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6.02.10 (화)

  • 흐림동두천 -5.0℃
  • 흐림강릉 3.5℃
  • 흐림서울 -2.1℃
  • 구름많음대전 -3.2℃
  • 흐림대구 -2.9℃
  • 흐림울산 0.3℃
  • 흐림광주 -0.7℃
  • 흐림부산 3.6℃
  • 흐림고창 -3.2℃
  • 흐림제주 5.1℃
  • 흐림강화 -2.4℃
  • 흐림보은 -6.2℃
  • 흐림금산 -4.9℃
  • 흐림강진군 -1.3℃
  • 구름많음경주시 -3.6℃
  • 흐림거제 2.0℃
기상청 제공

기본분류

만년작들을 기다리며

URL복사
오오에 켄자부로오의 근작소설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책이여, 안녕!》은 만년작(晩年作)으로서 격이 있다. 살아 있는 작가에게 '만년' 운운하기 면구스러우나 오오에 스스로도 이 장편들을 일컬어 '생애 마지막 3부작'이라 하였거니와, 작품 곳곳에서 토로한 만년작에 대한 의욕과 사유가 상당하다. 오오에는 오랜 벗 싸이드(Edward W. Said)의 저작 《후기 스타일에 관하여》(On Late Style)에 대한 평에서 "예술가의 만년의 작업이, 곧잘 이야기되는 원숙함이라든가 사회와의 조화와는 반대로, 개인으로서 끌어안고 있는 모순과 카타스트로프(catastrophe, 파국)의 예감으로 부대끼는 가운데 기적과도 같이 달성된다고 하는 사실을 실증해나가는" 예라 하였다. 싸이드가 "만년이라는 것은 초월하기도 어렵고, 극복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것은 오로지 심화시킬 뿐이다"라고 내린 정의를 오오에는 재차 인용하며 만년작에 대해 받은 깊은 영감을 전한다.
만년작은 물리적인 시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노년의 작품이 모두 만년작이 아니듯 그것은 예술가의 전생애를 짊어지면서도 한편으로 끊어내고 비약하는 속성도 지니는 듯싶다. 싸이드 저작에 대한 오오에의 평가 역시 미적이고 윤리적인 가치에서 만년작이 실현됨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김정환 시인이 던진 만년작에 대한 비유는 단연 멋지고 인상적이다.
동굴벽화를 그리던 때부터 치면 예술의 나이가 수만년이잖아. 그런데 예술이 예술의 나이를 먹지 않고 인생의 나이만 먹잖아.예술이 인생의 나이를 벗어나서 예술 자체의 나이를 먹는 것, 그것을 만년작이라고 그러는 게 아닌가 싶어. (…) 만년작이라는 게 치매 속이거든. 치매라는 게 다른 사람들은 불편하지만 정작 본인은 시간 개념도 별로 없고 옛날 사람도 되었다가 정신이 멀쩡하게 돌아왔다가 그러잖아. 만년작이 그런 거 비슷한 거지.
—《대산문화》2008년 여름호

만년작이 치매 같은, 실상과 헛것, 체험과 상상, 의식과 무의식, 과거와 현재의 뒤섞임 속에 존재한다면 오오에의 3부작은 명백히 그런 세계에 속한다. 세 작품 공히 저편에 있는 자(죽은 자 혹은 과거 인물)들과 대면을 시도할 뿐 아니라 자아가 분열하여 쟁투하기도 한다. 또한 이들의 육성을 채우기 위해 음악, 미술, 영화를 포함한 수많은 고전 텍스트가 수시로 불려나오며, 특히 그의 오랜 창작방법이긴 하나 자신의 작품들에 대한 인용·변주·비평이 더욱 노골화된 것은 이 3부작이 만년작으로 기획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만년의 역할, 새로운 사람들의 출현을 장려하는 일
그런 가운데 이 소설의 전체적인 주조음은 공포와 절망에 휩싸인 어떤 징후들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오오에의 만년작들이 지니는 미적 긴장이다. 앞서 인용한 '개인으로서 끌어안은 모순과 카타스트로프'를 그대로 노출하는 일을 오오에는 미학적으로 수행한다. 그 자신 문학적 에너지를 초월이나 극복에 두지 않고 서로 모순되는 양극 사이의 긴장관계로써만 획득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지경을 그의 문장을 빌려 표현한다면 "무엇 하나 용서하지 않고, 하지만 더없이 깊은 자비로!"쯤 될 것이다.
그의 이런 미학적 접근은 아주 철저하다. 자신의 문장에 대한 비평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우울한 얼굴의 아이》에서 그는 난해, 악문, 이것이 일본어냐는 식의 비평을 받는 자기 문장에 대해서 교착어(膠着語)로서 일본어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던 의도를 밝히고 있다.(223면) 물론 그는 좋은 문체란 "묵독하는 가슴속에서 명쾌한 리듬의 음악이 솟아올라 단순하고 소박한 한 줄, 한 구절에 깊은 지혜가 읽히는, 그런 명문"이라고 밝히기도 한다. 문장의 감옥에 쉬 갇히고 마는 작가들의 운명을 생각할 때 오오에가 초기작의 미문들로부터 결별하여, 문장의 파탄까지 감수하면서 돌파하려 했던 그 미학적 도정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텍스트를 미묘한 부분까지 깊게 읽어내고 그 감상을 사유의 언어로 펼쳐놓은 대목들은 독립적인 에쎄이로도 손색이 없다. 가령 《체인지링》에서 〈마가복음〉의 예수 부활 대목에서 여자들이 느끼는 두려움에 대한 의문과 적극적인 해석은 소설의 주제로 끌어올려진다. 그는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에 불러다 놓은 텍스트들을 다시 만나게 한다. 만년 3부작의 맛은 바로 이처럼 작가생활 50년의 고독한 시간이 길러낸 비밀스런 사색들이 도처에 풍성하다는 점이다. 이것들이 소설을 더욱 장편답게 한다.
그것은 성숙한 여성 성기와는 별개의, 좀더 광포할 만큼 그 자체인 무엇이다. 넓고 풍요롭게 젖어 있는 장소. 지금까지의 경험에 입각하여 이곳은 해부학적으로 이러이러한 부분이라고 말하려 해봤자 할 수가 없다. 펑퍼짐하게 넓고 엄청나게 젖어 있는 것이다. 건강한 욕망과 중첩되는, 강한 순결. 그 자체로서 독립해 있는, 젊은 아가씨의 성적인 유로(流露). 요컨대 쎅스를 향한 준비과정이라는 것이 아니다.
—《체인지링》 349면

쓰기와 읽기를 호흡처럼 해온 오오에가 자신의 삶과 문학을 총결산한 문장은 '회복하는 인간'이다. 인간은 쉽게 파괴하고 훼손당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가까스로 회복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앞서 이 소설의 주조음을 공포와 절망이라고 했다. 작가가 심연으로 파고들어 만나는 한가닥 빛줄기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여성성'일 것이며, 이는 회복하는 인간의 실체이자 은유일 성싶다.
한국문학에도 만년작의 축복이 가득하길
그러나 이런 미적 격렬함만으로 충분히 진정성을 얻을 수 있을까? 오오에의 소설들은 외양상 일본소설의 특징인 '사소설(私小說)' 형식을 띤다. 물론 그는 자신이 사소설의 전통을 어떻게 부정하고 극복했는지 따로 밝히고 있다. 어쨌든 그가 구현한 소설적 형식은 아주 위험스럽게도 작가 자체가 주요한 미학적 축이다. 작가의 윤리성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것은 사회와 세계를 등진 채 그저 언어를 '갈고닦을' 뿐인, 오따꾸적인 삶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사회와 세계에 자신을 들이밂으로써 내면에 뿌리박혀 있는 표현의 언어를 현실적인 것으로 연마하는 것입니다.
― 산문 〈언어의 일래버레이션〉

오오에 켄자부로오의 목소리는 열도에서 단연 또렷했다. 우리가 한국인이고 그가 일본인이라서 그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린 게 아니라 그는 양심적 지성으로서 목소리를 또렷이 내왔다. 열살 때 패전을 경험한 그에게는 전후 60년간 일본인들이 살아온 삶의 방식을 소설에 담아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그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어떻게 개인의 삶에 구체적인 폭력으로 작용하는지 형상화하는 데 진력했다.
소설가는 노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자식이라는 게 오오에의 생각이다. 오오에가 3부작에서 공포와 절망을 토로한 것은 일본인의 현재와 미래가 정말 어려움에 봉착했다는 현실인식 때문이다. 따라서 만년의 소설가가 할 역할은 불안감과 상실감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들의 출현을 장려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의 후배 작가들이 저항문학으로서 자신의 만년작에 관심을 보여주기를 희망한다. 그것이야말로 일본문학의 미래라고 믿는다.
비단 일본 작가들에게만 소용되는 희망은 아닐 것이다. 근래 작가로서 어떤 각오가 없으면 안되겠다고 고민하던 나로서도 오오에의 만년작들은 큰 축복이었다. 오오에의 소설들을 치운 자리에 이청준의 소설들을 쌓아놓고 다시 이상한 설렘에 들뜨는 건 우리의 어른들로부터 이런 축복이 쏟아질 것 같은 예감 때문이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정치

더보기

경제

더보기
정청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상생 방안 빈틈없이 마련하겠다”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합의한 것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당대표가 상생 방안을 빈틈없이 마련할 것임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당대표는 9일 국회에서 개최된 최고위원회의에서 “어제 제6차 고위당정협의회가 있었다. 유통산업의 규제 불균형을 해소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해 대형마트 등의 온라인 규제를 개선하기로 뜻을 모았다”며 “이 과정에서 소상공인이 소외되지 않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온·오프라인 시장이 공존할 수 있는 상생 방안도 빈틈없이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어제 특별히 전통시장 상인들의 생존권과도 관련이 있는 문제인 만큼 이 부분에 대한 보완을 확실하게 하자고 당에서 요구도 했고 당·정·청이 이 부분에 대해서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는 9일 국회에서 개최된 대표단회의에서 “과로와 심야노동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는 정부의 역할은 어디 갔느냐? 더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입법으로 보장해야 할 여당의 책임은 어디 있느냐?”라며 “기업들이 제기하는 규제 불균형를 해소하기 위해, 매일 밤 몸을 축내며 일하는 노동자들의 '죽지 않고 일할 권리’가 외면돼선

사회

더보기

문화

더보기
하루키의 철학을 관통하는 한국 현대미술 작품 전시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이하 플랫폼엘)는 개관 10주년을 맞아 대규모 기획전 ‘하루키를 말할 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삶과 문학적 세계관에서 출발해 그의 문학적 서사와 감수성, 취향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시각예술 안에서 어떻게 변주되고 대중과 교감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플랫폼엘은 이러한 맥락들을 다양한 예술 장르와 공감각적으로 연결해 관람객을 자연스럽게 사유의 흐름으로 이끌며, 작가의 궤적을 따라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시간을 제안할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와세다대학교 국제문학관(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더욱 확장된 콘텐츠를 선보인다. 이와 함께 무라카미 하루키가 간직해 온 의미 깊은 소장품과 작업의 오랜 동반자였던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1942-2014)의 원화 200여 점을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 두 작가의 작업과 일화를 통해 창작 과정에서 주고받은 긴밀한 관계성을 살펴봄과 동시에 하루키의 삶과 세계관을 마주한다. 아울러 무라카미 하루키의 철학을 관통하는 한국 현대미술 작가 강애란, 김찬송, 순이지, 이원우, 이진영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선택은 본인 책임…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 신중해야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무엇인가를 선택하면서 살아간다. 하루에도 수십 번, 많게는 수백 번의 결정을 내린다. 식사 메뉴를 무엇으로 할지, 모임에는 갈지 말지, 자동차 경로를 고속도로로 할지, 국도로 할지 등등 매일매일 선택은 물론 결혼, 입사, 퇴사, 이직, 창업, 부동산, 주식, 코인 등 재테크 투자는 어떻게 할지 등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선택과 결과들이 쌓여 결국 한 사람의 인생 궤적을 만든다. 이런 많은 선택과 결과들 가운데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쪽은 돈과 관련된 재테크 투자의 선택과 결과 아닐까 싶다. 최근 코스피 지수 5,000돌파, 천정부지로 올라간 금값, 정부 규제 책에도 불구하고 평당 1억 원이 넘는 아파트들이 속출하는 부동산시장. 이런 재테크 시장의 활황세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판단과 선택으로 이런 활황장세에 손실만 보고 있으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허우적거리는 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선택과 결정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한다. 최근 한 개인투자자는 네이버페이 증권 종목토론방에 “저는 8억 원을 잃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새해엔 코스피가 꺾일 것이라 보고 일명 ‘곱버스(인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