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5.12.13 (토)

  • 흐림동두천 1.1℃
  • 흐림강릉 7.3℃
  • 서울 3.6℃
  • 대전 4.6℃
  • 흐림대구 8.8℃
  • 흐림울산 9.9℃
  • 광주 7.0℃
  • 흐림부산 11.5℃
  • 흐림고창 5.9℃
  • 흐림제주 14.4℃
  • 흐림강화 1.0℃
  • 흐림보은 4.6℃
  • 흐림금산 4.9℃
  • 흐림강진군 8.4℃
  • 흐림경주시 10.7℃
  • 구름많음거제 11.9℃
기상청 제공

문화

[이화순의 아트& 컬처] 이명복 <삶>展에서 만난 제주의 민낯

URL복사

제주의 깊은 상처 어루만져
2~3m 대형 인물화·풍경화 선보여
인사아트센터 1~2층, 20일까지

10년 전 서울에서 제주로 내려가 제주화가로 살고 있는 작가 이명복(63). 그가 ‘삶’을 주제로 한 대형 작품들을 들고 서울을 찾았다. 서울 인사아트센터가 20일까지 펼치는 기획전 <삶>展이 그 현장이다. 




‘풍경은 밖에 있고, 상처는 내 속에서 살아간다. 상처 를 통해서 풍경으로 건너갈 때, 이 세계는 내 상처 속 에서 재편성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데, 그때 새로워 진 풍경은 상처의 현존을 가열하게 확인시킨다. 그러 므로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김훈의 <풍 경과 상처> 중)


역사는 기록돼야 역사로 남고, 기록이 없는 역사는 잊혀져 버린다. 이명복은 “작가는 작품으로 시대의 아 픔, 진실을 전달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그림을 통해 공동체의 시대정신과 정서를 끊임없이 전파하고 세상 과 소통해왔다.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큰 인물화와 풍경을 통해 제주에 녹아 있는 역사와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


이명복 작가의 말처럼 인사아트센터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작가가 삶의 현장에서 만난 노년에 가까운 인물들을 관객은 조우하게 된다. 자글자글한 주름살 사이로 세 월의 흔적을 이겨낸 형형한 눈빛의 해녀 인물화들은 단번에 관객을 압도한다.


 

‘어쩌면 신적인 존재’라고 작가가 표현하는 우리네 어머니의 얼굴에는 숭고미마저 감돈다. 이들은 제주의 계절과 날씨에 따라 농사도 짓고, 물질도 하며 억척스레 살아온 이들이다.


2010년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해 제주도 서쪽 저지예술인마을에 작업장을, 한림읖 수원리에 살림집을 마련한 이명복은 3년간의 적응기를 거친 이후 이곳서 만난 해녀들부터 화폭에 담았다. 작은 부표 하나에 의지해 거친 바다 속으로 스스럼없이 뛰어드는 해녀들에게서 제주도민의 정신을 생생하게 느낀 작가에게 해녀는 살아있는 좋은 모델인 셈이다.


전시장 1층에 들어서면 자글자글한 주름살에도 눈빛을 반짝이며 활짝 웃고 있는 <옥순삼춘>이나 <수원 해녀삼춘>, 왠지 모를 서글픔을 담은 <해녀 옥순삼춘> 등의 작품이 모두 해녀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그들의 대형 인물화 옆에는 무릎까지 꿇은 채 메마른 돌밭에 호미질하는 여성 농부, 가뭄에 허탈감과 분노하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이들 사이에 유일한 남성 인물화도 만나게 되는데, 퀭한 눈에 한맺힌 표정으로 뭔가 할 말을 쏟아내는 듯한 표정의 4·3사건 증인 오태순 씨의 흑백 인물화다.



1층이 인물화 중심이라면, 2층에는 풍경화가 중심이다. 제주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인 정방폭포와 숲, 조랑말 그림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마냥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다. 빨간 동백꽃이 폭포수와 함께 화폭 가득한 정방폭포의 야경(작품 <기다리며>)으로 제주 4·3사건의 희생자와 그 죽음을 만나게 되는데, 컴컴한 어둠속 폭포 아래에는 가족을 기다리는 소녀의 뒷모습이 보인다. 또다른 정방폭포 그림인 ‘폭포’는 마치 제련소의 용광로처럼 시뻘건 불길처럼 폭포수가 쏟아지는 정경을 담고 있다.

 


“육지 사람들은 4·3사건의 실상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작가는 “저도 이곳에서 실상을 알기까지 6년 정도 지나서야 동네분들 입으로 이야기를 듣게 됐다”고 말한다. 이어 “제주에는 4·3사건으로 온가족이 몰살당한 가정도 많아 3만명 정도가 당시 사망했다고 한다. 강력하게 어필하는 문화계 인사나 피해자 몇몇 분 외에는 대부분 가슴에 아픔을 묻고 살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이웃들의 아픔을 보다가 그들 사이에 대를 이어 내려오는 마음속 화병(火病)을 화폭에 담은 작품이 정방폭포를 소재로 그린 <폭포>다.  


나무, 숲 통해 듣는 생명과 역사 이야기


이번 전시에서 첫공개된 <4월의 숲> 등 적색 청색 녹색의 단색화로 표현된 숲 시리즈 연작은 생명체로서의 세월을 견뎌온 숲과 나무를 통해 민중의 삶과 아픔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자연과 식물 생태계의 보고(寶庫)인 제주가 파괴되고 망가지는 모습이 보인다. 단색에 깊고 풍부한 명암표현법을 선보이는 이 숲 그림들은 폭만 3m에 달하는 대작으로 긴장감과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아름다운 숲이지만 이 숲은 4·3사건 때 젊은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도피했던 곶자왈이다.


작가는 제주 산방산 아래 4·3의 주검들을 배치한 ‘침묵’(2014)을 통해 일찌감치 제주 도민들의 오랜 아픔과 한(恨)·정서와 함께 해왔음을 보여준다. <침묵>은 하늘-산방산-땅 밑의 구조다. 땅 밑에는 4·3의 주검들이 보인다. 산방산 앞 무덤은 ‘일조백손지묘(一祖百孫之墓)’인데, 4·3의 주검들이 묻힌 그곳 뼈는 한곳에 묻혀 주인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기에 후대의 후손들은 이곳 주검 전부를 한 조상(一祖)으로 모신다고 한다.  작가는 “아름다운 제주의 관광지 중 많은 곳이 4·3사건 당시 학살터였던 곳이 많다”라고 말한다. 




역사적 아픔에 대한 작가의 발언은 대형 흑백화 <광란의 기억>(2018, 227*363cm)과 <부유>(2019, 194*391cm)를 통해 다시 한 번 명확해진다. 통시적 역사화인 <광란의 기억>은 높이 솟은 한라산(아래)과 뻥 뚫린 구멍(위) 사이에 부둥켜 안은 나신의 남녀를 중앙에 배치하고, 그 주변에 4·3사건 관련자들이 배치된 구도다. 멀리 용두암과 정방폭포가 있고, 그 풍경에 동백꽃이 휘날린다. 근경에는 4·3사건 희생자들과 무장대, 토벌대가 있고, 저 멀리 제주풍경이 보인다. 그리고 화폭 아래에는 이승만 정일권 미군의 모습도 보인다.


역시 흑백화인 <부유>에는 해녀들과 어린아이, 사자와 코끼리 호랑이 돼지 악어 등 동물과 폭격기, 해골, 굴착기, 돌멩이 등이 제목처럼 부유하는 그림이다. 현재 제주도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과 거짓말, 우려 등을 녹여낸 작품이다.




제3자 시각으로 그려보는 4·3사건


이명복은 제주가 아닌 타지 출신 작가로서 4·3사건을 깊이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해 “제주 출신 작가들과는 다른 제3자의 시각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혹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대답한다. 현실 비판적 작품 활동을 활동 초기부터 견지해온 작가답게 그는 4·3사건 관련한 그림을 매년 한두점씩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인물화 풍경화도 열심히 그려 4·3사건에만 빠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고 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삶의 끈적끈적함이 녹아있는 인물의 초상화에 큰 매력을 느꼈다”는 작가는 “앞으로도 아름다운 외형의 인물이 아니라 곰삭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진 인물화에 계속 도전해볼 참”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우리 어머니들은 여신(女神)이다. 정말 아름답고 존경스러운 분들이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대중과 고통·아픔 공유해야”


중앙대 회화과를 졸업한 이명복은 방송국에 근무하면서도 끊임없이 ‘역사와 현실’이라는 주제로 한국 현실의 시대상을 작품으로 표출해 왔다.


1982년 ‘임술년 98992’ 그룹에 참여해 덕술미술관에서 창립전을 열었다. ‘작가는 현실 속 고통과 아픔, 애환을 대중과 공유해야 하는 임무를 가진 자’라는 신념에 따라 작품활동을 지속한 것이다.



1990년대에는 미군 상륙한 이후 자본주의 사회로 점차 몰락해가는 시골 풍경을 주로 그려왔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당시 권력의 지배성을 작품에 담아 전달하고자 했다. 광부, 뱃사공, 농민들을 주로 다른 인물 연작은 치밀하면서도 세밀한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들의 고된 삶을 표현했다.


2010년에는 제주로 입도한 후 해녀와 밭일하는 여성들을 그리면서 삶과 노동의 현장에서 작가가 직접 만난 사람들을 실감나게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수면 아래 감춰진 제주의 과거를 캔버스에 흡수해 제3자의 시각에서 그 참혹한 현장을 다시금 수면 위로 들어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명복은 오는 6월에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리는 국제전에 참가해 4·3사건 증인을 다룬 인물화를 출품할 예정이다. 7월에는 2014년부터 오스트리아 라비니츠 지역에서 해온 레지던시에 3주간 참여한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정치

더보기
여야,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 정면충돌...“특검 도입하자”vs“물타기, 정치공세”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정치권 인사들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해 여야가 정면충돌하고 있다. 국민의힘 등은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 도입을 촉구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12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해 “국회는 즉시 ‘통일교 게이트 특검’ 도입을 준비해야 해야 한다”며 현행 ‘김건희와 명태균·건진법사 관련 국정농단 및 불법 선거 개입 사건 등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출범한 민중기 특별검사의 직무유기도 새 특검이 철저히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민중기 특검의 책임 규명과 즉각적 해체는 필수이다. 마침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차 종합특검을 발족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상태이다”라며 “여기에 민중기 특검의 직무유기 부분을 민주당과 통일교 유착관계와 포함해 특검을 실시하면 매우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통일교 게이트의 진실을 끝까지 추적하고 연루된 모든 사람에게 법적·정치적 책임을 따져 묻겠다”고 밝혔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 대표는 11일 국회에서 개최된 최고위원회의에서 “개혁신당이

경제

더보기
김윤덕 국토부 장관 "2026년 상반기 주거복지 추진 방향 발표"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국토교통부가 오는 2026년 상반기 주거복지 추진 방향을 내놓는다. 내후년에는 2차 공공기관 이전 절차에 착수한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12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장관은 "국민이 원하는 곳에 빠르고 충분하게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며 "수도권 공공택지는 2026년에 2만9000호 분양, 5만호 이상 착공에 들어가고 3기 신도시 입주도 본격화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도심 유후 공간을 활용하고 민간 정비사업도 활성화해 도심 공급 확대할 것"이라며 "공적주택 110만호를 확실히 공급해 주거 사다리를 다시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공적주택 110만호 공급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다. 김 장관은 또 "지방을 살릴 핵심적 과제는 공공기관 2차 이전"이라면서 "내년에 이전 대상과 지역을 확정하고 2027년부턴 이전을 시작할 예정으로 1차 때보다 더 많은 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국토부는 현재 350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이전 여부를 검토 중이다. 대통령 세종 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 완공도 임기 내 반드시 완공하겠다는 목표다. 새정부의 균형

사회

더보기
확정되지 않은 형사 사건 판결서도 열람·복사 가능 법률안 국회 통과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확정되지 않은 형사 사건 판결서도 열람·복사할 수 있게 하는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는 12일 본회의를 개최해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59조의3(확정 판결서등의 열람·복사)제1항은 “누구든지 판결이 확정된 사건의 판결서 또는 그 등본, 증거목록 또는 그 등본, 그 밖에 검사나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법원에 제출한 서류ㆍ물건의 명칭ㆍ목록 또는 이에 해당하는 정보(이하 ‘판결서등’이라 한다)를 보관하는 법원에서 해당 판결서등을 열람 및 복사(인터넷, 그 밖의 전산정보처리시스템을 통한 전자적 방법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 제59조의3(판결서등의 열람·복사)제1항은 “누구든지 판결이 선고된 사건의 판결서(확정되지 아니한 사건에 대한 판결서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 또는 그 등본, 판결이 확정된 사건의 증거목록 또는 그 등본, 그 밖에 검사나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법원에 제출한 서류ㆍ물건의 명칭ㆍ목록 또는 이에 해당하는 정보(판결서 외에는 판결이 확정된 사건에 한정하며, 이하 ‘판결서등’이라 한다)를 보관하는 법원에서 해당 판결서등을 열람 및

문화

더보기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또 만지작…전국을 부동산 투기장으로 만들 건가
또 다시 ‘규제 만능주의’의 유령이 나타나려 하고 있다. 지난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규제 지역에서 제외되었던 경기도 구리, 화성(동탄), 김포와 세종 등지에서 주택 가격이 급등하자, 정부는 이제 이들 지역을 다시 규제 지역으로 묶을 태세이다. 이는 과거 역대 정부 때 수 차례의 부동산 대책이 낳았던 ‘풍선효과’의 명백한 재현이며, 정부가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땜질식 처방을 반복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규제의 굴레, 풍선효과의 무한 반복 부동산 시장의 불패 신화는 오히려 정부의 규제가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곳을 묶으면, 규제를 피해 간 옆 동네가 달아오르는 ‘풍선효과’는 이제 부동산 정책의 부작용을 설명하는 고전적인 공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10.15 부동산대책에서 정부가 서울과 수도권 일부를 규제 지역으로 묶자, 바로 그 옆의 경기도 구리, 화성, 김포가 급등했다. 이들 지역은 서울 접근성이 뛰어나거나, 비교적 규제가 덜한 틈을 타 투기적 수요는 물론 실수요까지 몰리면서 시장 과열을 주도했다. 이들 지역의 아파트 값이 급등세를 보이자 정부는 불이 옮겨붙은 이 지역들마저 다시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만약 이들 지역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