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6.02.10 (화)

  • 흐림동두천 -5.0℃
  • 흐림강릉 3.5℃
  • 흐림서울 -2.1℃
  • 구름많음대전 -3.2℃
  • 흐림대구 -2.9℃
  • 흐림울산 0.3℃
  • 흐림광주 -0.7℃
  • 흐림부산 3.6℃
  • 흐림고창 -3.2℃
  • 흐림제주 5.1℃
  • 흐림강화 -2.4℃
  • 흐림보은 -6.2℃
  • 흐림금산 -4.9℃
  • 흐림강진군 -1.3℃
  • 구름많음경주시 -3.6℃
  • 흐림거제 2.0℃
기상청 제공

기본분류

삶이 헐리고 가건물이 들어서다

URL복사
사람들의 삶이 헐리고 있다. 혹은 헐리기 직전이거나 헐릴 위험에 처해 있다. 근래의 뉴스는 삶의 방책과 터전이 헐린 사람들 소식으로 넘쳐난다.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집단으로 실업자가 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문자 메씨지 한줄에 간단히 거리로 쫓겨나며, 비정규직 중에서도 여성은 우선순위로 해고당하고, 정규직 노동자들도 곧 닥친다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칼바람 앞에 떨고 있다.
생계의 기반이 박탈당할 때 삶이 얼마나 허약하게 무너질 수 있는가에 대한 깨달음은 각 개인에게는 충격과 두려움으로 내면화된다. 현재 우리 사회에 각인된 충격과 두려움은 결과적으로는 자본의 논리가 절대 권위를 휘두르는 데 동원되고 있다. 별다른 저항 없이, 자본의 예외영역으로 여겨지던 곳에서조차 '경제 마인드'가 상위 결정권을 갖게 된 것이다.
한 예로, 대학이 수량화된 연구실적과 강의평가 점수에 따라 교수의 성과급을 결정하는 정책을 도입하면서 '대학의 기업화'가 공공연히 진행되고 있다.(이에 대한 논의는 일단 별개로 하자.) 교육의 질과 자율성, 인간적 가치를 추구해야 할 '학교'와, 기계적 발전과 이윤 달성에 매진하는 '기업'의 차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집으로 친다면, 제대로 지은 '집'이 헐리고 우리 사회 곳곳에 '가건물'이 들어서는 형국이다. 불안한 직장, 파리 목숨의 비정규직 노동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미취업자와 실업자들, 연·월·일 단위로, 심지어 시간·분 단위로 측정되는 환산가치에 의해 '쓸모'와 '처우'가 결정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팍팍하고 비루한 삶, 경제논리에 정복당하는 다양한 공공영역들. 우리 사회의 '가건물'은 보이는 형태와 보이지 않는 형태로 도처에 빼곡하게 도열해 있다. 경제위기가 테러보다 더 무섭다는 유의 정치적 발언들은 가건물의 숫자를 더욱 늘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
오늘 나를 부양하는 건
폭발 위험
유류저장고를 기어오르는
저 맹독성의 풀
나를 밟고 지나가는 삶의 과적 차량
- 이문숙 「지나는 구름을 붙잡고」 부분

이문숙 시인은 오늘 나를 부양하는 건 나를 밟고 지나가는 삶의 과적차량이라고 말한다. 가건물의 거리를 수많은 '삶의 과적차량'들이 메울 때 '나'는, '우리'는 좀더 든든히 부양받게 되는 것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것이다. 그런 순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순간도 있을 것이다.
이 시인의 시는 고통과 절망, 상실과 슬픔 등 부정적인 것들의 이중성이 출렁거리는 자리에서 태어난다. 그 이중성에 대한 균형감각을 시인은 끊임없이 스스로 배양하면서 담담하면서도 처절한 말들을 가만가만 이어간다.
헐리고 나니
꽤 넓다
계고장이 날아들고
하찮은 살림에 차압 딱지가 붙고
담장을 넘어온 이웃집 나무가 술렁거리며
쉴 새 없이 흔들려도 뭉툭하게 잘린 가지
꽃 한송이 내뱉지 못했던 집
의붓어미 같은 저녁이 몰려오면
나지막한 신음소리와 노을이 함께 엎어지던 집
날아오르던 모시흰나비가
푸성귀 아래 몸을 낮추던 집
말끔하게 닦인 돌계단은 뭉그러져
앳된 딸들이
울음으로 매달려 있어야 했던 집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침마다 계단을 씻어 내리던 물소리가 싱싱했던 집
꽃들이 겹겹이 무너지던 밤
전생의 집을 꾸려
슬그머니
모래 바람 속으로 떠나버린
그 자리 가건물에
집 짓는 사내들의 밥상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밥상 위의 푸성귀
푸성귀 속에서 그 집 배꽃 같은 딸들이 젖어
여전히 울고 있는
모래 바람 속으로 묻힌 묻혀버린
모시흰나비들이 죽은 듯 앉아 있는
불붙는 노을 속의 그 집, 집
- 이문숙 「가건물」(『천둥을 쪼개고 씨앗을 심다』, 창비 2005) 전문

집이 헐릴 때, 헐리는 것은 집만이 아니다. 그 집에 깃들어 있던 사람들의 삶과 한 세계도 헐린다. 임시로 들어선 가건물이 집 짓는 사내들의 또다른 삶의 터전이 된다 해도, 하찮은 살림에 차압 딱지가 붙어 꽃 한송이 내뱉지 못했던 집의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집 짓는 사내들의 밥상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밥상 위의 푸성귀" 속에는 헐린 그 집 배꽃 같은 딸들의 울음소리가 시퍼렇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매일 먹는 밥상 위의 푸성귀에도 그 울음이 살아 숨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시인에 따르면 아침마다 계단을 씻어 내리던 물소리가 싱싱했던 집은 어느덧 차압 딱지와 모래 바람과 불붙는 노을 속으로 묻혀버리는 중이다. 앳된 딸들이 울음으로 매달려 있어야 했던 집은 이제 시의 풍경에 저장되어 우리 곁을 떠돈다. 그 집을 기억하는 것은 분명 시의 몫이지만, 또한 단지 시의 몫만은 아닐 것이다. 집단의 논리나 이념이 아닌, 삶 자체와 세상에 가득 쌓인 울음들에 기대어 쓰인 이문숙의 시는 이 점을 묵묵히 돌아보게 한다.
조금 난데없는 비교를 하자면, 오래전 한국의 한 위대한 시인에게 시와 삶은 "벼락과 해일만이 길일지라도" 가야 하는 어떤 가없고 도저한 것이었다. 오늘 우리 세계의 변방에서 이문숙에게 시와 삶은 "천둥과 번개를 쪼개고 작은 씨앗들이 들어앉"(「세탁소」)는 광경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그 씨앗을 나누어주는 일이 되었다. 그 씨앗을 분양받아 우리 안팎에 난립한 가건물들 사이에 심기 좋은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 거듭거듭 다가오고 있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정치

더보기

경제

더보기
정청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상생 방안 빈틈없이 마련하겠다”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합의한 것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당대표가 상생 방안을 빈틈없이 마련할 것임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당대표는 9일 국회에서 개최된 최고위원회의에서 “어제 제6차 고위당정협의회가 있었다. 유통산업의 규제 불균형을 해소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해 대형마트 등의 온라인 규제를 개선하기로 뜻을 모았다”며 “이 과정에서 소상공인이 소외되지 않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온·오프라인 시장이 공존할 수 있는 상생 방안도 빈틈없이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어제 특별히 전통시장 상인들의 생존권과도 관련이 있는 문제인 만큼 이 부분에 대한 보완을 확실하게 하자고 당에서 요구도 했고 당·정·청이 이 부분에 대해서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는 9일 국회에서 개최된 대표단회의에서 “과로와 심야노동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는 정부의 역할은 어디 갔느냐? 더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입법으로 보장해야 할 여당의 책임은 어디 있느냐?”라며 “기업들이 제기하는 규제 불균형를 해소하기 위해, 매일 밤 몸을 축내며 일하는 노동자들의 '죽지 않고 일할 권리’가 외면돼선

사회

더보기

문화

더보기
하루키의 철학을 관통하는 한국 현대미술 작품 전시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이하 플랫폼엘)는 개관 10주년을 맞아 대규모 기획전 ‘하루키를 말할 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삶과 문학적 세계관에서 출발해 그의 문학적 서사와 감수성, 취향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시각예술 안에서 어떻게 변주되고 대중과 교감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플랫폼엘은 이러한 맥락들을 다양한 예술 장르와 공감각적으로 연결해 관람객을 자연스럽게 사유의 흐름으로 이끌며, 작가의 궤적을 따라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시간을 제안할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와세다대학교 국제문학관(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더욱 확장된 콘텐츠를 선보인다. 이와 함께 무라카미 하루키가 간직해 온 의미 깊은 소장품과 작업의 오랜 동반자였던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1942-2014)의 원화 200여 점을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 두 작가의 작업과 일화를 통해 창작 과정에서 주고받은 긴밀한 관계성을 살펴봄과 동시에 하루키의 삶과 세계관을 마주한다. 아울러 무라카미 하루키의 철학을 관통하는 한국 현대미술 작가 강애란, 김찬송, 순이지, 이원우, 이진영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선택은 본인 책임…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 신중해야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무엇인가를 선택하면서 살아간다. 하루에도 수십 번, 많게는 수백 번의 결정을 내린다. 식사 메뉴를 무엇으로 할지, 모임에는 갈지 말지, 자동차 경로를 고속도로로 할지, 국도로 할지 등등 매일매일 선택은 물론 결혼, 입사, 퇴사, 이직, 창업, 부동산, 주식, 코인 등 재테크 투자는 어떻게 할지 등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선택과 결과들이 쌓여 결국 한 사람의 인생 궤적을 만든다. 이런 많은 선택과 결과들 가운데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쪽은 돈과 관련된 재테크 투자의 선택과 결과 아닐까 싶다. 최근 코스피 지수 5,000돌파, 천정부지로 올라간 금값, 정부 규제 책에도 불구하고 평당 1억 원이 넘는 아파트들이 속출하는 부동산시장. 이런 재테크 시장의 활황세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판단과 선택으로 이런 활황장세에 손실만 보고 있으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허우적거리는 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선택과 결정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한다. 최근 한 개인투자자는 네이버페이 증권 종목토론방에 “저는 8억 원을 잃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새해엔 코스피가 꺾일 것이라 보고 일명 ‘곱버스(인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