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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신륵사와 목은 이색의 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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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짬을 내어 여주를 다녀왔다. 급작스럽게 일정을 조정하느라 애를 먹었으나 미뤘던 숙제를 시작한 기분이다. 여주에 다녀온 까닭은 최근의 경제위기와 조금 동떨어진 집안일 때문이다. 집안의 큰 어른이신 목은 이색선생이 돌아가신 여주에 기념비를 세워야 한다는 논의가 문중에서 오랫동안 있어왔으나 성사를 보지 못하다가 필자에게 그 책임을 맡겼던 것이다. 경제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어 누차에 걸쳐 사양을 했으나 자손의 도리라는 말에 할 수 없이 짐을 떠안았다.
그래서 태원 씨 등 몇 분과 같이 여주에 가서 비를 세울만한 곳을 알아보고 군 당국과도 협의할 필요가 있었다. 원래 여주(옛지명 여흥(驪興))에서 돌아가신 것을 추도하는 기념비라면 당연히 여강의 연자탄이 적합할 터이다. 여러 문헌으로 보면 여강의 연자탄 즉, 제비여울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돼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지에 가서보니 연자탄 강둑에는 비석을 세울만한 공간이 없고, 곧 강둑정비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하니 마땅치 않았다. 그리고 조선5백년동안 목은 이색선생의 사인이나 사망장소와 관련해서 구체적인 의론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목은선생의 후손들은 구전으로 이방원이나 정도전이 어사주를 가장하고 보낸 독약이 든 술을 마시고 돌아가신 곳은 연자탄에서 신륵사 사이이거나 신륵사일 가능성이 크다고 들어왔다.
그러면 목은 이색선생은 왜 조선이 개국한 직후 여주의 월남촌(月南村)에 내려가려 했을까? 또 임종 전후에 많은 스님들이 그를 지키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때문이었을까. 평소에 이런 의문을 갖고 있었기에 다리를 건너 신륵사에 가보기로 했다. 신륵사에 고려말의 왕사(王師)였던 나옹선사가 입적했고 나옹선사의 신도비명을 이색선생이 썼다거나 두 분이 다 경북 영덕의 영해출생이어서 8년의 나이차이가 있지만 교류가 깊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신륵사의 입구의 소공원을 돌아보고 일주문을 넘어서자 강변의 절벽에 운치있게 자리잡고 있는 정자가 눈에 띄었다. 참으로 용케 살아남았구나. 여강의 강물과 널따란 모래사장, 절벽에 우뚝 서 있는 정자는 한 폭의 시였다. 정자에는 강월헌(江月軒)이라는 편액이 걸려있었다. 스님들이 풍취를 즐길 리는 없고 무슨 사연이 있을까 싶어 정자 위쪽에 자리잡고 있는 비각을 살펴보았다. 뜻밖에도 국가보물로 지정돼있는 대장경 기비였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비는 목은 이색이 공민광과 부모님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대장경을 간행하고, 이를 보관할 2층 건물을 짓고, 이를 기념하여 세운 것이었다. 한국 성리학의 도종(道宗)으로 불리는 이색이 신륵사에서 대장경을 간행하고 대장경을 보관할 전각을 세웠다니... 잠시 혼란스러웠다.
비문은 그 사연을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부친이었던 가정 이곡선생이 부모의 극락왕생을 비는 대장경 간행을 소원했는데,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므로 아버지의 소원을 풀기 위해 대장경간행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아버님 가정공이 돌아가신 뒤 30년만의 일이다. 그랬었구나. 여러 스님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간행된 대장경판은 이곳에 보관돼오다가 현재 원본이 일본의 한 대학에 소장돼있다. 여주에서 귀양살이도 했지만, 부친인 가정공이 여주에서 생활해서 지금도 가정리라는 지명이 남아있으니 그때에 신륵사에 다니면서 부모님의 극락왕생을 빌었던 것을 외아들인 목은이 잘 알았을 터. 젊은 시절에는 불교를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지만, 유교나 불교는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만 근본은 같다는 가정공의 말씀을 새겨들었다. 37편이나 되는 스님들에 관한 비명이나 시편, 화엄경서문 등을 보면 왕명을 받아쓰기도 했지만, 불교에 대한 깊은 연구가 없으면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러했다면 완고한 성리학자들이 불교와 가까웠다는 이유를 들어 목은을 배척할 때 당당하게 목은의 효심과 폭넓은 지식을 평가해보자고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목은의 대범한 면모와 신륵사 인연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오늘 한국사회에 팽배해지고 있는 종파 간 갈등과 대립을 목은처럼 풀어갈 길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군 당국에는 소공원터의 한 자락을 내주십사하는 부탁을 하고, 신륵사 주지 서영스님께 언제 시간을 내서 하룻밤 선대의 인연을 고민해보겠다는 작별인사를 하고 여주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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