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봄이다. 숨죽였던 코로나 이후 봄나들이 삼아 갤러리를 향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국미술시장이 확대되면서 작품 컬렉션이 좋은 재테크라는 것을 알게 된 이들까지 합세했다. 갤러리들이 많이 바빠졌다.
창립40주년을 맞은 가나아트는 <1983-2023 가나화랑-가나아트>전을 열고 있다. 국제갤러리는 홍승혜의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전을 마련했고, PKM갤러리는 이원우의 <당신의 아름다운 미래>전을, 갤러리현대는 정주영의 <그림의 기후>전을 개최했다.
[시사뉴스 이화순 칼럼리스트] 가나아트는 올해로 개관 40주년을 맞아 았다. 40년에 걸쳐 수집해온 다양한 작품 60여점을 선보인다. 그간의 영역 확장과 작품 수집의 궤적이 가나아트의 정체성인 셈이다.
구본웅, 김환기, 나혜석, 박수근, 이중섭, 이인성, 정규, 함대정 등 한국 작가 작품은 물론 유럽 시장에서 주목받는 안젤름 키퍼, 안토니 곰리의 회화와 조각, 가나화랑·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세자르 발다치니, 안토니 타피에스, 미켈 바르셀로, 마크 퀸의 작품이 전시된다.
또 미술전문지 '가나아트'를 펴내고 미술경매 법인인 서울옥션을 세우는 등 미술 시장에서 다양한 행보를 펼쳐온 가나아트의 발자취도 함께 되짚어볼 수 있다. 가나아트가 개최한 720여회의 전시 포스터와 도록을 모아 한국 미술시장의 과거와 현재를 엿볼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은 화단의 터주대감이 된 이호재 회장은 당시만 해도 서른이 안된 29세의 새파란 청년이었다.
“미술이라는 아이템 자체가 산업화하는 과정에 가나아트와 서울옥션이 있었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는 이호재 회장은 당시 '가나'라는 이름은 한글의 가나다라 중 맨 앞의 두 글자에서 딴 것으로, 해외 시장을 위해서는 받침이 없는 이름이 좋다는 생각에 그리 정했다.
40년 전 가나화랑은 현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와 가나아트보광, 가나아트나인원, 가나아트부산으로 뻗어있다. 계열사로 서울옥션이 있으며, 프린트베이커리도 있다. 전시는 3월 19일까지.
국제갤러리는 홍승혜의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전을 2004년 1편에 이은 후속편으로 오픈했다. 구상 후 9년만의 전시다. 홍승혜는 1997년 국제갤러리 개인전 <유기적 기하학>을 시작으로 컴퓨터 픽셀의 구축을 기반으로 한 실재 공간의 운영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서울점의 1관과 3관을 아우르는 이번 전시에서 홍승혜는 벽화부터 조각, 사운드, 조명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마치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열심히 색종이로 별모양, 공모양 등을 만들던 시절을 회상할 수도 있다.
마티스(1869-1954)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는 작가는 말년에 색종이를 오려 붙여 벽면 가득 장식하던 마티스의 파피에 데쿠페(papier découpé)를 기리며 1관 각 방의 벽면 모서리를 오려낸 ‘레몬 자르기(Le Citron découpé/Homage à Matisse)’와 ‘하늘 자르기(Le ciel découpé/Homage à Matisse)’를 제시하고 있다.
K1의 다른 전시장에 배치된 조형물과 테이블, 조명기구 등 디자인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러 가지 오브제가 흥미롭다. K3에는 앞에 소개된 모든 조형 작품들이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낸다. 형형색색의 꽃으로 장식된 무대에서, 영상과 사운드를 동반한 픽토그램 인형들의 무도회가 펼쳐진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유기적 기하학’이라 설명한다. 전시는 3월 19일까지.
PKM갤러리는 이원우의 <당신의 아름다운 미래>전을 마련했다. 2017년 <내일 날씨 어때?> 이후 6년만이다. 작가는 설치, 조각, 퍼포먼스, 영상 등 여러 매체를 이용해 유머와 아이러니로 일상을 비튼다. 단어와 물성을 조합한 신작 조각 40여점과 지난 5년간의 퍼포먼스 기록, 과도기 창작물들을 모은 작업 테이블 등 이원우 작업의 과거와 현재가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가끔 거대한 시류에 휩쓸려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서도 사소한 농담은 웃음을 불러일으키며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는 전시에서 불확실한 미래가 던지는 불안감을 웃음으로 상쇄하려는 바람을 담았다.
'Diet(다이어트)'라고 적힌 부풀어 오른 콜라캔, 'light(가벼운)'라 적힌 무거운 돌을 보며 미소짓다보면, 'THE SUN IS AN ORANGE(태양은 오렌지다)' 'HONEY I'M HOME(허니 나 집이야)' 'SATURDAY MOOD(토요일 무드)'라는 텍스트로 하루 또는 한 주의 단편들을, 'SPRING JUMP(봄 점프)' 'SUMMER DANCE(여름 댄스)' 등이 사계절의 속도와 무게감을 전한다.
이 시리즈에 새겨진 'YOUR BEAUTIFUL FUTURE(당신의 아름다운 미래)'라는 문구는 이번 전시의 타이틀이자 최근 진행된 퍼포먼스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전시에는 과거의 분실물을 찾아주는 임시 센터 운영에서부터 아름다운 미래를 선물하는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그간 관객과 호흡하며 수행한 퍼포먼스의 기록들이 영상 또는 ‘Dreamy Museum(꿈꾸는 뮤지엄)’ 속 기물들로 축약되어 함께 소개된다. 심각성은 휘발되고 신선한 새봄의 산뜻한 공기가 불어온다. 전시는 3월 25일까지.
갤러리현대는 산 풍경을 오랫동안 그려온 작가 정주영(54)의 <그림의 기후>전을 마련했다. 작품은 60여점.
정주영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기후 변화와 기상에 좀 더 민감해진 정주영은 매일 변하면서도 순환하고 반복되는 기상에 관심을 두면서 계절과 시간을 나타내는 하늘의 모습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상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 'Meteorology'의 'M'에서 제목을 딴 'M' 연작은 다양한 하늘의 모습을 담았다.
전시장 1층에는 일몰의 순간을 표현한 그림들이 걸렸다. 점차 형체가 흐릿해지며 사라져가는 태양의 강렬함을 포착하기도 하고 석양의 웅장함을 타원형의 캔버스에 담기도 한다.
2층에는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하늘과 구름을 표현한 그림들이 걸렸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한 조각 지나가는 모습이나 해가 떠오르는 모습처럼 금방 사라지는 순간들을 수많은 색의 레이어를 쌓아 그러데이션 방식으로 재현한다. 전시에서는 알프스 연작 산 풍경 연작도 볼 수 있다. 전시는 3월2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