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승리 기자] "채권 거래를 둘러싼 검은 공생 관계가 드러났다"
서울남부지검은 수년간 불법 채권 거래(채권 파킹)에 관여하고, 이 과정에서 여행 경비를 받아 공짜 여행을 한 은행과 보험, 증권, 자산운용사 등 펀드매니저 103명과 증권사 12곳 임직원 45명을 적발했다고 지난달 17일 발표했다.
검찰은 이 가운데 1000만원 이상을 받아 챙긴 박모(45)씨 등 펀드매니저 10명, 김모(43)씨 등 증권사 임직원 10명은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수재 및 증재 혐의로 기소하고 나머지 99명은 금융감독원에 통보했다.
당시 검찰은 맥쿼리자산운용의 불법 채권 거래에 관여한 증권사 7곳 채권중개인 가운데 전(前) 아이엠투자증권과 키움증권, KTB투자증권, HMC투자증권, 현대증권, 신영증권, 동부증권 등 증권사 임직원 6명을 기소했다. 현대증권 임직원은 금액이 적고 수동적으로 가담했다는 이유로 기소유예됐다.
채권 파킹거래는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가 사들인 채권을 장부에 적지 않고 중개업자인 증권사에 잠시 맡기는 것을 말한다. 이 기간 동안 추가 이익 또는 추가손실이 발생한다. 투자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임의로 이뤄지기에 불법이다. 이 과정에서 해외 골프접대 및 향응, 금품수수도 오간다.
물론 채권 거래를 둘러싼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난 건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2일 서울남부지법은 소액채권 가격을 담합해 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증권사 6곳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KDB대우증권과 유안타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에 대해 각각 벌금 5000만원, 삼성증권에는 3000만원을 부과했다.
이들은 국민이 부동산을 매입할 때 의무적으로 사야 하는 국민주택채권 등에 대해서도 가격을 담합 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증권사 20곳을 적발해 지난 2012년 11월 정도가 심하다고 판단한 증권사 6곳을 고발 조치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채권 거래 과정에서 좀 더 나은 조건에서 거래하기 위해 합의를 하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결탁하는 경우가 왕왕 있어 왔다"며 "장외 시장에서 거래된다는 점에서 채권 거래 과정에서 부정한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불법 채권거래와 향응 등에 대해 집중 단속할 방침이다. 특히 파킹 거래에 대해서는 중점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한편 제도 개선도 진행할 예정이다.
금융감독원은 검찰에 적발돼 통보된 99명 가운데 펀드매니저 등 향응을 제공 받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을 거친 뒤 개인 차원의 행정 처분을 내릴 계획이다. 이들은 행위의 정도와 수준에 따라 신분상 조치인 주의, 견책, 감봉, 정직 등을 받게 된다.
향응을 제공한 쪽에 대해서는 소속 증권사에도 책임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고 조사가 조만간 진행된다. 금감원은 해당 증권사의 내부통제 등에 문제가 있다면 기관 차원에서도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고 전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검찰로부터 명단을 받은 상태로 조만간 서면 검사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며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윤리의식이 결여돼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로 당국의 단속 수위가 높아지며 기관투자자와의 거래에도 불이익이 발생할 가능성도 커졌다. 국민연금은 앞으로 위탁기관이나 증권사 선정 과정에 불공정 거래 정황이 나온 경우 거래제한 등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국민연금은 조사기관과 감독기관의 소명이 나오게 되면 내부적으로 사안의 경중, 귀책 당사자 등을 고려해 기관경고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사안이 있으면 한동안 거래를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며 "피해 액수가 기준이라기 보다는 사안을 계량화하기가 어려운 부분도 있어 기관경고나 조치 등을 내부 검토해 결정하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투자업계는 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한 자정 의지를 표명하는 결의대회를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