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한나 기자] "44년, 45년 됐죠. 드라마 '장희빈'에서 제가 장희빈을 연기했고, 박근형 선생이 숙종을 연기했어요. 그때 제가 스물 세 살이었어요. 자료도 안 남아있을 거예요. 그때 이후로 다시 만났으니까 과장해서 말하면 역사적인 만남이죠.(웃음) 숙종이 장희빈을 사랑했잖아요. 이번에도 성칠이 금님을 사랑하고요. 반세기 만에 만난 사랑이죠.(웃음)"
배우 윤여정(68)은 "우리가 아직 살아있어서 다시 만날 수 있었죠"라고 농담을 하며 영화 '장수상회'에서 박근형(75)과 함께 연기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이 한 작품에서 연기 호흡을 맞춘 건 이번이 네 번째. 윤여정이 언급한 1971년 MBC 일일드라마 '장희빈', 2000년 KBS 드라마 '꼭지', 2005년 KBS 단막극 '유행가가 되리'에서다. '꼭지'에서는 원수 같은 부부였고, '유행가가 되리'에서는 권태에 빠진 중년 부부였으니 사랑이라는 감정을 두 배우가 공유하는 건 윤여정의 말처럼 정말 44년 만이다.
두 배우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영화 '장수상회'는 '태극기 휘날리며'(2004) '쉬리'(1999) 등을 연출하며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사에 굵직한 자취를 남긴 강제규(53)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남녀의 사랑을 다루는 로맨틱 코미디다. 까칠한 성격의 장수상회 직원 성칠(박근형)이 그가 사는 동네로 이사 온 소녀 감성의 꽃집 여인 금님(윤여정)과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4년 만에 장편영화 연출작을 내놓은 강제규 감독은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고, 보고 나면 모두 손을 잡고 극장을 나설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했습니다"고 말했다.
강 감독은 영화를 가슴 설레는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의 마음 속에 과거 젊은 시절에 느꼈던 감정이 피어나는 순간의 떨림으로 만들었다.
박근형은 시나리오를 읽고 "고등학교 시절 한 여인을 보고 설레는 마음을 가졌던 기억이 떠올라 '이 작품은 반드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영화 출연 이유를 밝혔다.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영화와 드라마에서 애정물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장수상회'는 느낌이 좀 달랐어요. 십 대부터 칠십 대까지의 사랑이 모두 담긴 영화였거든요. 그리고 칠십대인 제가 그 사랑이야기의 중심에 선다는 게 보람이 있더라고요."
평소 솔직한 발언을 많이 해온 윤여정은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너무 오글거려서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극 후반부에 나오는 반전에 매력을 느꼈고, 또 때가 잘 맞아 합류하게 됐어요"라고 덧붙였다.
'장수상회'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 역시 연예계의 거목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배우의 연기 앙상블이다. 박근형과 윤여정은 영화에서 사랑의 희로애락을 연기에 녹였다.
박근형은 "어릴 때부터 함께 연기해온 윤여정이 이제 나와 이런 연기를 한다는 점이 참 신기했습니다"며 "'윤여정도 나이를 먹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했다.
윤여정은 '장희빈'을 찍을 때의 일화를 소개하며 "그때는 박근형 선생을 참 미워했죠"라며 웃었다. 선배인 박근형이 윤여정의 연기가 맘에 들지 않아 야단을 쳤던 것. 박근형은 "44년 전에 내가 야단을 쳤던 여배우가 이제는 내 손을 감싸주는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는 게 설레는 경험이었습니다"고 윤여정의 말을 받았다.
'장수상회'에는 박근형, 윤여정 두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장수마트의 사장 장수 역을 맡은 조진웅과 금님의 딸 민정으로 등장하는 한지민,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는 여자 '박양'의 황우슬혜, 순정파 고등학생을 연기하는 그룹 '엑소'의 찬열도 힘을 모았다.
조진웅은 "박근형 선생님에게 지지 않으려는 마음을 갖고 연기했어요"라면서도 "두 선배의 역사와 함께해 감격스러운 현장이었죠"라고 짚었다.
한지민은 평소 존경하는 선배로 '윤여정 선생님'을 꼽았다. "두 분의 연기 호흡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게 있는 현장이었습니다"라고 기억했다.
영화는 4월9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