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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에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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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 김종길의 〈설날 아침에〉 부분


몇 해째 손으로 쓴 연하장을 몇몇 친지들에게 보내고 있다. 처음에는 보내온 연하장에 답장으로 보내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연례행사가 되고 말았다. 이메일이 널리 일반화되면서 우편으로 보내는 연하장 자체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판에 이런 일이 남의 손가락질이나 받는 것은 아닌가 쑥스러운 감이 없지 않다.
연하장에 적어 보내는 인사의 말은 해마다 나를 애먹이고 있다. 마땅하고 좋은 글귀를 찾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양력으로 2009년, 음력으로 기축(己丑)년 소띠 해를 앞두고 보낸 연하장의 글귀는 김종길의 시 〈설날 아침에〉에서 따왔다. 다섯 연으로 된 시 가운데 한 연을 골라 받는 사람에 맞게 써보낸다고 보냈다.
다섯 연 가운데 특히 많이 인용했던 글귀는 앞의 2, 4, 5연이었다. 일찍부터 살아내기 어려울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한 해였기에 위로와 함께 조금은 깨어 있는 정신으로 새해를 맞이하자는 뜻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나의 소박한 뜻이 받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읽혀졌는지는 모르겠다. 근하신년(謹賀新年). 소걸음으로 천리길을[牛步千里]……
이 불안은 어디서 오는가
누군가는 가는 세월에 날을 정해놓고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가리켜 흘러가는 물에 깃대를 꽂아놓는 일과 같이 덧없는 짓이라 하지만, 계기를 만들어 나와 내 주변을 새롭게 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을 굳이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한 해를 보내고 또 맞이하면서 개인적인 성찰과 반성, 공동체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도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다 보니 지나온 한 해는 언제나 다사다난한 해였고, 다가오는 한 해는 희망찬 새해가 아닌 적이 없었다.
그러나 매우 안타깝게도 우리는 기축년 설날 아침을 희망으로 맞이하지 못했다. 지난해 3, 4분기에 우리 경제는 이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경제위기는 지금 다만 그 초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겨울은 이미 왔는데 이보다 더 추운 겨울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폭설과 한파의 날씨마저 추운 겨울을 더욱 실감케 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설날을 며칠 앞두고 일어난 용산참사는 설 대목에 때아니게 땅을 치는 통곡과 울분을 터뜨리게 하고 있다.
설날 아침에 우리로 하여금 불안에 떨게 하는 것은 비단 다가오는 경제위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한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는 그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힘으로 능히 극복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또한 하늘은 결코 극복되지 못할 시련을 인간에게 안겨주지 않는다고 믿는다. 우리가 일찍이 금모으기 운동 등으로 합심하여 외환위기를 극복해냈던 것처럼,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하나가 될 수만 있다면 경제위기쯤이야 극복해내지 못할 까닭이 없다.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는 힘은 군사작전 사령부를 연상케 하는 청와대 벙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도 대화하고 그들을 끌어안는 국민적 통합 노력 속에서만 나온다. 그러나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위험이나 적으로 간주하는 속에서는 결코 국민적 통합을 이루어낼 수 없다. 나는 경제적 양극화보다 이 사회에 만연하여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생각의 양극화를 더 두려워하고 있다. 또한 오늘의 경제위기가 머지않아 치명적인 정치적 양극화의 위기로 점화되지 않을까, 그것을 나는 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대통령으로 취임한 오바마의 미국이 가는 모습은 부럽다. 미국은 지금 검은 미국도, 흰 미국도, 라틴계 미국도, 아시아계 미국도 없는, 오직 미합중국만 있는 길로 가고 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미 훌륭한 통합의 메시지가 되고 있는데다, 그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더욱 더 다른 의견에 귀기울이는 정부를 지향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용산참사를 놓고서도 여전히 '법치와 엄단'만을 부르짖고 있다. 가난이 제 탓만이 아닌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려 하지 않고, 불의에 짓밟히고서도 호소할 데 없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어보려 하지 않는다. 늦더라도 함께, 소걸음으로 천리길을 가려 하기보다는 속도전과 밀어붙이기만을 능사로 알고 있다. 무엇보다 용산참사는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군사통치 시대가 이 땅에 재현되고 있다는 섬뜩한 느낌마저 들게 하고 있다.
소띠해 설날에 소처럼 헌신적인 지도자를 바라며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공동체 밖으로 몰아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촛불시위 진압에서, 교과서 파동에서, 초·중등학교 일제고사에서, 공정방송을 외치는 과정에서, 인터넷 광장에 족쇄를 채우는 데서 궤를 같이하여 나타나고 있다. 그리하여 정치권은 물론, 노동·교육·언론·문화·환경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편이 갈리고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고 반격하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사회적 불안은 높아만 가고 있다.
지난해 말 이명박 정부의 핵심인사 한 사람이 "내년 2월이 되면 대졸 실업자가 쏟아지고, 3∼4월이 되면 많은 중소기업이 부도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현정부나 체제에 대한 위협세력이 될 수 있다"고 한 발언이 문제된 바 있었다. 그의 말대로 경제위기가 파괴적인 형태로 정치위기, 사회위기로 전이될 개연성은 너무도 높다. 그것은 전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사회적 불안을 더 키울 것인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중국의 루 쉰(魯迅)은 일찍이 “나는 소와 같다. 먹는 것은 풀뿐인데 짜내는 것은 젖과 피”라고 자신의 헌신성을 소에 비유했다. 자신은 풀을 먹으면서도, 국민에게는 젖과 피를 짜주는 헌신적인 지도자를 우리는 끝내 만나지 못할 것인가. 소띠해 설날 아침에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한가.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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