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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원한 어머니 배우 황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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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닉네임이 어머니야. 신성일은 지금도 엄마라고 불러” 필자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찻집 ‘살레’에서 황정순을 만났을 때 들려준 첫 마디였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었다. 금테안경 너머로 인자한 눈빛이 마냥 웃고 있었다. 하얀 머리가 그녀의 경륜을 말해주고 있었다.
연기자 황정순은 한국영화의 역사이자 산증인이다. 해방 전부터 리얼리즘 연극으로 연기력을 닦아온 황정순은 한국인의 정서, 인자하고 선량한 한국의 어머니상을 화면으로 보여주었다.
400여 편 어머니 역할
오직 자식들을 위해서 불철주야 손을 쉬지 않으셨던 황정순의 모친 박순녀(朴順女)여사. 황정순의 연기모델은 바로 어머니 박여사였다고 고백한다.
‘어느 여대생의 고백’ (1985년 신상옥 감독, 최은희, 황정순 출연)에서는 한 남자(황남분)에게 농락당한 뒤 아이를 낳아 혼자 기르는 시골 어머니 역할, ‘국경선’(1964년 정진우 감독, 최무룡, 황정순 출연)에서는 남과 북으로 갈라선 두 아들을 둔 비극적인 한국의 어머니의 표상을,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1959년 신상옥 감독, 김진규, 황정순 출연)에서는 이승만의 어머니 역할을, ‘맹진사댁 경사’(1962년 이용민 감독, 김승호, 황정순 출연)에서는 주인공 이쁜이의 유모역할을, ‘울려고 내가 왔던가’(1960년 김화랑 감독, 김진규, 황정순 출연)에서는 1.4후퇴 때 아들하고 헤어져 아들을 찾으며 혼자 사는 어머니 역할을, ‘마부’ (1961년 강대진 감독, 김승호, 황정순 출연)에서는 마부 김승호의 집 가정부로 일하다가 신영균, 엄앵란의 어머니가 되는 역할을, ‘서울의 지붕 밑’(1961년 이형표 감독, 김승호, 황정순 출연)에서는 동네에서 술집하는 주모로서 홀아비 김승호와 허장강, 김희갑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서민여인 역할을, ‘육체의 고백’(1964년 조긍하 감독, 황정순, 태현실 출연)에서는 부산 초량의 양색씨 우두머리 밤의 대통령 역할을, ‘김약국의 딸들’(1963년 유현목 감독, 김동원, 황정순 출연) 에서는 희생적인 어머니 역할을, ‘화산댁’(1968년 장일호 감독, 황정순, 신성일 출연)에서는 신식 며느리에게 구박받는 시골 어머니 역할을, ‘팔도강산’(1967년 배석인 감독, 김희갑, 황정순 출연)에서는 여덟 남매의 인자한 어머니 역할 등 무려 400여 편의 출연작 중 거의 전부라 할 만치 한국의 어머니의 표상으로 연기했다.
4~5편 겹치기 출연 ‘탱크부대’
세계적인 대배우라도 인생에 20편, 30편 출연이 고작이지만, 우리의 영화풍토가 한동안 영화를 양산(한때는 한해에 300편을 제작)하였는데 그때가 한국영화의 전성기라 하겠지만, 사실상 오락이 없는(TV 드라마가 성행하지 않았던 시절)세대, 저질영화를 마구잡이 찍어낸 시대의 기현상이라고 하겠다.
그럴 때 ‘탱크부대’란 별명을 가진 황정순은 출연영화에 한번도 펑크를 낸 적이 없이 무려 4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는 것은 세계 영화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물론 부끄러운 일면도 있으나 자신의 연기에 몰입, 연거푸 밤을 새우며 한때는 4~5편 겹치기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만치 황정순은 연기에 있어서는 열정적이었고, 다행히 부군이 의사였기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황정순은 1925년 7월1일,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하중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황봉옥(黃奉玉)은 배를 타고 외국에 드나들던 선원이었는데 황정순이 세 살 때 돌아가셨다. 황정순은 5남 5녀의 막내였다. 10남매나 됐지만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나고 겨우 오빠 둘만 살아있었다. 그중 둘째 오빠는 일제 때 징병에 끌려가 지금까지 소식이 없고, 큰 오빠도 6.25동란 중 자동차 사고로 타계했다. 어머니 박순녀 여사는 홀로 남은 딸 황정순을 끔찍이 사랑했다.
‘타잔’ 영화 보고 배우 결심
황정순이 국민 학교 4학년 때 생전 처음 ‘타잔’ 영화를 봤다. 스크린에서 활약하는 배우가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이것이 배우가 된 큰 동기였다.
그때부터 공부는 뒤로하고 영화구경만 다녔다. 학교에 갈 생각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머니 용돈을 타내 영화관으로 달려갈 궁리를 하는 날이 많았다.
마침내 황정순은 배우가 되기로 결심, 인천 박문고녀(博文高女)재학 중이던 16세 때 낯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 오면 곧 배우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림도 없었다. 당시로선 꽤 컸던 2백원도 한달이 지나니 바닥이 났다.
집에선 어머니와 큰 오빠가 사색이 돼서 찾아왔지만 황정순은 “꼭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서울엔 큰 아버지가 살고 계셨지만 그 집도 가난해 더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일인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서대문 동양극장에 드나들었다. 다행히 그곳에서 연극배우모집 광고가 났다. 황정순은 당장 응모했고 합격이 되었다. 세상이 온통 그녀의 것이 된 양 감격했다.
집을 나온 지 7개월만이었다. 극단 ‘동양극장’ 소속 여배우가 된 그녀는 곧 ‘산송장’이란 연극에 출연, 첫 무대를 밟았다. 별로 대사도 없는 엑스트라였다.
황정순은 꽤 예쁜 얼굴에다가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데뷔 6개월 만에 상당히 비중 있는 역을 맡을 수 있었다. 그녀는 ‘동양극장’ ‘호화선’ ‘성군(星君)’ 등의 무대를 오가며 ‘대지의 어머니’, ‘무화과’, ‘무지개’ 등 수많은 연극에 출연하면서 연기의 기본을 익혔다.

의사 남편의 철저한 건강관리
1944년 그녀는 처음으로 영화에 처녀출연 했는데 ‘너와 나’라는 작품으로 아주 작은 단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당시 조선군 보도부에서 제작한 것으로 일본군벌의 국책 영화였는데, 감독은 한국인 허영(許英)이었고, 문예봉, 이향란(李香蘭)등이 출연했다. 특이할 것은 이 영화의 촬영은 유명한 이용민이었는데, 나중에 감독이 된 이였다.
황정순은 일제와 해방, 6.25를 겪으면서도 꾸준히 이해랑, 김동원 등과 연극에 몰두해 연기의 폭을 넓혀갔고 후일 한국영화에서 그 유명한 어머니의 상을 일구어냈다.
1956년 이강천 감독의 ‘백치 아다다’에 단역을 출연한 것이 의외로 호평을 받아 계속해서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
그녀는 6.25때 대구에 피난가서 공군 군예대소속으로 위문 공연을 했을 때 남편 이영복(李榮復)을 만났다. 피부과 의사였던 이영복은 이해랑, 김동원, 김신재, 최은희, 그리고 황정순을 자기 집에 초청했다. 비교적 여유가 있었던 이영복은 연예인들을 도와줬고 자연스럽게 황정순과 데이트를 했다. 알고 봤더니 그는 부인과 이혼상태였고, 그의 부인은 월북해서 한국에 없었다. 이영복은 유달리 황정순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녀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에게 동정심이 생겼다. 이것이 발전하여 자연스럽게 존경과 애정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로부터 9개월 뒤 피난지 대구에서 연예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
이영복은 평생 황정순의 뒷바라지를 했다. 의사였기에 겹치기 출연에 지친 부인을 돌봤다. 그는 한국 영화가 황금기에 접어들어 ‘국경선’(정진우 감독), ‘무정의 40계단’(정진우 감독), ‘길은 멀어도’(홍성기 감독), ‘별아 내 가슴에’(홍성기 감독), ‘청춘극장’(홍성기 감독), ‘팔도강산’(배석인 감독), ‘속 팔도강산’(양종해 감독), ‘우리의 팔도강산’(장일호 감독), ‘돌아온 팔도강산’(정소영 감독) 등을 찍을 때 의사일도 그만두고 부인의 건강체크, 스케쥴을 관리할 정도로 영화를 사랑했다.
“카메라 앞에서 불가사의한 힘 솟아”
영화계에서 황정순과 닥터 리 커플의 금슬은 소문이 나있었다. 그러기에 그렇게 스캔들이 난무하는 영화계에서 모범주부로, 모범어머니의 위치를 당당히 지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사다마였던가. 1997년 황정순이 TV 드라마 ‘부부’를 찍을 때 부군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청천벽력이었다. 물론 혈압이 높아서 늘 조심했는데도 수가 짧았음인가 허무하게 그녀의 곁을 떠난 것이다.
그녀는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그 충격으로 몇 달 동안 밥도 먹지 못하고 누워만 지냈다.
그러나 남편의 영이 꿈에 나타나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다.
“당신에게는 연기가 있잖아? 당신 다시 태어난다 해도 연기를 하겠다고 했지? 세상에 남는 훌륭한 작품을 남기고 나한테 와요.”
그녀는 가까스로 일어났다. ‘과부’, ‘부초’, ‘슬픔이 파도를 넘을 때’, ‘장마’, ‘겨울로 가는 마차’, ‘피막’, ‘가고파’, ‘소금장수’ 등에 출연, 마침내 어머니역은 황정순이 아니면 안된다(?)는 전통이 생겼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가 400편이나 된다는 것은 그녀의 열정도 열정이지만 그녀의 건강을 챙겨줬던 그녀의 남편 이영복은 평소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은 무대나 카메라 앞에 서면 불가사의한 힘이 샘솟듯 한답니다. 타고난 배우에요.”
2007년에 접어들면서 ‘한국영화 복지재단’(이사장 정진우)에서 주관하는 위대한 영화인으로 명예의 전당에 그녀 데드마스크가 올려진다. 현재 위대한 영화인 신상옥과 위대한 영화감독 유현목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있다.
금년 들어 전 영화인의 투표로 ‘영원한 어머니상, 여배우 황정순’이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됐다. 그녀가 탱크처럼 연기에 몰두하고, 다시 태어나도 여배우가 되겠다고 자부하는 연기인생이 전 영화인에게 깊이 각인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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