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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헐리고 가건물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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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삶이 헐리고 있다. 혹은 헐리기 직전이거나 헐릴 위험에 처해 있다. 근래의 뉴스는 삶의 방책과 터전이 헐린 사람들 소식으로 넘쳐난다.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집단으로 실업자가 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문자 메씨지 한줄에 간단히 거리로 쫓겨나며, 비정규직 중에서도 여성은 우선순위로 해고당하고, 정규직 노동자들도 곧 닥친다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칼바람 앞에 떨고 있다.
생계의 기반이 박탈당할 때 삶이 얼마나 허약하게 무너질 수 있는가에 대한 깨달음은 각 개인에게는 충격과 두려움으로 내면화된다. 현재 우리 사회에 각인된 충격과 두려움은 결과적으로는 자본의 논리가 절대 권위를 휘두르는 데 동원되고 있다. 별다른 저항 없이, 자본의 예외영역으로 여겨지던 곳에서조차 '경제 마인드'가 상위 결정권을 갖게 된 것이다.
한 예로, 대학이 수량화된 연구실적과 강의평가 점수에 따라 교수의 성과급을 결정하는 정책을 도입하면서 '대학의 기업화'가 공공연히 진행되고 있다.(이에 대한 논의는 일단 별개로 하자.) 교육의 질과 자율성, 인간적 가치를 추구해야 할 '학교'와, 기계적 발전과 이윤 달성에 매진하는 '기업'의 차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집으로 친다면, 제대로 지은 '집'이 헐리고 우리 사회 곳곳에 '가건물'이 들어서는 형국이다. 불안한 직장, 파리 목숨의 비정규직 노동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미취업자와 실업자들, 연·월·일 단위로, 심지어 시간·분 단위로 측정되는 환산가치에 의해 '쓸모'와 '처우'가 결정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팍팍하고 비루한 삶, 경제논리에 정복당하는 다양한 공공영역들. 우리 사회의 '가건물'은 보이는 형태와 보이지 않는 형태로 도처에 빼곡하게 도열해 있다. 경제위기가 테러보다 더 무섭다는 유의 정치적 발언들은 가건물의 숫자를 더욱 늘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
오늘 나를 부양하는 건
폭발 위험
유류저장고를 기어오르는
저 맹독성의 풀
나를 밟고 지나가는 삶의 과적 차량
- 이문숙 「지나는 구름을 붙잡고」 부분

이문숙 시인은 오늘 나를 부양하는 건 나를 밟고 지나가는 삶의 과적차량이라고 말한다. 가건물의 거리를 수많은 '삶의 과적차량'들이 메울 때 '나'는, '우리'는 좀더 든든히 부양받게 되는 것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것이다. 그런 순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순간도 있을 것이다.
이 시인의 시는 고통과 절망, 상실과 슬픔 등 부정적인 것들의 이중성이 출렁거리는 자리에서 태어난다. 그 이중성에 대한 균형감각을 시인은 끊임없이 스스로 배양하면서 담담하면서도 처절한 말들을 가만가만 이어간다.
헐리고 나니
꽤 넓다
계고장이 날아들고
하찮은 살림에 차압 딱지가 붙고
담장을 넘어온 이웃집 나무가 술렁거리며
쉴 새 없이 흔들려도 뭉툭하게 잘린 가지
꽃 한송이 내뱉지 못했던 집
의붓어미 같은 저녁이 몰려오면
나지막한 신음소리와 노을이 함께 엎어지던 집
날아오르던 모시흰나비가
푸성귀 아래 몸을 낮추던 집
말끔하게 닦인 돌계단은 뭉그러져
앳된 딸들이
울음으로 매달려 있어야 했던 집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침마다 계단을 씻어 내리던 물소리가 싱싱했던 집
꽃들이 겹겹이 무너지던 밤
전생의 집을 꾸려
슬그머니
모래 바람 속으로 떠나버린
그 자리 가건물에
집 짓는 사내들의 밥상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밥상 위의 푸성귀
푸성귀 속에서 그 집 배꽃 같은 딸들이 젖어
여전히 울고 있는
모래 바람 속으로 묻힌 묻혀버린
모시흰나비들이 죽은 듯 앉아 있는
불붙는 노을 속의 그 집, 집
- 이문숙 「가건물」(『천둥을 쪼개고 씨앗을 심다』, 창비 2005) 전문

집이 헐릴 때, 헐리는 것은 집만이 아니다. 그 집에 깃들어 있던 사람들의 삶과 한 세계도 헐린다. 임시로 들어선 가건물이 집 짓는 사내들의 또다른 삶의 터전이 된다 해도, 하찮은 살림에 차압 딱지가 붙어 꽃 한송이 내뱉지 못했던 집의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집 짓는 사내들의 밥상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밥상 위의 푸성귀" 속에는 헐린 그 집 배꽃 같은 딸들의 울음소리가 시퍼렇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매일 먹는 밥상 위의 푸성귀에도 그 울음이 살아 숨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시인에 따르면 아침마다 계단을 씻어 내리던 물소리가 싱싱했던 집은 어느덧 차압 딱지와 모래 바람과 불붙는 노을 속으로 묻혀버리는 중이다. 앳된 딸들이 울음으로 매달려 있어야 했던 집은 이제 시의 풍경에 저장되어 우리 곁을 떠돈다. 그 집을 기억하는 것은 분명 시의 몫이지만, 또한 단지 시의 몫만은 아닐 것이다. 집단의 논리나 이념이 아닌, 삶 자체와 세상에 가득 쌓인 울음들에 기대어 쓰인 이문숙의 시는 이 점을 묵묵히 돌아보게 한다.
조금 난데없는 비교를 하자면, 오래전 한국의 한 위대한 시인에게 시와 삶은 "벼락과 해일만이 길일지라도" 가야 하는 어떤 가없고 도저한 것이었다. 오늘 우리 세계의 변방에서 이문숙에게 시와 삶은 "천둥과 번개를 쪼개고 작은 씨앗들이 들어앉"(「세탁소」)는 광경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그 씨앗을 나누어주는 일이 되었다. 그 씨앗을 분양받아 우리 안팎에 난립한 가건물들 사이에 심기 좋은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 거듭거듭 다가오고 있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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