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확산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위기대응능력이 도마에 올랐다. 보건당국의 초기 대응 실패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인식하고 국민 불안을 잠재우는데만 주력하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박 대통령은 뒤늦게 민관합동 점검회의를 주재하는 등 부랴부랴 총력대응에 나섰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사후약방문식 대처라는 비판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국가 역량의 총동원을 주문하며 메르스 사태와 관련한 첫 언급을 내놓은 것은 지난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다. 지난달 20일 국내에서 첫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고 난 뒤 12일 만으로 이미 확진환자는 18명까지 늘어난 상태였다.
다음날 청와대도 긴급 대책반을 꾸리고 24시간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2명이 사망하고 우려했던 3차 감염자까지 발생한 상황이어서 한발 늦은 대처였던 것이다.
박 대통령은 3일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메르스 대응 컨트롤타워 운영과 9개 부처가 참여하는 범정부 메르스 대책지원본부 구성을 결정했다.
첫 환자가 발생하고 14일이나 지나서야 메르스 사태의 컨트롤타워가 지정되고 범정부 총력 대응 체제가 갖춰진 셈이다. 국가적 재난 앞에서 대통령의 상황판단이 너무 늦고 대처도 안이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 사이 야당에서는 "대통령이 먼 산 보기를 계속하고 있다"며 청와대를 맹비난했고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하락은 지지율에 그대로 반영됐다.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34%로 지난주에 비해 6%포인트나 떨어졌다. 이는 4·29 재보선 직전 터진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 당시와 비슷한 수준이다.
청와대는 국가 지도자의 과잉 대응은 오히려 국민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정중동(靜中動)의 행보를 보인 것일 뿐 사태를 수수방관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은 가장 절실한 마음으로 이번 메르스 사태의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며 "메르스는 현 단계에서 가장 시급한 정책 과제로 현재 정책 우선순위 가운데 가장 위에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관광업 타격과 소비심리 위축 등 메르스 공포가 실물경기에 미치는 악영향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전면에 나설 경우 득(得)보다는 실(失)이 클 것으로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청와대는 지난 3일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회의에 참석한 민간 전문가들을 언론 브리핑에 내세웠다. 이들은 "현 상황에 대해 아직 무차별 지역사회 전파가 아니라 의료기관내 감염이므로 필요 이상으로 동요하거나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공통적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메르스로 인한 사망자와 감염자가 급증하면서 국민들이 사실상 공포에 휩싸여있는데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청와대의 위기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메르스 방역 뿐만 아니라 국민불안 방역에도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직접 나서서 전날 박원순 서울시장의 기자회견을 반박한 것을 두고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 시장은 전날 밤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35번째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병원 의사가 사실상 정부 당국의 방치 속에 이틀 동안 서울시내를 활보하며 수천명의 불특정 시민들과 접촉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자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예정에 없던 브리핑까지 열어 "불안감과 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박 시장의 발표 내용과 관련한 사실관계 일부를 반박했다.
이는 박 시장이 정부가 파악한 내용과 다른 사실을 잘못 알림으로써 국민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박 시장이 전면에 나선 모습이 정부의 늑장대응과 오버랩 되면서 메르스 방역에는 사실상 무신경했던 청와대가 국민 불안을 잠재우는데만 급급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