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지난 13일(현지시각)프랑스 파리에서 13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 테러 현장에서 위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리아 여권이 발견되면서 난민포용정책을 악용한 위조여권 암시장에 문제가 수면 위로 본격 떠오르고 있다.
15일(현지시각)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번 테러범 중 한 명의 시신 인근에서 발견된 여권은 지난 10월 그리스와 세르비아를 거친 난민이 사용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국방정보국은 이번에 발견된 여권을 분석한 결과 일련번호와 사진, 이름 등이 일치하지 않아 위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난민포용정책으로 독일과 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이 시리아 난민에게 입국 특혜를 주다 보니 시리아 여권에 대한 암거래 또는 위조 여권 거래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 국경관리기구인 프론텍스의 파브리스 레게리 이사는 "시리아 난민에 대한 EU의 입국 특혜를 알고 있는 아랍인들이 위조된 시리아 여권을 사들이고 있다"고 지난 9월 프랑스 언론을 통해 밝힌 바 있다.
시리아 여권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다 보니 피난 도중에 자신의 여권을 잃어버리거나 도난당했다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한 난민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수백 유로를 대가로 그리스-마케도니아 국경까지 안내해 주겠다고 한 안내자가 경찰을 피해야 하니 차에 숨어있으라고 속인 뒤 우리의 여권을 갖고 도망쳤다"고 진술했다.
이 같은 방법으로 도난된 시리아 여권은 사진 등을 교체한 뒤 아테네 등 시리아 난민이 많이 찾는 암시장에서 약 5000유로(약 628만원)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파리 자살폭탄 테러범 시신 인근에서 발견된 시리아 여권은 최근 반란군에 점령당한 시리아 북동부 이들리브 출신 25세 남성 아흐메드 알 모하메드가 지난 10월3일 그리스 레로스 섬에 입국하는 과정에서 사용했다.
아흐메드 알 모하메드는 지난 5일 아테네에 도착한 뒤 마케도니아를 걸쳐 세르비아 국경도시에 지난 7일 도착해 공식 망명을 신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흐메드 알 모하메드는 위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권으로 고작 이틀 만에 아테네에서 세르비아까지 이동한 것이다. 발칸 반도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경로에서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통과 서류가 손쉽게 남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발칸 경로로 지목되는 국가 어디에서도 무작위 검사를 통해 이주자들 되돌려보낸 기록이 전혀 없다. 이 국가들이 이주자들이 자기들의 나라에 좀 더 오래 거주하기보다는 그저 빨리 다른 나라로 통과하기만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경우 하루에도 수천명의 난민들이 유입되다 보니 형식적인 입국절차만 치러지는 상황이다. 지난 10월부터 지문 기록을 남기고 있지만, 난민들이 무장 세력과 관련돼 있는지까지 확인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리스 정부의 입장이다.
이번 테러를 계기로 난민정책을 축소하고 국경통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독일 바이예른 지역 재무장관 마르쿠스 소더는 독일 언론을 통해 "이번 파리 사태가 모든 것이 변했다"라며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이민정책은 더 지속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폴란드의 신임 유럽 문제 담당 장관 콘라드 스지만스키는 "EU의 안전에 대한 확실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난민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난민 수용에 대한 EU의 권고에는 법적 구속력이 있지만, 파리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을 목격한 이상 관련 결정을 존중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리아 여권의 분실과 위조, 거래가 난무하는 상황에 프랑스 파리 테러범이 레로스섬으로 들어온 아흐메드 알모하메드와 같은 인물인지 확인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해당 여권이 수차례 주인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섣부른 결론을 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주요 20개국(G20)정상회의에서 "파리 테러 공격 때문에 우리의 난민 정책이 바뀔 필요가 없다"면서 "세계 지도자들은 망명 시도자들을 테러리스트로 취급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서 이 같은 원초적인 감정에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르슐라 폰 데어 레이엔 독일 국방부 장관도 "테러는 굳이 고된 난민 경로를 통해 유럽에 들어올 필요가 없을 정도의 조직력을 갖추고 있다"라며 "난민사태와 이번 테러를 혼동하는 것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테러현장에서 발견된 또 하나의 여권을 테러범의 것이라고 프랑스 주간지 '르 푸엥'이 보도하면서 테러로 부상을 입어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피해자 왈리드 압델 라작이 테러범으로 몰리는 소동도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