린다’는 행위 사이에 놓인 회화를 고민했다.


서울에서 베를린으로의 물리적 이동은 그의 심연의 ‘무언가’를 깨웠던 것 같다.


“작업, 장소, 경험 등 모든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벗어난 이후, 유년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기억과 시간을 반추하며, 내면의 실체와 본연의 모습을 재발견하게 됐다”는 작가는 전시명을 베를린으로 정한 것에 대해 “작가로서 전환점을 마련한 전략적 은신처이자, 50대를 지난 한 인간의 인생, 생각, 감각 그런 모든 것들, 삶, 정신의 여정을 기호화 한 것”이라 말한다. 

 


도 작가는 2015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개인전 <Night Blossom>에서 그 첫 결과물을 공개했다. 작품 제목은 모두 ‘무제’로 정하며 문학적 요소와 결별을 암시하고, 2000년대 중반부터 사용을 억제했던 색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미지를 캔버스로 구체화해 옮기는 과정에서 연필이나 붓이라는 전통적 미술 도구를 벗어나 보다 원시적 수단인 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손의 감각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화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피어나오는 형형색색의 환상적 이미지를 통해, 작가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색채’, 나아가 ‘밤이 되어서야 드러나는 세계의 이면’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역동적 힘으로 보여주는 변신


그의 7년만의 변신은 어떨까. 


<BERLIN>에서 도윤희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회화 세계를 펼친다. 작가는 회화의 기본적 언어이자 재료인 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것의 물성을 더욱 되살렸다. 


<Night Blossom>에서 작가의 손길에 따라 캔버스 화면에 만개한 꽃잎이나 뭉게구름처럼 퍼져 가던 얕은 층위의 물감은, <BERLIN>에서 색 덩어리로 강렬한 물질성을 획득하고 생명체처럼 육감적인 질감을 지닌다.

 


거침없는 선과 색 덩어리가 쌓이고 뒤섞여 형성한 다층적인 레이어들 사이에 구멍을 뚫어 빈 공간을 마련하는 등 익숙한 회화의 모습과 다른 매혹적인 미감을 선사한다.


우리의 인식과 감각을 총체적으로 자극하는 도윤희 작품의 이미지들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커다란 입구처럼 보이며, 형형색색의 꽃다발이나, 해 질 녘 강변의 쓸쓸한 잔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혹은 화면을 장악한 색의 파노라마와 물결 같은 터치는 인상주의 그림의 세부 장면을, 물감을 움켜 줬다 빠르게 펼친 손의 흔적은 고대 동굴 벽화를 떠올린다.


작가는 “화면들은 평생 경험한 다양한 시공간이 내면에 쌓였다가 이제서야 모습을 드러낸 추상적 풍경이다”라며 “이전의 서정적이며 문학적인 작업에서 시각적인 언어(pictorial language)로의 대전환을 이루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미세한 감각이 형성한 이러한 이미지의 세계를 회화의 언어로 포착하려는 집요한 실험을 보여준다. 얇고 반짝이는 표면과 두껍고 탁한 층, 둔탁한 덩어리와 민첩한 선, 밝음과 어두움, 강렬한 색과 은은한 기운, 커다란 동작과 미세한 움직임까지, 새로운 연작에서는 수많은 상반되는 요소들이 직접적이고 감각적으로 충돌과 조화를 동시에 이룬다.


시시때때로 자신의 눈앞에 아른거리는 찬란한 빛과 소용돌이치는 색들, 부유하는 형태가 증발해버리기 전에 재빠르게 붙잡기 위해, 작가는 캔버스 앞에서 마치 육탄전을 벌이듯 손, 붓, 부러진 붓의 모서리, 유리병, 망치 등 도구를 가리지 않고 활용한다.


‘그림을 그린다’는 전통적 행위는 물감을 만지고, 주무르고, 찍고, 쌓고, 선을 긋는 역동적 제스처로 나아가며, 내면의 에너지가 응축된 물감 덩어리의 병치와 축적은 조각적 영역으로까지 확장된 새로운 추상의 세계를 제시한다. 전시는 2월 27일까지. <사진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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