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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맥아더, 한국전쟁기간 중국연안 침공 확전위기 문서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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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함대 광동성 해안 무력시위…교전시 3차세계대전 우려


[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맥아더, 한국을 구한 영웅인가 무능한 패장인가'

9.15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더글라스 맥아더(1880-1964) 장군이 무능한 전쟁광이라는 주장과 함께 맥아더가 공산화된 중국의 수복을 위해 중국 연안을 공격하려 했다는 관련 문서의 존재가 밝혀져 주목되고 있다.

뉴시스가 13일 입수한 에드워드 마롤다 박사의 '미 제7함대 역사'(2012 미해군성 발행)에 따르면 맥아더는 1951년 4월7일 동해에 있던 7함대 소속 77기동대(Task Force 77) 의 두 항공모함을 대만 해협 중국 측 해안 근처로 파견하며 무력시위를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4월11일 오전 11시경 구축함 존 보울호(USS John A. Bole)가 샨토우(중국 광동성 동부 해안) 앞 3마일까지 영해를 침입, 중공측 무장선 47 척과 두시간 가까이 대치했으며 함재기들이 중공측 정크선 샨토우 항구 근처까지 위협적 시위 비행을 감행했으나 다행히 쌍방이 화기를 사용하지 않아서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겼다.

이튿날인 4월12일 오후 2시(미국시간 4월11일 새벽1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를 최고사령관직에서 전격 해임했다. 훗날 작가 제임스 에드윈 알렉산더는 "맥아더는 중공의 발포를 유도하려고 보울호와 승무원 250여명의 희생을 감수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트루먼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으나 '독불장군' 맥아더에 분노, 파면함으로써 세계3차대전으로 비화될 수도 있는 원인을 제거한 셈이었다.

관련 자료를 발굴한 김태환 하버드대 남가주한인동창회장은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맥아더가 중공군 개입후 만주 폭격과 심지어 원자탄까지 사용하려 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이지만 미7함대를 동원해 중국 연안을 공격해 확전을 유도한 기록은 처음 확인된 사실"이라고 밝혔다.

또다른 자료에 따르면 맥아더는 한국전쟁 한달후인 1950년 7월 말 대만을 방문, 장제스(蔣介石) 총통에게 중국 수복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51년 3월15일 휴 베일리 UP 통신사의 사장이 요청한 서면 질의서에 "우리의 목표는 한국의 통일이다”라고 답했지만 진짜 목표는 한국전쟁을 기화로 중국을 수복하려했다는 것이다.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10월3일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공 외교부장은 인도 대사 파니카를 통해,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올 경우에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한국군만 월경하는 경우에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는 중공이 6.25 사변을 내전(Civil War)으로 본다는 의미였다.

이 경고로 인해 유엔군은 38선에서 행군을 멈추고 휴전에 돌입할 것인지, 이참에 북진을 계속하여 한국의 통일을 달성하느냐라는 중대한 기로에 도달했다. 트루먼은 10월15일 태평양 상의 웨이크 아일랜드에서 맥아더를 만나 "중공군의 개입 가능성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맥아더는 “그들은 개입하지 않는다. 만에 하나 참전한다해도 우리 공군의 밥이 될 것"이라고 응대했다. 안도한 트루먼이 무공훈장을 수여하고 북진을 허용하자, 맥아더는 10월19일 평양을 점령하고, "(미국) 추수감사절 경에 전쟁을 끝내고, 크리스마스까지는 (장병들이) 집에 돌아 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당시에 북진을 반대한 사람은 딱 한 사람으로 '대소 봉쇄 작전(Containment of Soviet expansion) 주장으로 유명한 조지 케난이었다. 1952년 소련주재 미국대사를 5개월간 맡기도한 그는 "38선에서 머무는 것은 전전 상태(Status Quo Ante Bellum) 회복으로 유엔 결의를 달성하며, 봉쇄작전의 성공이지만, 38선을 넘어가면, 롤백(Roll Back) 작전이 되어 중공이나 소련의 개입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의 예상은 한달도 되지 않아 적중했다.

트루먼과 맥아더의 희망사항과는 달리 불과 나흘 후인 10월19일 중공군은 '인민 지원군'이란 이름의 의용군(Volunteers)을 내세워 북한의 산악지대로 소리 없이 들어와 포진하고 있었다.

중공이 군사적으로 절대열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에 개입한 것은 미국의 침공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대만으로 패퇴한 장제스가 빼앗긴 본토를 수복해야한다고 법석을 떠는 소위 '차이나 로비'가 상당한 세력을 이루었다. 1950년 여름 중공이 정예군을 대만 대안 지역에 집중시켜 놓은 상태에서, 6월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한국 파병은 물론, 대만해협에도 미국의 제7함대를 파송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월남을 식민지로 계속 확보하려는 프랑스에 군사지원을 하는 등 중공은 이를 명백한 포위 작전으로 판단했다. 따라서 중국 본토의 확전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서둘러 한반도에서의 대리전을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 맥아더 한국전쟁 통해 중국본토 수복 노려

 최신무기로 무장한 미군이 일인당 소총 한자루씩도 갖추지 못한 중공군에 패퇴하는 것을 예상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맥아더는 중공군의 움직임을 알고도 모른 채 했고 이들을 오합지졸로 판단하는 결정적인 우를 범했다.

김태환회장은 "맥아더가 북한으로 이동하는 중공의 군사적 움직임을 개입을 몰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국 CIA도 정보를 수집했을 뿐만 아니라 국부군의 본토내 정보 조직이 상당히 활발했고, 중공군의 이동 상황은 쉽게 감청해 그 내역이 맥아더 사령부에 수시로 보고됐다"며 2012년 9월26일 일급비밀에서 해제된 감청보고서 자료를 제시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증거는 전직 3군 총사령관으로 이승만대통령과 가까왔던 정일권 장군(후에 국무총리)이 자신의 회고록에 '맥아더가 웨이크 섬에서 트루먼과 회담시 중공의 개입 가능성을 낮추자고 이박사가 제의하고 맥아더가 동의하는 친필 서한을 보았다"고 증언했다는 점이다.

1950년 10월25일 중국 지원군과의 일차 조우에서 국군 2군단과 미 제1기갑사단이 평북 온정과 초산에서 피해를 입고 청천강으로 밀려났다.(중공군 제1차 전역). 이 전투에서 중공군 포로까지 붙잡았으나, 맥아더는 중공의 개입을 과소평가하고, 계속 북진을 고집하여 크리스마스 때까지 전쟁을 끝내겠다고 다시 한번 장담했다.

중공군은 야간에만 행군하고 낮에는 산간 지역에 은닉하여 유엔군의 공중 정찰을 피했다. 그들은 일인당 소총도 한자루씩 소지하지 못했고, 전위병은 막대 수류탄으로 무장했을뿐이었다. 김태환회장은 "중공군은 수송 능력이 모자라 초기엔 가장 큰 무기가 들고 운반하는 박격포 정도였다. 통신수단도 제대로 없어 삼국지에서 읽었던 꽹과리, 피리, 북, 횃불 등으로 교신과 명령 하달에 활용했다. 이런 초라한 행색의 19세기 군대가 20세기 초현대식 군장비를 갖춘 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것은 작전의 기본 원칙도 무시한채 오로지 진군명령만 내린 맥아더의 독선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평안북도 산중에 은닉한채 유엔군을 기다리던 중공군은 11월25일 그물망에 들어온 미 제2사단을 한밤중에 야습, 대혼란에 빠뜨렸다. 타고온 트럭들이 길을 막는 장애물이 되자 도보로 후퇴하는데 양옆 계곡 고지에 포진한 중공군의 집중 사격이 비오듯 쏟아지는 사이를 통과해야 했다.

당시 미군의 수모를 '인디안 태형' 혹은 '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렀는데, 서부개척시에 미군은 원주민들을 포로로 잡으면 2열로 도열시킨후 그 사이를 지나가면서 주먹이나 회초리, 몽둥이로 마구 때리는 '인디안 태형(Gauntlet)'을 가했다, 이 전투에서 미군이 10km의 협곡에서 중공군에게 당한 수모가 인디안 태형을 받은 것과 같다고 해서 같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 전투에서 제2사단은 인명 피해만 4천명이었고 중공군에 잡힌 포로가 3천명이었다. 중공군 개입후 제1, 제2차 전역에서 입은 미군 피해는 남북 전쟁이후 최대의 참패로 간주되고 있다.

현지 상황을 뒤늦게 안 맥아더는 11월 28일 현지 사령관인 8군의 워커 중장과 10군단 알몬드 소장을 자신이 있는 도쿄로 불러서 8군은 청천강 이남으로 후퇴하고, 10군단은 함흥 흥남선으로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서부전선 좌측에 배치된 미 제1군단(백선엽 장군의 한국군 1사단 포함)은 지형도 대체로 평탄하고 체계적으로 후퇴 작전을 실행해 거의 피해가 없었다. 12월1일 전 부대가 청천강 이남으로 집결하자, 워커 중장은 12월3일 38선까지 후퇴 명령을 내려서 사실상 북한 땅을 포기했다.

김태환회장은 "그로부터 20일간 120마일(190km)의 후퇴는 '미군 역사상 최장의 후퇴'라고 불리운다. 맥아더는 자신의 판단 착오로 당한 참담한 패배에 대해 책임을 지는 대신 미국 정부가 자신의 작전에 제약을 두어서 그렇게 당했다고 강변했다"고 지적했다

◊ '동양의 시저'로 불린 맥아더

 트루먼은 3차대전 발발을 우려한 영국수상 애틀리와 닷새간의 협의 끝에 12월29일 한국의 무력 통일 포기 방침을 정하고 이를 맥아더에 통보했다. 그러나 맥아더는 만주 폭격, 중국해안 봉쇄, 대만 국부군 한국전 참전허용, 심지어 원자탄 투하까지 언급하며 무력통일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워커 중장의 사고사 후에 새로 취임한 8군 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이 서울을 재탈환하고 전선이 거의 38도선까지 수복되었기 때문에 트루먼은 휴전제의를 공표할 의향으로 1951년 3월19일 각군 참모총장들과 애치슨 국무장관 및 마샬 국방장관으로 하여금 선언문 초안을 검토하게 하고 이를 맥아더에게 통보했다.

휴전을 패배이자 명예실추로 받아들인 맥아더는 3월24일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일본에서 성명을 발표하는데, 미국 대통령의 권위를 침해한 것은 물론, 중공에 대해서 사실상 백기를 들라는 최후 통첩이었다. 맥아더의 성명을 전해들은 트루먼은 책상을 치면서 "이것은 명백한 배신행위(Treachery)다" 라고 분노하며 맥아더 해임을 결심했다.

트루먼은 맥아더의 명목상 직속상관인 합참과 맥아더 사이에 오고간 서신들을 모아 파일을 만들어서, 애치슨 국무장관, 마샬 국방장관, 브래들리 합참의장, 해리만 특별고문을 백악관에 불러서 파일을 열람케 하고 협의한 결과 모두 맥아더 해임에 찬동했다.

자신의 해임 시기가 저울질되는 사이, 맥아더는 4월11일 제7함대를 중국 연안에 보내 무력시위를 벌이며 교전을 유도한 위험천만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김태환회장은 "트루먼이 맥아더를 막지 않았더라면, 한국전쟁이 세계대전으로 확대되고 한반도가 핵폭탄 투하로 핵오염 지대가 되어버릴 뻔했다. 당시 미국의 많은 인사들이 맥아더의 안하무인격 언행을 보고 마치 한 나라의 원수(a head of a state)인 것처럼 행동한다고 평했다"고 전했다.

군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까지 무시한 맥아더의 행동은 엘리트군인으로 성공가도를 달린 우월감과 높은 대중적 지지도가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웨스트포인트를 수석입학, 수석졸업한 최고의 엘리트였고 1차대전 당시 최연소 사단장, 1935년에 참모총장까지 지내는 등 군인으로서의 모든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미 칠순의 나이였고 트루먼보다 네 살이 위였다. 1945년 루즈벨트 대통령의 급서로 얼떨결에 부통령에서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트루먼은 그에겐 문약한 백면서생이었을 것이다.

맥아더는 역시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필리핀 총독을 지냈고 그 자신 필리핀 육군원수직을 받는 등 대를 이어 필리핀에서 막강한 세도를 누렸다. 일본 패망후엔 점령군 사령관으로 히로히토(裕仁) 일왕을 필요할 때 마다 오라고 부르는 등 '동양의 시저'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김태환회장은 "맥아더는 본국에 돌아올 때만 해도 맨해튼에서 카퍼레이드를 할만큼 영웅적 대접을 받았지만 의회 청문회에서 한국전쟁중 범한 문제들이 낱낱이 드러났다. 대통령까지 무시한 오만방자한 태도와 압록강으로 진군만 외치다가 소총도 제대로 없던 중공군에 일대 참패를 당하고도 구겨진 체면을 살리려고 확전을 주장했다. 원자탄으로 제3차대전을 일으킬 뻔 했고 자칫 삼천리 강토를 방사능 오염지대로 만들뻔한 장본인이었다. 그런데도 그를 유독 대한민국에서만 420 여년전 조선을 구하러 온 명장 이여송 이상으로 받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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