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박상현 기자] 정주영 명예회장의 1998년 ‘소떼방북’으로 시작된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은 현정은 회장에겐 정통성을 잇는 사업이었다.
현 회장은 정몽헌 회장 추모 5주기를 맞아 현대그룹 신입사원의 금강산 수련회와 비로봉관광 개방 확대로 그룹의 위상을 확립하고자 했다.
하지만 5년 뒤 7월 11일 새벽 금강산에서 울려 퍼진 총성은 현 회장뿐만 아니라 현대가(家)와 이명박 대통령에까지 파장이 확산됐다.
여기에 ‘뜨거운 감자’인 현대건설 인수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현 회장과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재격돌을 예고하는 등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은 일파만파 번졌다.
현 회장은 현대건설 인수에 성공해 정주영 창업주에서 정몽헌으로 이어지는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잇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금강산관광사업 전면 중단으로 현대아산의 존폐 위기마저 거론되는 상황에서 현대건설 인수는 물 건너갔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사업 성격상 지난 김대중·노무현정부와의 밀착 관계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현 회장이 지난 노무현정부에서 현대건설 인수 건을 선점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인 것 또한 사실이다.
현대건설 덩치가 큰 데다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현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 외에 뚜렷한 경쟁자가 없기는 했다.
하지만 현대상선이 주력사인 현대그룹도 인수가격 부담에 산업은행과 예금보험공사의 완고한 입장에 부딪혀 있다.
현 회장은 취임 5주년째 백두산 직항로 관광과 금강산 비로봉 개방으로 대북사업을 확실히 펼쳐 보려 했는데 이명박정부 출범과 함께 남북관계가 경색돼 애로를 겪어 왔다.
그나마 북핵문제가 풀리면서 잘 되나 했는데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이 터져 다시 좌절을 겪었다.
현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에게서 배운 ‘불도저식’으로 극복해 왔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정부의 금강산관광 중단이 선언된 상황에서 평양식당(남북 공동운영 식당) 개관식도 무기 연기됐다.
또 비로봉 관광 개시, 정몽헌 회장 추모식 및 신입사원 수련회, 정주영체육관 기념행사, 2009년 백두산 관광 등 예정된 행사들의 시행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현대아산 매출에서 대북관광 비중이 45%를 차지할 만큼 금강산·개성 관광사업은 중요하다.
금강산관광 1개월 중단시 120억 원 이상 손실이 추정됐다.
‘대북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앞세워 현대건설까지 인수해 그룹에 날개를 달겠다는 전략이었다.
현대아산은 1,084명의 인력 중 605명을 감축하면서도 "대북사업에 포기는 없다"며 끊어진 금강산관광사업을 잇기 위해 조건식 전 통일부 차관을 현대아산 사장으로 영입했다.
현 회장은 임직원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강에서 열린 그룹단합대회에서도 “절대 대북사업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북사업의 기로에 서 있던 현 회장이 선택한 최후의 카드는 조건식 사장 후임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장경작 전 호텔롯데 비상임고문을 선임한 것이었다.
호텔롯데 사장 때 전 정부 시절 풀지 못했던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를 이끌어내는 수완을 발휘했던 인물이다.
2010년 4월 1년 9개월째 중단된 대북 관광사업으로 그룹이 2,500억 원대 손실을 본 가운데 북측이 계약파기와 일부 부동산 동결이라는 돌발행동을 보이자 위기감이 고조됐다.
정 명예회장의 시베리아 자원개발 의지를 이으려 2011년 4월 현대중공업은 현대자원개발이라는 회사를 출범시켰다.
이명박정부가 자원개발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점도 있겠지만 남북러를 연결하는 한반도 가스관사업이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작용했다.
임기말에 이명박정부는 가스관사업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과 여러 이유로 이 사업은 장애물을 넘지 못한 채 사장되고 말았다.
2013년 박근혜정부로 넘어가면서 2014년 현대중공업은 창사 이래 최대 영업손실을 입었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현대자원개발은 첫 대상이 되고 말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