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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의 연대기' 손현주, "나를 더 괴롭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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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김한나 기자] 배우 손현주(50)는 '최창식'이 아니었다. 그는 기자에게 꾸벅하고 두 번 인사했다. 만나서 인사를 나눌 때, 영화를 잘 봤다고 말했을 때, 손현주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탁자에 코가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예의가 몸에 밴 몸짓은 자신의 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어떤 행동도 마다치 않는 '최창식'의 행동과는 달랐다.

영화 '악의 연대기'(감독 백운학) 속 위기의 남자 최창식의 눈은 항상 빨갛게 충혈돼 있다. 탄탄대로의 삶에 예기치 않게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 사건에 그의 내면은 폭발 일보 직전이다. 하지만 그는 내색할 수 없다. 실수로라도 입 밖으로 비밀을 누설했다가는 그의 삶은 무너진다. 이 무지막지한 스트레스에 그의 눈이 정상일 리 없다.

최창식이 아닌 손현주의 눈도 충혈돼 있었다. 대수롭지 않았다. 한 영화를 책임진 주연 배우가 짊어져야 하는 압박감을 보여줄 뿐이라고 봤다. 하지만 인터뷰가 중반을 넘어갈 때 즈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손현주는 여전히 최창식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이 연기한 최창식을 3인칭 '최창식'으로 부르기보다 '나' 혹은 '저'라고 부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단어 뒤에는 "외로웠다"는 말을 네 차례나 덧붙였다.

손현주는 캐릭터를 겪어내 왔다. 연기 잘하는 거로 유명한 배우였지만, 그의 격정이 대중의 눈에 들어온 건 드라마 '장밋빛 인생'(2005)을 할 때부터다. 내팽개쳤던 아내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돌아와 인생을 통째로 참회하는 남자가 바로 손현주였다. 아내와 딸을 잃고, 세상 밖으로 내몰린 드라마 '추적자'(2012)의 그 남자도 손현주였다. 그는 캐릭터를 연기한다기보다 캐릭터를 앓는다.

'악의 연대기'의 최창식을, 손현주는 받아들여 여전히 견뎌내고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쳐야 하는 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 만큼 굳은살이 생길 법도 하지만, 그는 "매번 똑같이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예민함을 "초심"이라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짚었다.

-"외로웠다"고 했다.

"맞다. 외로웠다. 이 영화 앞에 '추적 스릴러'라는 말이 붙지 않나. 여기에 한 단어를 더 추가해야 한다. '심리'다."

-'심리'라니?

"나(최창식)는 마음을 숨겨야 하지 않나. 철저하게 은폐해야 한다. 서로 감추기 위한 싸움, '감춰진 여백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라는 질문들, 그런 게 '심리'라는 말과 비슷하다."

-'외로웠다'라는 말을 구체적으로 풀어달라.

"에너지 소모가 심한 영화였다. 나(최창식)는 대화할 사람이 없다. 철저히 숨겨야 하니까. 아끼는 동료들이 있고, 따르는 후배들이 있지만 말을 못 한다. 속마음을 풀어낼 데가 없는 거다. 사건은 점점 커지는데, 항상 혼자였다. 그래서 외로웠고 연기하기 힘들었다."

-캐릭터가 외롭다는 말에서 더 나아가 당신이 연기할 때 외로웠다는 말로 들린다. 그 역할이 당신을 외롭게 했다는 게 맞는 말인가.

"당연히 그렇다. 난 단시간에 몰입해 들어가는 게 안 된다. 그 상태 그대로 몇 달을 지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그런 기분이 드는 것 같다. 다 끝나면 웃고 떠들 수 있지만, 촬영할 때는 아니다. 혹시나 내가 뭔가를 놓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관객은 그것을 분명히 눈치챈다. 관객이 눈치챌 것 같아서 감추려고 하면 또 티가 난다. 그런 거다. 어쨌든 캐릭터로 들어가야 하고, 그러면 나도 외로워진다."

-백운학 감독이 당신에게 연기 디렉션을 거의 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지 않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웃음) 다만 그런 건 있었다. 후반부 반전이 있는 장면을 촬영할수록 대본을 잘 보지 않았다. 물론 모든 연습을 마친 상태였고 어떤 내용인지도 알고 있었지만, 촬영할 때는 잘 안 봤다. 이 반전을 나 스스로 너무 잘 알면 내 연기가 관객에게 들킬 것 같았다. 잘 못 숨긴다고 해야 하나. 그런 기분이 있었다."

-연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힘든 작품을 왜 택한 건가. 시나리오의 어떤 부분이 좋았나.

"말이 되는 시나리오였다. 최창식도 과거에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이런 인물에 때가 묻은 거다. 조금씩. 삶의 때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인물이 어느 순간 자신에게 때가 묻을 줄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모두 최창식일 수 있다는 그런 의미인가.

"자신을 뒤돌아보게 하는 게 있다고 봤다. 우리 다 비슷하지 않나. 나(최창식)는 마지막까지 은폐하려고 한다. 김진규에게 같이 죽자고 하는 것도 결국 사건 은폐를 위한 게 아닌가. 그런 면에서 '최창식은 누구인가'라는 '퀘스천(의문)'이 많았다. 그 퀘스천을 정리하면서 연기했다."

-그렇다면 최창식이 어떤 사람인지 규정했나. 한 문장으로 말해줄 수 있나.

"규정하지는 않았다. 악행을 대수롭지 않게 했다는 것, 자연스럽게 때가 묻었다는 것 정도다. 어린 진규에게 '너네 아빠 나쁜 사람 아니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지 않나. 잘린 장면인데, 진규에게 돈을 쥐여주는 장면도 있었다. 거기서 이미 최창식은 완전히 변했다.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향해서 총을 쏘는 장면과 마지막 오열 장면에서 숨겨왔던 감정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그건 어떤 감정이었나.

"매우 복잡한 감정이다. 모든 걸 내려놓았다는 마음, 나의 잘못으로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는 것, 망가진 사람들, 누구에게 용서를 빌 수도 없고, 누구도 용서할 수 없는 상황들. 감독과 대화를 참 많이 했다. 난상토론 같은 걸 수도 없이 하면서 만든 장면들이다. 참 힘든 영화였다.(웃음)"

-최창식은 대사가 많지 않고, 표정 변화도 거의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당신은 최창식의 감정을 관객에게 어느 정도는 전달해야 한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다.

"그렇다. 표정에 얼마나 변화를 주느냐가 쉽지 않았다. 표가 나면서 표가 안 나는, 그런 것이다. 적극적으로 숨기고, 은폐하는 인물이다 보니 내 안에 가지고 있던 감정들이 많았다. 표현을 못 하는 감정, 안으로 삼키는 감정. 그런 현장이었다."

-최창식의 눈에는 묘한 불안감이 있다. 극 초반부, 아직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의 눈은 불안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그렇게 연기를 한 것인가.

"연기를 하다 보면 내가 모르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저런 표정을 지었구나' '내 눈이 저렇구나' 하는 거다. 뭐 그런 게 아닐까 한다. 연기에 모범답안이 있으면 얼마나 재미가 없나. 나는 모니터를 거의 하지 않는 배우다. 잘못된 게 있을 때만 모니터를 한다. 개인적으로 모니터를 하면 거기에 얽매이는 기분이다. 그러다보면 테이크는 늘어나고, 테이크가 늘어날수록 연기를 더 하고 싶다. 그렇게 덧칠하다 보면 연기가 거짓말이 된다. 난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손현주가 폼 잡으면 이상하지 않나. 혹시나 그렇게 나올까 봐 그렇다."

-어느 순간부터 당신의 연기가, 당신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점점 어두워지는 것 같다. 왜 그런가. 심경의 변화가 생겼나.

"(웃음)정말 그렇다. 사람이 때가 있고, 주기가 있다. 돌이켜보면, 난 바람난 남자를 연기하던 때가 있었고, 찌질한 사위를 연기하던 때가 있었다. 시기마다 했던 연기가 다르다. 그러다가 고(故) 최진실 씨와 연기한 '장밋빛 인생'에서 조금 변화가 생기고, '추적자'로 또 변화가 생겼다. 자연스럽게 변하는 게 아닌가 한다. 억지로 뭔가를 해야 한다고 해서 하는 건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당신은 최근 들어 연기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를 일부러 고르는 거 같기도 하다.

"그런 면이 있다. '추적자' 때는 정말 막막했다. 비빌 언덕이 없다는 게 뭔지 알았다. 항상 마음이 우울했고 거기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왜 그렇게 자신을 괴롭히나. 그런 데서 쾌감을 느끼나.

"(웃음)어떻게 알았나. 맞다. 드라마에서 가벼운 것도 하고, 코미디도 하고 그런 거 좋다. 그런데 어떤 때는 나를 괴롭히고 싶다. 몸을, 마음을 극도로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연극을 할 때 그랬다. 연극에는 번역극도 많고 시대극도 많지 않나.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라고 치자. 그러면 남의 정서를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거다. 극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연구를 하고. 그거 되게 아프다. 가벼운 연기라고 해서 힘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 더 나를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차기작도 당신 자신을 괴롭히는 작품인가.

"음….(웃음) 조금 그렇다. 이번 작품까지만 하고 좀 편한 거로 해보고 싶다."

-정말 쉬지 않고 작업한다. 연기가 직업인 사람에게 조금 이상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꾸준히 작업하는 동력이 뭔가. 경제적인 걸 빼고 배우로서의 동력이 궁금하다.

"글쎄다. 아무리 그래도 난 가정과 가족을 위해 연기한다. 직장인이 아니다뿐이지 다 똑같은 것 같다. 성격상 1년에 한 작품, 2년에 한 작품 그런 식으로 일을 못 하기도 한다. 덧붙이자면 긴장감 때문에 계속 연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에 내가 할 작품은 뭘까' '어떤 시나리오가 날 긴장시킬까' 그런 긴장감으로 하는 거다."

-당신을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 할 수 있나. 다들 당신의 연기를 칭찬하지 않나.

"(웃음)정답은 대본과 시나리오에 있는 것 아닌가."

-제일 어려운 대답이다.

"(잠시 생각) 많이 봐야 한다. 사람을 관찰하는 것 만큼 공부가 되는 일이 없다. 신인 배우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또 다른 이야기는 자신이 롤모델로 삼는 배우의 작품을 보고 깊이 연구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연기하는지. 결국 관찰이다. 또 다른 노하우는 다음에 또 인터뷰하게 되면 알려드리겠다.(웃음)"

-왜 숨기나. 요즘 스릴러를 많이 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건가.

"(웃음)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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