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승리 기자] #1.지난해 10월 이모씨는 방수 기능을 탑재한 소니 엑스페리아Z3를 샀다. 수심 1.5m에서 최대 30분을 버틸 수 있다는 광고를 본 그는 해당 스마트폰이 물에 빠져도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다. 구매 후 소니 애프터 서비스(A/S) 센터에서 방수 테스트를 거쳐 ‘정상’ 판정까지 받아 더욱 안심했다. 그런데 이씨는 최고수심이 1m가 되는 수영장에서 촬영하다 미끄러지면서 물속에 그만 스마트폰을 빠뜨리고 말았다. 단말기를 바로 건져냈지만, 화면이 나오지 않았다. 이에 소니 측에 무상 A/S를 요청했으나 기계 자체에는 결함이 없어 무상수리를 받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결국 그는 33만원을 들여 메인보드를 교체해야만 했다.
#2. 평소 방수폰 광고를 눈여겨봤던 황모씨는 지난해 8월, 방수되는 삼성 갤럭시S5를 구매했다. 잠깐 물로 씻는 것은 괜찮다는 판매자 말이 떠올라 S5 뒷면을 몇 초간 물로 씻었는데 화면 흔들림과 전원 꺼짐 현상이 발생, AS센터에 무상 A/S를 의뢰했다. 하지만 삼성 측은 생활방수만 가능하다며 수리비 34만5000원을 청구했다. 황씨는 “물로 씻어도 된다고 지상파 광고까지 해놓고 이제 와서 생활방수만 된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휴대폰 수리비를 환급해달라고 요구했다.
방수폰이 침수돼 고장 날 경우 자칫 수십만원에 달하는 수리비를 소비자들이 떠안을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침수 사고가 나면 스마트폰 액정표시장치(LCD) 또는 메인보드를 교체하거나 데이터를 복구해야 하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게는 10만원 대부터 많게는 50만원 대에 이른다. 차라리 휴대폰을 새로이 하나 장만하는 것이 낫다고 서비스 센터에서조차 권하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전자와 소니는 제품 불량에 의한 침수인 경우 휴대폰 개통일로부터 무상 보증 기간 1년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소비자가 무상 A/S를 받기는 쉽지 않다. 침수 고장이 제품불량 탓인지, 소비자 과실 때문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한 데다 사업자가 제품 불량이 아니라고 하면 소비자 과실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소니 엑스페리아Z3 사용자 최모씨는 “방수마개를 닫는 등 주의해서 스마트폰을 씻었는데, 물이 들어가 화면이 먹통이 됐다”며 “소니 측에서 마개 내부가 닳아서 침수된 것이라며 소비자 과실이라고 하더라. 마개를 닫고 씻었는데, 내부가 닳아 물이 샜는지 아닌지를 소비자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소니코리아 관계자는 “외부적인 충격이 있다고 보면 무상처리 기준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제품 불량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원칙적인 입장만 되풀이했다.
삼성전자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은 입장이다. 이 회사 홍보팀 관계자는 “방수마개가 열리면 스마트폰 화면에 표시된다. 제품 설명서에도 나와 있다”며 “제품에 문제가 있는지는 엔지니어가 판단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제품 불량 판정을 받은 소비자가 있느냐고 되묻자 “거기까지만 하자”며 답변을 피했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 및 소니 A/S 센터에서는 침수 제품 대부분에 대해 소비자 과실로 판정하는 분위기다. 강남구 소재 삼성디지털프라자 관계자는 “빗물이 튀거나 스마트폰을 물속에 빠뜨려서 금방 건져내는 등 침수로 인한 것(고장)은 거의 다 고객 과실로 간다”고 귀띔했다.
◇애매한 ‘소비자 과실’ 판정…광고책임은 없나?
‘방수’를 기대하고 샀지만, ‘방수’가 잘 안되는 데 대한 불만은 해외에서 더욱 감지된다.
구글에서 ‘삼성 갤럭시 방수 실패’(samsung galaxy waterproof fail)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상당수 해외 네티즌이 갤럭시S5를 물속에 넣거나 씻다가 먹통이 됐다고 주장하는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또 ‘소니 엑스페리아Z3 방수 실패’(sony xperia z3 waterproof fail)로 검색해보면 방수 실험을 하다 제품에 문제가 생겼다고 고발하는 영상을 볼 수 있다. 각각의 영상에는 “물에 넣어도 된다고 했지만, 생활방수 정도일 뿐이다”며 비판하는 댓글이 수없이 달렸다.
이에 따라 해외 IT 매체인 안드로이드피트, 판드로이드 등은 “갤럭시S5를 가능한 한 물에 넣지 마라” “방수 기능은 생각했던 만큼은 아니다”고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호주 국영방송 ABC(www.abc.net.au)는 지난해 10월15일자 기사에서 “소니 엑스페리아 Z3는 생각만큼 방수되지 않는다”며 “점점 더 많은 이용자가 이 제품을 물이 있는 환경에서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런 논쟁이 생긴 것은 방수폰 광고가 소비자들에게 미친 영향이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울러 광고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업체들은 높은 IP등급을 받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삼성 갤럭시S5의 방수등급은 IP67이며, 소니 엑스페리아Z3는 IP68이다. 이 등급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가 전자제품의 외부충격과 이물질에 대한 내구성을 제정한 것으로, 두 자리 숫자에서 앞은 방진, 뒤는 방수 등급을 나타낸다. 방진은 0~6, 방수는 0~8까지며 숫자가 높을수록 보호력이 강하다. IP67을 받은 전자제품은 수심 1m에서 최대 30분간, IP68은 수심 1.5m에서 최대 30분 잠수할 수 있다.
이를 증명하듯 삼성전자와 소니는 자사의 방수폰 홍보를 위해 물속에 제품을 떨어뜨리거나 사용하는 광고를 찍었다. 가령 소니가 유튜브에 올린 엑스페리아Z3 홍보 동영상에서는 잠수복을 입은 사람들이 물속에서 제품을 개봉하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국내 소비자들도 이런 광고를 보고 방수에 대한 기대치가 컸던 것으로 파악된다. 본지가 한국소비자보호원의 ‘방수 스마트폰 피해구제’ 신청 사례(14건)를 분석한 결과, 민원인 대부분이 물속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장면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의 스마트폰 품목 중 신청인이 피해구제 접수 시 작성하는 사건제목에 ‘방수’를 포함해 사건 검색함)
◇방수폰이 방수가 안 된다면…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국내외를 막론하고 방수폰을 물에서 사용할 용도로 생각했다면, 결국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서울과학기술대 오상근 방수기술연구센터 교수는 “온도․습도가 일정하게 관리되는 공장 혹은 실험실과 달리 일상생활에서는 그렇지 않다”며 “열과 습기에 의해 재질이 변형되면서 틈새가 벌어지면 물이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제품을 조립할 때 생성된 연결조인트가 몇 번 쓰다보면 닳아지거나 망가질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물이 샌다”고 설명했다.
이어 “방수마개가 닫혔는지를 스마트폰 센서가 감지한다 하더라도 마모되거나 변형이 왔는지는 알 수 없다”며 “마개를 닫았지만 물이 안 샌다는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사업자들이 방수 마개를 닫았는지 여부만 놓고 소비자 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의미다.
오 교수는 “소비자들은 제품을 개봉하자마자 막 사용을 한다. 따라서 방수테스트는 미사용 제품을 대상으로 하기보다, 며칠 동안 사용한 다음에 해야 한다. 강한 열변형이나 마모에도 방수가 되는지 내구성 평가를 해야 한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일정기간 사용한 것을 기준으로 해야 신뢰성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수폰 광고는 홍보를 위해 연출된 상황이지만, 일반인이 방수폰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방수 마개를 닫더라도 다른 요인으로 열리는 등 예상치 못한 변수가 존재하는 환경이란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아직까지는 방수폰을 물에 빠뜨리면 방수가 안 될까봐 걱정을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