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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재 칼럼

【허연재의 미술 인문학 칼럼】 그림으로 애도하는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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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허연재 강사 · 작가]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화한다 해도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이별이 있다는 진리는 변치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을 떠나게 되면 아티스트들은 자신만의 창작 동굴로 들어가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형태, 색감 혹은 재료를 통해 슬픈 마음을 달랜다. 자화상을 좋아했던 작가들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거치고, 그 당시의 침울하고 비통한 무게를 덜어내는 노력을 한다.


파블로 피카소의 초기 작 <자화상>은 바람둥이로 소문이 난 매력적인 피카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피카소는 여성들에게 인기도 많고 동료 예술가들과 자주 열띤 논쟁을 벌일 정도로 열정이 넘치는 인물이다. 하지만 자화상 속 피카소는 50대가 넘은 기력 없는 아저씨 같아 보인다. 사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피카소는 고작 스무살 밖에 되지 않았다. 자신을 초췌한 외모로 그린 이유는 사랑했던 친구 카사헤마스를 잃었기 때문이다. 카사헤마스는 피카소와 함께 파리에 와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무명 시절을 함께 보냈다. 둘은 서로 의지하며 창작활동을 해 나갔지만 소극적인 성격이었던 카사헤마스는 사랑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극적인 소식 이후 피카소는 어두 컴컴한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청색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고 3년간 파란 색채로만 그림을 그렸다. 그림의 주제 역시 장님, 수감자, 거지 등 암울하고 열악한 환경에 사는 인물들이었다. 피카소의 자화상 속 모습은 핏기가 돌지 않는 냉동 인간 같아 보인다. 신체 표현 역시 진한 흑색으로 덩어리감있게 표현하여, 돌 처럼 둔탁한 느낌을 자아낸다. 피카소는 사랑하는 이로 인해 고립되어가는 자신의 마음을 푸른빛 회화들로 다스렸고, 점차 회복되어 갔다.


회화는 평면이라 정적이기도 하지만 시각적으로 음향 효과가 있는 듯 한 작품들도 있다. 특히 에드바르드 뭉크와 프란시스 베이컨은 그림 속 인물들을 과장된 색이나 형태로 묘사하기 때문에 청각을 자극하는 효과를 주듯 묘사가 생생하다. 우리가 소설을 읽으면서 특정 장면을 상상하고 감정이입을 하는 것과 흡사하다. 이 둘은 떠난 이들을 아름답게 묘사하기 보다 그 당시의 음침했던 분위기를 직면하며 표면 위로 끄집어 낸다.


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였던 에드바르드 뭉크는 어린 시절부터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경험을 연달아서 한다. 5세가 되던 해에 폐결핵으로 고통받던 어머니와 이별하고 몇 년 후에는 누나 소피를 떠나 보낸다. 질병이 앗아간 어머니와 소피의 빈 자리는 어린 뭉크에게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감으로 남았다. 뭉크는 보이지 않는 죽음에 대한 내면의 불안함을 그림을 통해 해소했다. 뭉크의 <죽은 어머니와 아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빨간 옷을 입은 소피다. 당시 5세였던 소피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괴로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으며 크게 소리를 지르는 듯 하다. 소피의 두 팔은 두 겹의 레이어로 그려져 어린 아이의 떨림이 한층 더 잘 느껴진다. 이 그림은 뭉크가 어린 시절 자신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방 안을 휘감는 차가운 공기와 모든 가족들이 비통해 하는 모습을 회상하며 그린 작품이다. 침대에 누워 있는 뭉크의 어머니는 눈을 감고 있으며 창백한 피부로 표현되었다. 우리는 그 당시 분위기를 모르지만 알아볼 수 없는 흐릿한 인물들의 얼굴과 축 늘어진 어깨만 보아도 그 무거운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뭉크의 작품 보다 시각적으로 더 괴상하고 새어 나오는 고통의 신음 소리가 더 잘 들리는 듯하다. 베이컨의 회화는 그 당시 추상화가 만연했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살려 불안감을 자아내는 인물 묘사로 유명하다. 베이컨의 <검은 3단 제단화>는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 조지 다이어의 자살 사건이 일어난 후 그린 작품이다. 베이컨은 다이어의 부재로 인한 고통을 떨쳐내고자 하는 의식으로 그렸다고 한다. 이 둘은 1963년 후반에 만나 격렬한 관계를 지속했었다. 베이컨은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 열리는 전시 오픈을 이틀 남기고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당시 37세 였던 다이어는 술과 마약 과다복용 때문에 파리의 쌍 페르 호텔 욕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3단 제단화는 캔버스 3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기 다른 포즈로 재현되었다. 왼쪽은 다이어의 죽음을 맞이하기 전, 가운데는 다이어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 오른쪽은 그의 죽음 후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구겨지고 비꼰 인체 묘사는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그림자처럼 날개가 달린 검은 형상은 악마의 형상을 보여주는 듯 몰래 다가오는 죽음을 상징한다. 베이컨은 온전히 전시회 준비에 몰두하는 동안 세상을 떠나버린 다이어를 생각하면 죄책감과 상실감을 느꼈다. 그는 마치 종교화를 연상케 하는 3단 제단화를 택하여 자신만의 언어로 애도한다. 

 

 

 


아티스트들은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한 후 상실감을 대처하는 방식들이 다르기에 이들이 만들어 낸 작품들도 가지각색이다. 그 작품들은 남겨진 자신과 세상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고군분투 했을 아티스트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것 같아 마음에 더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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