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천세두 기자]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로 주택 수요가 줄어들면서 전세난은 오히려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아울러 대출 과정에서 상환능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신혼부부 등 사회초년생의 내집마련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내년부터는 주택담보대출 심사가 기존의 담보 위주에서 '상환능력'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은행권은 이를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 소득증빙자료 등을 통해 상환능력을 엄격히 평가할 계획이다. 또한 비거치식 분할상환 제도로 원금과 이자를 함께 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대출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대출 규제는 수도권에서는 내년 2월부터, 지방에서는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하지만 은행권은 이를 염두에 두고 대출상담에 들어가기 때문에 사실상 내년 초부터 주택담보대출을 받기가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내년부터 주택 구매 수요는 위축되고, 거래량이 줄어들면서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매매수요가 위축되는 대신 전세 수요가 증가하면서 전세난을 부추길 것으로 우려된다.
◆주택 매매 위축 불가피
박합수 KB국민은행 명동스타 PB센터 부센터장은 "내년부터 미국발 금리인상과 대출규제가 맞물리면서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올 9월부터 시작된 주택 거래량 감소 현상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전문위원은 "신규 분양 등으로 수급불균형이 우려되는 지역의 경우 대출규제 강화까지 겹칠 경우 집값 하락이 예상된다"며 "서울의 경우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입주물량이 충분하지 않은데다 내년 상반기 재건축·재개발 이주수요도 겹치기 때문에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택시장이 급랭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인상이나 선진화방안 등은 이미 예고되어있던 데다 점진적으로 이뤄지는만큼 주택시장 급랭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밝혔다.
◆전세·반전세 가격 상승, 월세영향은 미미
대출을 얻어 내 집을 마련하려는 수요에 제동이 걸리면서 전세난은 오히려 심화될 전망이다.
김규정 전문위원은 "집을 사지 못한 이들이 임차시장으로 몰리면서 전세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내년에 금리가 인상되면 전세매물은 더 줄어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전월세 전환 추세는 가속화할 것"이라 말했다.
월세보다는 반전세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김덕례 연구위원은 "월세보다는 전세수요가 많아 전셋값은 오르겠지만, 순수 월셋값은 떨어질 것"이라며 "대신 반전세 전환이 늘어나면서 월세보다는 반전세 부담이 더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3040세대, 신혼부부 및 사회초년생 부담 가중
대출을 할 때 3~5년간의 상환 거치기간이 사라짐에 따라 사회초년생이나 신혼 부부의 부담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박 부센터장은 "30~40대초반이나 신혼부부 및 사회초년생에게 기존에 3~5년의 상환 거치기간이 있던 것은 이들의 소득이 상승할 것으로 기대해 향후 원금을 나눠서 낼 수 있도록 준비기간을 준 것"이라며 "이번에 이런 거치기간이 단축되면 이자와 원금을 함께 상환하면서 주거비용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 말했다.
김규정 전문위원은 "금리가 빠르게 오르진 않겠지만, 금리가 인상되면 매달 주거비가 올라갈테니 이를 염두에 둬야 한다"며 "이전부터 주택구입을 계획해 왔다면 내년 상반기 주택시장을 지켜본 뒤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기존 주택매매 뿐 아니라 분양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권고도 나온다.
박 부센터장은 "분양을 받을 때 자주 이용하는 집단대출은 그대로 이용할 수 있지만 나중에 잔금을 처리해야 하는 부담은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덕례 연구위원은 "선호지역만 바라볼게 아니라 소득 등을 검토해 내 수준에 맞는 집을 찾아야 한다"며 "교통인프라가 확충되면서 굳이 서울을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 서울 전셋값이면 수도권에 집을 충분히 살수 있다. 또한 비아파트 중에서도 아파트만큼 평면도 잘 나오고 주차문제도 해소된 곳도 많다. 무리하지 말고 적정 규모의 집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파트 중도금·잔금 대출은 내년에도 '이자'만 갚아도 된다
한편 내년부터 원금 상환을 미루고 이자만 월납한 뒤 나중에 한꺼번에 갚는 '거치식 일시 상환' 방식의 주택담보대출이 어려워진다. 또 대출 한도에 대해서도 금리 인상을 반영한 가산금리인 스트레스 금리(stress rate)가 적용돼 변동 금리로 빌릴 수 있는 돈의 한도가 제한된다. 하지만 내년 강화된 기준이 적용되더라도, 여전히 원리금 상환 시기를 늦출 수 있는 대출자들은 있다.
집단대출이나 상속 과정에서 채무를 인수한 사람, 생계형 대출자 등은 내년에도 매달 이자만 납부한 뒤 한꺼번에 대출금을 갚으면 된다. 먼저 주택에 대한 중도금, 이주비, 잔금상환 등의 '집단 대출'은 기존과 같이 원금을 나중에 상환하는 대출 방식이 허용 된다.
예를 들어 아파트를 분양 받고 은행에서 중도금 대출을 받고 납부까지 마친 입주자는 내년 새로운 기준이 적용되더라도 기존대로 일시 상환 방식으로 잔금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집단대출은 담보 주택이 없는 상황에서 주택보증공사나 시행사, 시공사 등의 연대 보증이 크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집단대출에 대한) 리스크 관리는 개별 은행 차원에서 시작했다"며 "총량 규제를 하게 되면 오히려 부담이 차주에게로 전가될 수 있다"고 했다.
상속이나 채권 보전을 목적으로 경매에 참가하는 등 불가피하게 채무를 감당하게 된 대출자도 원금 상환 시기를 늦출 수 있다. 예컨대, 홀어머니 사후 3억원 상당의 주택과 일시 상환 방식의 1억원 주택담보대출까지 함께 상속 받게 됐다면 대출 방식은 분할 상환으로 전환되지 않고 유지되는 식이다.
예금이나 적금 만기가 가까워졌거나 여분의 주택 처분 계획이 있는 대출자의 경우에는 상환 능력이 있다는 판단 아래 원리금 상환을 늦출 수 있다.
생계형 대출의 경우에도 매달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지 않아도 된다. 가구의 주요 소득자가 사망했거나 퇴직한 경우, 거주하던 주택을 잃었을 때가 이에 해당된다. 또 의료비나 학자금 목적의 생활형 대출도 원금 상환을 미루는 것이 가능하다. 이외 불가피한 사정이 있고, 개별 은행이 그 사유를 인정하면 예외적으로 거치식 일시 상환 대출을 받는 방법도 있다.
손 국장은 "서민 애로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예외 사항을 뒀다"며 "취약 계층에게는 맞춤형 지원 대책을 통해 지원할 방침"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