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신철 기자]세월호 참사 당시 침몰하는 배에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준석(70) 선장에게 대법원이 12일 살인죄를 인정, 무기징역을 최종 확정했다. 참사가 일어난 지 576일 만으로 대법원이 대형 인명 사고에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한 첫 사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살인 및 살인미수, 수난구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선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또한 함께 재판에 넘겨진 1등 항해사 강모씨 등 14명에게 원심이 선고한 징역 1년 6개월~12년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승객 등을 구조하지 않은 행위(부작위)를 살인 행위와 같게 평가해 이 선장의 살인 혐의를 인정했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부작위가 사람을 살해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적극적인 행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선장의 (승객을 구하지 않은) 부작위는 작위에 의한 살인의 실행행위와 동등한 법적 가치가 있다"며 "대피·퇴선 명령만으로도 상당수 탈출해 생존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타실 내 장비 등으로 대피·퇴선 명령이 충분히 가능했음에도 구조조치를 전혀 하지 않아 승객 등이 탈출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이러한 (이 선장의) 행태는 승객 등을 적극적으로 물에 빠뜨려 익사시킨 행위와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승객 등을 내버려 둔 채 먼저 퇴선한 이 선장의 행위에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미필적 고의'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선장은 승선 경험이 풍부한 선장으로 자신의 명령에 따라 대기 중인 승객들이 익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했음에도 승객들을 선실에 대기하도록 내버려둔 채 먼저 퇴선했다"며 "이는 선장의 역할을 의식적이고 전면적으로 포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선장이 퇴선 직전 승객 등에게 퇴선 상황을 알려줄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고 퇴선 후에도 해경에게 선내 상황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점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한 태도로 방관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재판부는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가 적용된 세월호 기관장 박모(55)씨와 1등 항해사 강모(43)씨, 2등 항해사 김모(48)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선장과 같이 사태를 지배하는 지위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박보영·김소영·박상옥 대법관은 강씨와 김씨에 대한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 유죄 의견을 냈다.
이들 대법관은 "1·2등 항해사의 지위나 의무에 비춰 선장을 대행해 구조조치를 지휘할 의무가 현실적으로 발생했다"며 "구조조치를 하지 않고 퇴선한 행위는 이 선장과 마찬가지로 승객 등의 사망 결과를 인식하거나 용인한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애초 이 사건을 1부 김소영 대법관에게 배당하고 심리를 진행하던 중 지난달 19일 전원합의체로 회부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이 선장에게 적용된 살인 등 일부 혐의를 무죄로 판단해 징역 36년을 선고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 선장에게 살인죄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 선장을 제외한 다른 선원들은 1심에서 징역 5~30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징역 1년6개월~12년으로 모두 감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