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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 "'자유의 언덕'은 첫키스처럼 새로운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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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조종림 기자] 영화배우 문소리(40)를 만난 곳은 삼청동 게스트 하우스의 조용한 방이었다. 한 쪽 창밖으로 고즈넉한 한옥이 내려다보이고 다른 쪽 창 밖으론 골목길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주변은 적막해 얕은 숨소리까지 증폭되면서 분위기가 야릇했다. 문소리는 "뭔가 색다르죠?"라고 물었다. 그렇다. 이런 곳에선 좀체로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영화 '자유의 언덕'(감독 홍상수)의 남자주인공 '모리'(카세 료)는 삼청동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며칠을 묵는다. 깡마른 몸에 헐렁한 티셔츠와 바지를 걸치고 '시간'이라는 제목의 책을 들고, 신발을 끌며 '권'(서영화)을 기다린다. 영화는 시간을 뒤죽박죽 섞어놓아 뭔가 벌어질 듯하면서도 시종일관 고요하고 쓸쓸하고 따뜻하다.

문소리를 만난 곳은 영화 속 '모리'의 게스트 하우스와 다른 곳이지만 분위기는 고스란히 이어졌다. 그 때문에 인터뷰장소로 이곳을 골랐을 것이다.

밀도높은 영화인 '자유의 언덕'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여럿 있다. 그래도 가장 마음을 흔드는 신을 꼽으라면 '영선'(문소리)의 집 화장실에 갇힌 '모리'가 멍하게 창밖을 응시하는 장면이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객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슬프고, 외롭고, 쓸쓸하면서도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이렇게 스크린에 배어 흘러넘치는 정서가 영화 속 인물들을 하나 하나 휘감고 있다.

문소리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눈을 마주치다가도 잠시 고개를 숙이곤 했다. 말없이 한쪽을 올려다보다 자세를 고쳐 앉아 말을 이어갔다. 그는 충분히 생각하고 천천히 말했다. "촬영 내내 감정의 진폭이 이렇게 컸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담담하지만 쓸쓸한 목소리. 문소리는 분명 '영선'을 연기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모습에서 '모리'가 보였다. 1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생각이 굳어졌다. 문소리는, 분명 '여자 모리'가 돼 있었다.

"슬프더라고요. 근데 그게 마음이 아픈 게 아니에요. 따뜻한데 슬펐어요.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쓸쓸해하고. 뭐 이런 것에 대해 다시 생각했어요. 만남과 헤어짐,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시간이라는 인과관계 때문에 어떤 논리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렇더라고요. 논리를 만들려는 의지를 빼고 순간만 보면 어떻게 보일지 생각했어요. 순간순간은 참 아름다운 것인데…. 괜히 눈물이 나더라고요."

문소리는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며 "'자유의 언덕'은 홍상수 영화 중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하하하'를 찍을 때는 그냥 신나서 촬영했는데 이번에는 느낌이 너무도 달랐다"는 것이다. "촬영 환경은 차분했는데 감정에 동요가 있었어요."

촬영 중간에 문소리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느낌이 이상했다"고 한다. 문소리는 "바이오 리듬의 문제라고 간단하게 정리"하고 촬영했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고나니 "그때의 감정이 컨디션의 문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에 푹 빠져서 연기했다. 오래간만에 느낀 감정이었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뭔가를 얻어가는 것 같지는 않아요. 사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죠.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영화와 연기, 제 개인적인 것까지 정말 많은 생각을 했어요. 흔치 않은 경험이죠. 사람은 욕심이 있잖아요. 물론 카세(카세 료)의 영향도 있었어요. 홍상수의 세계에 푹 빠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연기하더라고요. (그 때문에)저도 자연스럽게 연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거죠. 대화가 잘 통하지는 않지만 알겠더라고요. 작품에 대한 헌신, 배우와 스태프와 감독 간의 교감. 이런 경험은 정말 흔치 않아요. 이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어요."

문소리는 솔직하게 말했다. "늘 연기에 집중하려고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때도 있다. 함께 연기하는 배우와 호흡이 잘 맞지 않기도 하고 작품 자체와 어우러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의 언덕'은 더욱 소중하다."

홍상수 감독은 '자유의 언덕'을 시간 순서대로 촬영했다. 그리고 편집 과정에서 시간을 뒤섞었다. 규칙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평론가나 관객은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려 한다. 하지만 문소리는 간단하게 정리했다. "아름답다."

홍상수 감독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인과관계를 없앴을 때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 지켜보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소리는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집어냈다. 그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언급했다.

영선이 모리의 방에서 나온다. 모리는 밖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모리는 술이 덜 깬 영선을 보고 "아름답다(You look so nice)"고 말한다. 영선은 무슨 소리냐며 잠시 모리와 담배를 피우다 갑자기 집으로 떠난다.

"저도 술 마시고 그런 적이 있어요. 다음날이면 죽고 싶죠.(웃음) 그런데 딱 그 장면만 떼내어 보니까 예쁜 거예요. 그게 시간의 룰 안에 우리가 갇혀있어서 힘든 것일지도 모르잖아요. '전날 저 남자와 같이 술을 마셨다. 그리고 내가 그 남자 방에서 잤다.' 이런 시간이요. 그런데 그걸 빼고 그때의 그 장면만 보면 예쁜거죠. 그 순간만의 진심이 있거든요."

연극을 하던 문소리는 '박하사탕'(1999) '오아시스'(2002) '바람난 가족'(2003)을 거치며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가 됐다. 단 4년만에 인생이 바뀔만큼 그의 연기는 강렬했다. '박하사탕'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여전히 가장 연기력 좋은 여배우로 꼽힌다. 그런 그도 지난15년의 시간을 '자유의 언덕'처럼 뒤섞어 보고 싶을까. 어떻게 섞고 싶을까. 그러면 그의 작품이 더 '아름다워'질까.

"정말 흥미로운 질문이네요.(잠시 생각) 두 가지 작품이 생각나요. '박하사탕'하고 '오아시스'요. '박하사탕'은 딱 그때 해야 해요. 그 순간에만 할 수 있는 연기였던 것 같아요. 지금 해도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요. '오아시스'는 조금 아쉬워요. 좀 더 철들고 했으면 이창동 감독님을 도와드릴 수 있었을 거예요. 그땐 힘들었어요. 궁지에 몰리면 마구 물어버리는 개처럼 연기했어요.(웃음) 그리고 드라마는 더 어릴 때 했어야 했던 것 같아요. "

자연스럽게 드라마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는 2007년 '태왕사신기'에서 드라마 연기를 처음 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김종학 PD의 작품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고 그때를 다시 생각해보니 '꼭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문소리는 "그 당시에는 드라마 촬영 환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촬영과 '태왕사신기' 촬영이 겹치기도 했다. 연기력 논란도 있었다.

"후회가 되죠. 어떤 상황이 닥쳤든 그것을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만드는 건 결국 제 몫이잖아요. 그리고 그 기운이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죠. '자유의 언덕'을 보세요. 모리와 주변 사람들은 서로에게 힘을 주잖아요. 다들 힘들지만요. 서로에게 진심으로 좋은 말을 해주잖아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땐 내가 힘들었다고 말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자유의 언덕'처럼 시간을 뒤섞으면 어떤 행동을 하는 저만 남겠죠. 앞뒤는 다 잘리고요. 그럴 때도 아름다웠으면 좋겠는데…(웃음)"

그러고 보니 '자유의 언덕'의 모리도 후회한다. 그리고 상처를 입는다. 꿈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지만 먼 미래를 생각하기도 한다. '자유의 언덕'은 문소리에게 시간을 생각하게 했고, 과거를 돌아보게 했고, 연기와 영화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그에게 "'자유의 언덕'은 남다르다."

그는 "이제는 나의 현재를 감사하게 여기고 싶다"며 "'나의 연기'를 강조하기 보다는 작품 속에서 '그저 잘 쓰이는' 존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소리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기 보다 오히려 명확하지 않은 배우가 되는 게 목표라면 목표"라고 말을 이었다.

"'자유의 언덕'은 첫 키스를 떠올리게 해요. 저한테 첫 키스는 실제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로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이 영화는 제게 처음 연기할 때의 그 감정을 고스란히 되살려줬어요. 두 번째 첫 키스 같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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