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상미 기자] 길환영(60) KBS 사장은 19일 “지금은 사퇴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길 사장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동 KBS 본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리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 사퇴를 이야기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길 사장은 “위기의 상황에 처해 있는 KBS 사태를 수습하고 우리가 기본적으로 안고 있는 극심한 경영 위기, 공기업 대상은 아니지만 공기업에 준하는 개혁을 해 나가야 할 중차대한 일들이 많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경영, 방송, 보도 등 모든 측면에서 다시 한 번 오래 쌓여온 적폐를 해소하고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온 직원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윤창중 사건을 톱기사로 올리지 말라고 했다’는 등 보도 개입설에 대해서는 “허위날조다. 보도지시를 그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며 “PD 출신 사장이다 보니 보도의 메커니즘 등을 소상하게 잘 알지 못해 뉴스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정도”라고 답했다.
길 사장은 또 '청와대의 KBS 보도 외압 논란'은 “보도와 관련해 청와대의 연락을 받은 적은 없다”고 일축했다.
KBS노동조합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 등 KBS 양대 노조를 비롯해 다수의 직원들이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PD 출신 사장에 대한 기자 사회의 집단적인 반발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지금 나오고 있는 의견들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직원이 많다. 다수의 직종, 직원들, 그 분들은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길 사장은 이날 오후 5시30분 사내방송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담화문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취소했다.
앞서 길 사장에 대한 퇴진 요구는 지난 9일 ‘세월호’ 침몰 참사 보도·발언 논란 끝에 9일 자리에서 물러난 김 시곤(54) 전 보도국장의 폭로에서 비롯됐다. 당시 김 전 국장은 “길환영 사장이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길 사장은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 “윤창중 사건을 톱으로 올리지 말라고 했다”라고 추가 폭로했다.
이후 해명요구 수준이던 사내 반발은 길 사장이 세월호 침몰 참사 희생자 유가족에게 사과하면서 수위가 올라갔다. 지난 8일 희생자 유가족들이 KBS를 항의 방문했을 때가 아닌, 유가족들이 청와대 정무수석과 만난 뒤인 9일 오후 사과가 이뤄졌다는 점을 이유로 “KBS가 청와대 부속기관임을 자임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공석이던 보도국장 직에 백운기(56) 전 시사제작국장을 선임한 것도 논란을 불렀다. KBS 양대 노조는 “백 신임 보도국장이 과거 ‘추적60분-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 편을 방송보류 지시한 바 있고 김인규 KBS 전 사장의 ‘낙하산 논란’당시 김 사장을 적극적으로 비호했다"며 백 신임 보도국장 인사 철회와 길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사내 각 기수·직군들이 잇따라 성명을 발표했고 보도본부장, 보도본부 부장 전원이 길 사장의 퇴진을 주장하며 보직에서 물러났다. KBS본부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길 사장은 “뉴스가 멈추는 상황을 감수하겠다”는 발언을 했고 이는 직원들을 비롯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KBS노조·KBS본부 등 KBS 양대 노조는 길 사장을 인정하지 않으며 출근 저지투쟁에 나섰다. KBS본부가 실시한 사장 신임투표는 '불신임' 97.9%(1081표)라는 결과를 냈다.
KBS노동조합은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길 사장이 ‘공영방송 사유화’ ‘제작비 유용’ 등의 불법행위를 저질러 왔다며 길 사장을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KBS기자협회는 한시적 뉴스 제작 거부에 들어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