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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화순의 아트&컬처]실험미술 거장 이건용 “미술밖에서 그린 나만의 그림, ‘소통’이 생명”

딸의 낙서에서 영감 얻어
45년 한길, 세계적 작가로 우뚝
10월 31일까지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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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작품앞에서 몸의 움직임을 유연하게 보여준다. 두팔을 하늘을 향해 쭉 뻗어서 마치 붓을 양손에 쥔듯이 화폭 위에 양팔을 돌린다. 화면의 뒤에서, 화면을 등지고, 화면을 옆에 놓고 선을 긋는가 하면, 손목과 팔꿈치를 부목으로 고정하고 이를 하나둘 푼다. 그리고 다리 사이에 화면을 놓거나, 화면을 코앞에 둔 채 양팔을활짝 벌린다. 또 어깨를 축으로 삼고 반원의 선을 침착하게 화면에 남긴다.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 이건용. 그가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 <바디 스케이프(Bodyscape)>를 열고 있다. 갤러리현대 신관 지하부터 2층 전시장에는 신작 회화 34점을, 갤러리현대 두가헌에서는 아크릴 물 감, 연필, 색연필 등 다양한 재료로 완성한 종이 드로잉 작품과 판화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전시는 온라인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우리 나이로 팔순이나 열혈 청년의 자세로 언론 · 관객들과 소통한다. 아홉 가지 방법으로 그린 ‘바디스케이프’ 신작을 한 자리에서 폭 넓게 볼 수 있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신작 34점과 드로잉은 완판됐다.

 

몸의 움직임 통해 그림 완성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내 신체와 재료, 평면(캔버스)이 자연스럽게 만나 이룬 작품”이라며 “미술 바깥에서 미술을 본 결과물로 세계 유일”이라며 뿌듯해 했다. 대상을 그리는 일반적 회화와 달리 그는 몸의 움직임을 통해 작품을 완성한다.

 

이건용 작가는 빈 박스를 뒤집어 검정과 흰색 펜으로 쓱쓱 드로잉을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부지불식간에 넘치는 에너지로 소통을 시도한다. 작가라는 딱딱한 권위 의식은 벗어던지고 그만의 즉흥 퍼포먼스를 즐긴다. 그의 작품이 어떻게 남들에게 비춰질지 계산하지 않는다.

 

“아침에 오늘 하루 할 일을 계획합니다. 콧노래를 부르면서요(웃음). 그러면 와이프가 묻죠. ‘오늘은 또 왜그래?’(하하) 늘 즐겁게 삽니다.”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죠?” 이건용 작가는 ‘그린다’는 행위는 ‘소통’이라 풀었다. 그렇다. 그는 사 람들과 소통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다.

그는 1976년 서울 출판문화회관에서 ‘바디스케이프’를 처음 발표한 후 쭉 ‘바디스케이프 ’ 연작을 이어왔다.

 

작가는 서구의 새로운 미술 양식과 패러다임이 등장하던 1960년대, 국제 미술계의 흐름을 비판하려는 태도를 바탕으로 ‘ST(Space and Time 미술학회)그룹’과 ‘AG(아방가르드)그룹’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후 1973년 파리 비엔날레와 1979년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참여하면서 1970년대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잡았다

.

 

갤러리현대서 2016년 이어  5년만에 개인전

 

갤러리현대와는 2016년 <이벤트-로지컬>전에 이어 두 번째 개인전 이다. 당시에는 1970~80년대 발표한 실험적 퍼포먼스와 기록 사진, 나 무와 흙과 같은 자연 재료를 활용한 오브제 작품에 주목했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그의 작품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2018년에 이르러 상황이 바뀌었다. 세계 유명 화랑인 페이스 갤러리 베이징점 개인전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붓을 든채 팔 길이만큼 휘저어 선을 그려 하트 모양을 이룬 ‘바디스케이프 76-3’ 연작이 경매에서 1억원을 넘긴 채 완판됐다.

 

하트에 대한 애정은 크다. 다양한 색채 하트를 모은 ‘바디스케이프 76-3’ 연작 12점 앞에서는 “큰 뮤지엄에 100호 하트 100점을 거는 것이 소원”이라며 “앤디 워홀도 보면 울고 갈 것”이라고 크게 웃었다.

 

작가는 “이제야 확실히 알려진 것 같다. 8년전에만 해도 작품이 안 팔려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를 3년간 괴롭힌 끝에 2016년 갤러리현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면서 “이렇게 화면 앞에서가 아니라 화면 뒤에서 화면을 등지고 그림을 그린 사람은 세계 회화사에서 내가 유일하다”고 자부심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45년간 그린 대표작 ‘바디스케이프’, 딸 첫걸음으로 착안

 

그가 ‘바디스케이프(Bodyscape)’ 연작을 발표한 것은 1976년. 꼭 45년전이다. 작가가 신체를 제한한 상황에서 간단한 선 긋기 동작을 수행하며 화면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이런 선 긋기가 시작된 계기를 묻자 ‘걸음마를 시작했던 딸 아이 덕분’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걷기 시작한 딸이 크레용을 갖고 뒤뚱거리면서 쓰러져 벽에 선을 긋게 됐는데, 벽에 다가가 손이 닿는 만큼 선을 그리더군요. 말리지 않고 선을 마음껏 긋도록 했죠.”

 

바디스케이프’ 연작을 ‘발명’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작가의 신체가 가장 탁월하고 직접적인 매체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이었다. 1973년 파리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자연의 나무를 뿌리와 지층 채 전시장에 옮겨 작품으로 제시하는 ‘신체항’을 완성하기 위해 파리 시내 곳곳을 움직인 그는 한국으로 돌아올 무렵 “몸을 예술의 매체로 쓰는 ‘행위미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한다. 또 비엔날레 현장에서 마주한, 캔버스의 프레임이나 물감 등 회화의 물적 토대를 새롭게 실 험하는 작가들의 신선한 회화 작품도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작가는 회화를 하나의 ‘환영’으로 해석, 천에 주름을 만들어 물감을 뿌려 주름의 흔적을 남기고 그것을 팽팽하게 펴서, 그림을 ‘환영’ 그 자체로 제시하는 ‘포’(1974~75) 연작과 ‘실내측정’, ‘동일면적’, ‘장소의 논리’ 등 계획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신체 행위를 전개하는 ‘이벤트-로지컬’ 연작을 공개하기에 이른다. 이후 발표된 ‘바디스케이프’는 작가의 신체를 세계와 만나는 매체로 활용하고, 그리는 행위를 정서나 감정의 표출이 아닌 신체의 제약이라는 필연적이고 논리적인 행위로 인해 발생한 사건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신체항’이나 ‘이벤트-로지컬’의 연장선에 놓인다.

 

1976년부터 현재까지 지속된 ‘바디스케이프 ’ 연작은 세계 미술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전복의 회화’다. ‘바디스케이프’ 연작은 전통적 의미의 회화 제작에 따르는 인식 관계를 혁명적으로 전복한다.

 

 

어린시절부터 호기심과 다독으로 ‘동양철학’에 관심

 

남다른 그의 작업은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부터 싹을 보였다. 늘 “왜요?”를 달고 살았던 그는, 홍익대 입학시험을 치룰 때도 아폴로 조각상의 앞이 아닌 뒤를 그려 추상 미술의 대가 김환기 미대 학장마저 놀라게 했다. 그에게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것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잠재했던 것이다. 김환기도 놀라게한 전복(顚覆)의 대가 하지만 그의 화가로의 길은 힘들고 어려웠다.

 

황해도 사리원이 고향인 아산 이씨 가문에 강직한 목사 아버지의 아들로 부모의 뜻을 거스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6·25때 나환자들에게 봉사를 해야한다는 부친의 숭고한 봉사 정신으로 소록도에 머물기도 했다. 하지만 4남매를 양육해야 했던 어머니의 눈물어린 설득으로 가족들은 소록도에서 경남 진해를 거쳐 제주도로 피난을 떠났다고 한다.

 

“미술하면 집안 망한다”는 아버지의 반대 속에도 작가는 미술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장서 1만여 권을 어린 시절부터 접하며 이른 나이에 동서양 철학에 눈을 떴다. 덕분에 그는 늘 기존의 보편적 사고와 다른 생각을 하곤 했다. 늘 ‘왜 꼭 그래야 될까? 이렇게는 안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기성의 고정관념, 문법을 깨고자 하는 시도는 작가가 미술가가 되고 나서도 계속됐다.

 

“현대미술이 자기중심적으로 나가면서 대중과의 소통이 단절되는 데 내 작품은 누구나 그릴 수 있다”라는 작가는 “그래서 형편없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친구처럼 서로 이해하는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것”이 라고 강조했다. “저는 미술 바깥에서 미술을 봤어요. 오늘날 우리 정치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기들끼리 권력을 잡으려고 싸우지 말고 바깥에서 보면 국민도, 어려운 사람들도 보이지 않겠습니까.” 전시는 10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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