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피천득 선생으로부터 ‘반짝이는 예지’ ‘조금만 드러낼 줄 아는 자제력’ ‘정제된 언어로 인한 아름다움’이라는 극찬을 받았던 최민자 작가가 일곱 번째 수필집 《사이에 대하여》(최민자 지음, 연암서가 펴냄)를 펴냈다.
저자의 이번 수필집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들을 묶은 것으로 SNS의 특성을 따라 퇴고의 여지없이 쓴 그러다 보니 ‘붓 가는 대로’라는 수필(隨筆)의 문자적 의미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따스하게 풀어내는 어머니들의 이야기
“딸 둘을 낳아 기르는 동안 나는 늘 꿈을 꾸었다. 자유를, 고독을, 아무 간섭 없이 향유 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둘째까지 결혼시키고 나서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부턴 내 맘대로다. 숙제는 끝났고 남는게 시간일 테니 미루어둔 나만의 삶을 살아야지…남의 훤칠한 아들로부터 장모님 대신 어머니 소리를 공으로 듣는 대신 늘어난 권속과 아이들까지, AS를 해주어야 한다. 직장일에, 육아에, 살림에, 재테크까지, 확장된 역할들로 전사처럼 살아내는 딸들 뒤에는 젖은 손으로 간을 보고 손자들 치다꺼리에 허리가 휘는 친정엄마라는 이름의 우렁각시들이 숨어 살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어머니들의 삶의 일상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그러면서도 따스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딸들과 새로 태어난 손주들과의 일상, 그속에서 느껴지는 행복감을 정제된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물과 세상의 이면을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 삭제할까요?
손전화가 묻는다. 예, 아니면 아니오를 누르란다. 손가락을 미처 떼기도 전에 존재의 기록이 흔적 없이 지워진다. 삭제된 것들은 다, 어디로 휘발해 버리는가. 염라대왕이던가? 사람 목숨을 관장하는 신도 누군가의 멱살을 쥐고 더 큰 신에게 그렇게 물을지 모르겠다.
- 삭제할까요?”
이제는 생명의 탄생보다는 주변의 죽음에 더 익숙해져야 하는 시기에 저자는 삶이 유한하고 죽음이 영원하다고 정의한다. 사는 데까지 기쁘게, 감사하며, 삭제단추를 누루는게 내 일이 아니듯 슬픔도 고통도 남은 자들에게 떠넘길 것을 권한다.
활자를 갖고 노는 즐거움을 느끼길
전주에서 태어난 저자는 전주여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에세이문학』으로 등단했다. 정제된 언어와 감각적인 문체로 대변되는 그의 글은 제28회 PEN문학상과 제1회 윤오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번 수필집은 저자가 지난 연말부터 올 삼월 초까지의 쓴 80여편의 글이 5개 장으로 묶여있다. 저자는 활자를 갖고 노는 분복만으로, 존재의 저 밑바닥을 훑는, 삶의 날숨 같은 영혼의 지문들을 들쭉날쭉 얽어내는 홍복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글을 읽는 독자들이 저자와 같은 행복감을 느끼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