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5.07.30 (수)

  • 구름많음동두천 31.2℃
  • 구름많음강릉 30.1℃
  • 구름많음서울 33.4℃
  • 구름조금대전 33.1℃
  • 구름조금대구 31.8℃
  • 구름조금울산 31.3℃
  • 구름조금광주 31.5℃
  • 맑음부산 31.8℃
  • 맑음고창 33.2℃
  • 구름많음제주 30.4℃
  • 구름많음강화 30.5℃
  • 맑음보은 30.3℃
  • 맑음금산 31.1℃
  • 맑음강진군 31.7℃
  • 구름조금경주시 32.5℃
  • 맑음거제 29.8℃
기상청 제공

기본분류

삶이 헐리고 가건물이 들어서다

URL복사
사람들의 삶이 헐리고 있다. 혹은 헐리기 직전이거나 헐릴 위험에 처해 있다. 근래의 뉴스는 삶의 방책과 터전이 헐린 사람들 소식으로 넘쳐난다.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집단으로 실업자가 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문자 메씨지 한줄에 간단히 거리로 쫓겨나며, 비정규직 중에서도 여성은 우선순위로 해고당하고, 정규직 노동자들도 곧 닥친다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칼바람 앞에 떨고 있다.
생계의 기반이 박탈당할 때 삶이 얼마나 허약하게 무너질 수 있는가에 대한 깨달음은 각 개인에게는 충격과 두려움으로 내면화된다. 현재 우리 사회에 각인된 충격과 두려움은 결과적으로는 자본의 논리가 절대 권위를 휘두르는 데 동원되고 있다. 별다른 저항 없이, 자본의 예외영역으로 여겨지던 곳에서조차 '경제 마인드'가 상위 결정권을 갖게 된 것이다.
한 예로, 대학이 수량화된 연구실적과 강의평가 점수에 따라 교수의 성과급을 결정하는 정책을 도입하면서 '대학의 기업화'가 공공연히 진행되고 있다.(이에 대한 논의는 일단 별개로 하자.) 교육의 질과 자율성, 인간적 가치를 추구해야 할 '학교'와, 기계적 발전과 이윤 달성에 매진하는 '기업'의 차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집으로 친다면, 제대로 지은 '집'이 헐리고 우리 사회 곳곳에 '가건물'이 들어서는 형국이다. 불안한 직장, 파리 목숨의 비정규직 노동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미취업자와 실업자들, 연·월·일 단위로, 심지어 시간·분 단위로 측정되는 환산가치에 의해 '쓸모'와 '처우'가 결정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팍팍하고 비루한 삶, 경제논리에 정복당하는 다양한 공공영역들. 우리 사회의 '가건물'은 보이는 형태와 보이지 않는 형태로 도처에 빼곡하게 도열해 있다. 경제위기가 테러보다 더 무섭다는 유의 정치적 발언들은 가건물의 숫자를 더욱 늘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
오늘 나를 부양하는 건
폭발 위험
유류저장고를 기어오르는
저 맹독성의 풀
나를 밟고 지나가는 삶의 과적 차량
- 이문숙 「지나는 구름을 붙잡고」 부분

이문숙 시인은 오늘 나를 부양하는 건 나를 밟고 지나가는 삶의 과적차량이라고 말한다. 가건물의 거리를 수많은 '삶의 과적차량'들이 메울 때 '나'는, '우리'는 좀더 든든히 부양받게 되는 것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것이다. 그런 순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순간도 있을 것이다.
이 시인의 시는 고통과 절망, 상실과 슬픔 등 부정적인 것들의 이중성이 출렁거리는 자리에서 태어난다. 그 이중성에 대한 균형감각을 시인은 끊임없이 스스로 배양하면서 담담하면서도 처절한 말들을 가만가만 이어간다.
헐리고 나니
꽤 넓다
계고장이 날아들고
하찮은 살림에 차압 딱지가 붙고
담장을 넘어온 이웃집 나무가 술렁거리며
쉴 새 없이 흔들려도 뭉툭하게 잘린 가지
꽃 한송이 내뱉지 못했던 집
의붓어미 같은 저녁이 몰려오면
나지막한 신음소리와 노을이 함께 엎어지던 집
날아오르던 모시흰나비가
푸성귀 아래 몸을 낮추던 집
말끔하게 닦인 돌계단은 뭉그러져
앳된 딸들이
울음으로 매달려 있어야 했던 집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침마다 계단을 씻어 내리던 물소리가 싱싱했던 집
꽃들이 겹겹이 무너지던 밤
전생의 집을 꾸려
슬그머니
모래 바람 속으로 떠나버린
그 자리 가건물에
집 짓는 사내들의 밥상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밥상 위의 푸성귀
푸성귀 속에서 그 집 배꽃 같은 딸들이 젖어
여전히 울고 있는
모래 바람 속으로 묻힌 묻혀버린
모시흰나비들이 죽은 듯 앉아 있는
불붙는 노을 속의 그 집, 집
- 이문숙 「가건물」(『천둥을 쪼개고 씨앗을 심다』, 창비 2005) 전문

집이 헐릴 때, 헐리는 것은 집만이 아니다. 그 집에 깃들어 있던 사람들의 삶과 한 세계도 헐린다. 임시로 들어선 가건물이 집 짓는 사내들의 또다른 삶의 터전이 된다 해도, 하찮은 살림에 차압 딱지가 붙어 꽃 한송이 내뱉지 못했던 집의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집 짓는 사내들의 밥상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밥상 위의 푸성귀" 속에는 헐린 그 집 배꽃 같은 딸들의 울음소리가 시퍼렇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매일 먹는 밥상 위의 푸성귀에도 그 울음이 살아 숨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시인에 따르면 아침마다 계단을 씻어 내리던 물소리가 싱싱했던 집은 어느덧 차압 딱지와 모래 바람과 불붙는 노을 속으로 묻혀버리는 중이다. 앳된 딸들이 울음으로 매달려 있어야 했던 집은 이제 시의 풍경에 저장되어 우리 곁을 떠돈다. 그 집을 기억하는 것은 분명 시의 몫이지만, 또한 단지 시의 몫만은 아닐 것이다. 집단의 논리나 이념이 아닌, 삶 자체와 세상에 가득 쌓인 울음들에 기대어 쓰인 이문숙의 시는 이 점을 묵묵히 돌아보게 한다.
조금 난데없는 비교를 하자면, 오래전 한국의 한 위대한 시인에게 시와 삶은 "벼락과 해일만이 길일지라도" 가야 하는 어떤 가없고 도저한 것이었다. 오늘 우리 세계의 변방에서 이문숙에게 시와 삶은 "천둥과 번개를 쪼개고 작은 씨앗들이 들어앉"(「세탁소」)는 광경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그 씨앗을 나누어주는 일이 되었다. 그 씨앗을 분양받아 우리 안팎에 난립한 가건물들 사이에 심기 좋은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 거듭거듭 다가오고 있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정치

더보기
박찬대 "국힘 절반 윤리특위로 내란심판 불가능…정당 의석에 위원 구성하도록 법 개정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국민의힘 절반 윤리특위로는 내란심판이 불가능하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국민의힘 절반 윤리특위로는 내란심판이 불가능하다"며 이같이 적었다. 이날 민주당·국민의힘 동수로 구성되는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를 상설화하고, 정당 의석 비율에 따라 위원을 구성하도록 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했다. 박 후보는 "문제가 있는 국회의원을 제명시킬 수도 있는 위원회가 윤리특위지만 그동안 유명무실, 사실상 허울뿐이었다"며 "그래서 저는 지난 15일 정치·정당개혁 10대 공약에 윤리특위 상설화를 네 번째 공약으로 포함시켰다"고 했다. 그는 "그런데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6명씩 들어가는 윤리특위 구성이라니 안될 일"이라며 "쌓여있는 징계요구안, 제명안이 얼마나 중요한데 결론도 내지 못할 5 대 5 윤리특위에서 논의를 하게 한단 말이냐"라고 주장했다. 이어 "저 박찬대는 민주당 원내지도부와 논의해 국민의힘의 뻔뻔스런 요구를 막아내고 아예 국회법에 윤리특위 상설화는 물론이고 구성방식까지 못박아 넣겠다"며 "현재 상임위는 국회법에 따라 각 정당의 의석 비율에 따라

경제

더보기
이노비즈협회, 민간 주도 정책 제안 플랫폼 본격 가동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이노비즈협회(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 회장 정광천)가 실질적인 제도 개선과 정책 변화를 위한 민간 주도 정책 제안 플랫폼을 본격 가동한다. 협회는 이노비즈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고, 혁신성장을 지원할 신규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이노비즈 정책 제안 챌린지’를 오는 8월 15일(금)까지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챌린지는 중소기업이 직접 체감하는 불합리한 제도와 개선이 필요한 정책 사각지대를 발굴해 정부에 제안하는 참여형 프로젝트다. 이노비즈기업 및 중소기업 정책에 관심 있는 국민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R&D 지원 △AI 및 디지털 전환 △ESG 경영 △글로벌 진출 △공공조달 혁신 △특허 및 지식재산 보호 △인재 양성 및 일자리 창출 △지방 동반성장 등 8대 핵심 분야 중 1개 이상에 해당하는 제안을 제출하면 된다. 참여는 온라인 접수를 통해 간편하게 가능하며, 1차 심사를 통과한 우수 제안에 한해 상세 제안서를 추가 접수받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현장성, 창의성, 실현가능성 등을 종합 평가하여 최종 선정된 7건의 우수 제안은 향후 협회 주관 정책 건의 시 우선 반영할 예정이다. 아울러 각 제안자에게는 이노비즈협회장상과 함께 최대

사회

더보기

문화

더보기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 캐릭터 스틸 공개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넷플릭스(Netflix) 시리즈 <애마>​가 캐릭터 스틸을 공개했다. <애마>는 1980년대 한국을 강타한 에로영화의 탄생 과정 속,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진 어두운 현실에 용감하게 맞짱 뜨는 톱스타 ‘희란’과 신인 배우 ‘주애’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공개된 캐릭터 스틸은 80년대를 뜨겁게 달군 ‘애마부인’의 제작을 둘러싼 다채로운 인물들의 모습을 담아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먼저 화려한 의상부터 헤어 스타일, 악세서리까지 완벽하게 갖춘 ‘정희란’(이하늬)의 스틸은 당대 스크린을 풍미했던 탑배우의 아우라를 물씬 풍긴다. ‘희란’은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스타로, ‘더 이상의 노출 연기를 하지 않겠다’ 선언하며 ‘애마부인’의 주연 캐스팅을 거절하는 인물이다. 이하늬는 캐릭터에 대해 ​“단단한 우아함이 뿜어져 나오는 인물. 그냥 서 있더라도 카리스마가 온전히 뚫고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전해, 그가 표현해낼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희란’에 대한 기대를 모은다. 일약 ‘애마부인’의 주연으로 발탁된 신인 배우 ‘신주애’(방효린)의 반전 매력을 담은 스틸 또한 궁금증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의대생 전공의 복귀하려면 무조건 사과부터 해야
지난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해 집단 이탈했던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지난 14일 전격 복귀 의사를 밝히면서 17개월 만에 의정 갈등이 마침표를 찍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복귀자들에 대한 학사일정조정, 병역특례, 전공의 시험 추가 응시기회 부여 등 특혜 시비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면 의정갈등의 불씨는 계속 남아있게 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1년5개월 만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 의정 갈등의 해법은 의대생, 전공의들이 무조건 국민과 환자들에게 의정 갈등으로 인한 진료 공백 사태에 대해 사과부터 하고 그 다음 복귀 조건을 제시하는 수순을 밟는 것이다. 지난해 2월부터 발생한 의정 갈등은 정부가 고령화 시대 의료 수요 증가와 지역·필수의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과 지역의료 강화, 필수 의료 수가 인상 등을 묶어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 추진을 강행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의료계는 이에 대해 의사 수 부족이 아닌 ‘인력 배치’의 불균형 문제이며, 의료개혁이 충분한 협의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었다고 반발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의료계는 의사 수 증가가 오히려 과잉 진료와 의료비 증가를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