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오늘은 경북 청송의 주왕산이다.
고교 동기 모임의 산악회에서 창립 11주년 기념 산행을 주왕산으로 하려 한다는 말에, 말로만 듣던 주왕산에 대해 무척 기대가 컸는데 참석 인원이 적다고 늘 가던 대로 북한산 형제봉으로 정했단다. 마침 미국 이민 생활 30여 년 만에 한국에 들른 친구를 만나, 가고 싶었던 주왕산 산행이 변경되어 아쉽다는 이야기를 하니 그 친구가 선뜻 같이 가자고 나선다.
우리 나이에 하고 싶은 것 못하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왜 아직도 스트레스를 받고 사냐고 하며, 우리는 하고 싶은 것 있으면 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나를 질책한다.
그 친구는 나이 60이 넘어서는 하고 싶은 것 하기로 작정하고 미국의 보스톤, 시카고, 뉴욕, 워싱톤과 서울 국제 마라톤 등 국제 규모의 마라톤을 10여 차례 완주하기도 하고, 철인 3종경기에도 참가하고, 미국의 유명한 WCT( West Coast Trail) 산행으로 숲에서의 일주일 이상의 숙박 산행을 하기도 했단다.
나는 말로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도 일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박제된 일상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 새로운 시도에 아직도 주저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용기를 얻은 나는 검색을 하여 동서울 터미널에서 하루 3번 가는 주왕산행 버스를 타고 주왕산 주차장에 도착한다. 대구에 사는 친구의 조언으로 가을 절정의 주왕산은 주말에는 많은 사람으로 붐벼 발 디딜 틈이 없을 거라더니, 일요일 오후 4시가 넘어 도착하는 주왕산 상의 주차장은 도로변까지 가득 주차한 차들로 얼마나 많은 산행객이 오는지 실감이 난다. 가까운 식당을 겸한 민박집에 숙소를 정하고 주왕산의 유명한 달기 백숙으로 저녁을 먹고 주왕산을 검색해 보며 잠자리에 들었다.
주왕산은 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는 산으로 백악기의 주왕산 일대는 거대한 호수였다고 한다. 이후 호수 바닥에 퇴적물이 쌓이면서 육화되었는데 약 7천만 년 전 이 퇴적암층을 뚫고 엄청난 규모의 화산 분화가 있으면서 거대한 암벽이 형성된 것이란다.
이러한 지질학적 특성은 주왕산의 바위, 폭포, 계곡, 산세를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로, 이 산을 비롯한 청송군 일대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되었단다.
또한 주왕산의 유래는, 중국 당나라 때의 주도(周鍍)가 스스로를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그래서 주왕이라 불린다 함), 당나라 수도 장안을 공격했으나 안록산의 난을 평정한 곽자의(郭子儀) 장군에게 패하여 요동으로 도망쳐 멀리 한반도의 석병산으로 피신했다.
신라 땅에 숨어 들어간 것을 안 당나라에서는 그를 잡아달라고 신라에 요청했고, 신라는 마일성 장군의 형제들을 필두로 진압군을 이곳 석병산으로 보내 주왕과 그의 군사들을 격퇴했다.
싸움에서 패한 주왕은 폭포수가 입구를 가리고 있는 주왕 굴에 숨어들었다. 그러다 몰래 세수를 하러 나왔던 주왕은 마 장군의 화살과 철퇴를 맞고 최후를 맞이했다고도 전한다.
주왕이 신라 마 장군의 화살에 맞아 흘린 피가 주방 천을 물들인 뒤 붉은 꽃망울을 피웠다는 꽃이 주왕산 수 달래라고 한다. 그래서 수 달래는 주왕의 넋이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주왕산 초입의 대전사(大典寺)는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을 위해 고려 태조 2년 보조국사 지눌이 세웠다고 전해지며, 백련암은 주왕의 딸 백련 공주의 이름을 딴 암자라고 한다. 주왕 굴 앞의 주왕암은 주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곳이라고 한다.
다음 날 아침, 주왕산 안내를 위해 아침 일찍 대구에서 합류한 친구와 셋이서 주왕산 산행을 시작한다. 친구의 조언으로 산행과 귀경 시간을 고려하여 주봉인 가메봉(해발 880m) 등산은 다음 기회로 하고, 주왕산의 기본 산행인 대전사에서 출발해 주왕산 정상(주봉)에 올라 후리매기 삼거리를 거쳐 폭포를 보면서 하산하는 코스로 정했는데, 거리도 짧고 산행시간도 휴식 포함 4시간 정도면 충분하단다.
대전사 옆길에서 시작하는 주봉(726m)으로 오르는 길은 초입부터 급경사다. 오르면서 간간이 보이는 전망대에서의 주왕산은 기암들이 서로의 자태를 뽐내는 듯하며 가을의 청명한 하늘과 알록달록 물드는 낙엽들의 조화로 힘든 오르막길의 위안을 준다.
힘들게 오른 주봉은 정상의 조망이 거의 없는 밋밋한 언덕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정상의 전망이 허전하여 칼등고개 갈림길에서 후리매기 삼거리로 가는 길을 지날 때는 가메봉으로 가는 길에 눈길이 자꾸 간다.
오르는 길은 가팔랐지만 내려가는 길은 다시 오르는 일 없이 내리막길이다. 길게 돌아 내려가는 동안의 노랗고 붉은 단풍과 청명한 하늘의 조화를 감상하며 가을을 만끽한다. 후리매기 입구에서 계곡 옆으로 난 단풍을 보며 오르다 보니 용연폭포가 나타난다. 수량도 적당하고 10여 미터 물줄기도 시원하다. 다시 돌아 내려오며 만나는 절구 폭포와 용추 폭포를 둘러싼 가을 단풍과 청량감도 산행의 피로를 풀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용추 폭포를 지나 협곡으로 들어서자, 말문이 막히며 잘 찍지 못하는 사진 실력에 이곳저곳 카메라를 들이대기에 바빠진다. 말로만 듣던 용추 협곡이 시작된다. 아니 거슬러 내려오고 있다. 급수대라 하고, 학소대라 하고, 잘 다듬어진 데크 길과 수십 미터의 바위들로 둘러싸인 협곡과 단풍의 잘 어우러진 풍광이 아! 비경이다! 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비경을 보기 위해 그렇게 모두가 주왕산! 주왕산! 꼭 가볼 만한 산이라 추천하는 이유를 알겠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중국의 ‘장가계’ 비경이 멋있다고 들었는데, 장가계의 유래는 유방이 항우를 제거한 후에 한나라 황제에 등극하였으나, 한신이 그 유명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을 남기고 유방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유방의 계략을 알아차린 장량이 유방의 군사들을 피해 토가족(土家族)이 살고 있는 청암산(靑巖山)에 은거하며 미개한 부족이였던 토가족에게 글을 가르치고 농사법 등 여러 문물을 알려주어 토가족이 잘살게 되었다.
그리하여 토가족 모두 장량을 숭배하여 장씨 성으로 개명하여 장 씨 집성촌인 ‘장가계’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한다. 주왕 굴과 주왕암, 대전사와 백련암 등의 이야기 속에는 비경 속에 숨어든 주왕의 아련한 사연들이 신화가 되어 흐르고 있어 더욱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하산 후 사과 막걸리 한잔에 늦은 점심을 먹고 잠깐의 시간이 남아 돌아본 주산지 맑은 물은 주왕산 영봉에서 뻗친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조선 명종 때 준공 이후 아무리 오랜 가뭄에도 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다 한다.
조용한 호수에는 울창한 수림이 맑게 비쳐 보이고, 맑은 물속에는 수령 300년의 왕버들을 포함하여 20여 그루의 왕버들과 능수버들이 주산지의 아름다움을 대변하고 있었다.
산행의 기억이 청송 사과만큼이나 상큼하다. 꼭 다시 가보고 싶은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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