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저기 새까맣게 탄 자리 한가운데 꽃이 펴있습니다. 산불이 난 곳에도 식물이 자랄 수 있습니까?"
"나도 잘 모르겠네. 김종원 군, 이런 쪽에 관심이 많으면 '식물사회학'이라는 학문을 연구해 보는 게 어떤가."
"식물사회학?…"
지난해 말 무려 1200쪽에 달하는 '한국식물생태보감' 1권을 펴낸 계명대학교 생물학과 김종원(54·식물사회학자) 교수. 그는 80년대 초 경북대학교 생물학과 학부생 시절 산불 피해를 입은 곳으로 야외실습을 나간 자리에서 이렇게 식물사회학에 눈을 뜨게 됐다.
그때만 해도 식물사회학은 생소한 학문이었다. 역사가 길지 않아 국내에서 이 학문을 다룬 학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식물사회학은 생태학 중에서도 식물과 환경의 상호관계, 식물의 사회성을 연구하는 전문 분야다.
지난 24일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길에 산다고 해서 '길경이'라는 오랜 이름을 가진 '질경이'는 처음부터 밟히며 살고 싶어 했던 게 아니라 다른 식물과의 경쟁을 피해 최적의 서식환경을 찾다 보니 길에 살게 된 것"이라며 "이런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 식물사회학"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인 최초' 만주와 연해주 식생 탐사
경북 영양 출신인 김 교수는 어릴 적부터 산과 들을 벗 삼아 자랐다. 자연스레 식물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식물사회의 겉과 속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국내 연구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했던 까닭에 가까운 일본으로의 유학을 택했다.
당시 요코하마국립대학교에는 이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미야와키 아키라(86) 교수가 있었다. 김 교수는 1983년부터 이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은 뒤 1987년 식물사회학의 본고장인 중부유럽으로 건너가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때가 1992년이었다.
유학 생활 10년 동안 어려움도 많았다. 학비는 대부분 장학금으로 해결했지만 문제는 생활비였다. 학부생 시절 만나 결혼한 아내가 현지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뒷바라지를 했다. 김 교수는 "지금도 가끔 아내는 '내가 당신을 먹여 살렸다'고 말하곤 한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값진 소득도 있었다. 90년대 초 한국인 중에서는 처음으로 중국 만주와 러시아(구소련) 연해주 일대의 식생을 탐사한 것이다. 당시 두 나라 모두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기 전이라 민간인 신분으로는 입국은 물론이고 탐사는 더더욱 힘든 상황이었다.
당시 김 교수가 만주와 연해주 땅을 밟을 수 있었던 데는 오스트리아에 살던 한국인 교포 독지가와 동료 학자들의 도움이 컸다. 우연히 김 교수의 연구 계획을 듣게 된 독지가가 무려 3000만원이라는 큰돈을 연구비로 건넸던 것이다.
김 교수는 동료 학자들에게 중국과 러시아에 들어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이들을 통해 두 나라의 입국 허가를 받았다. 그는 곧바로 아내와 함께 90일간의 일정으로 만주와 연해주 일대 식생 탐사 길에 올랐다.
◇'KGB에 억류·미행…공안에 카메라, 필름 뺏기기까지'
이 과정에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러시아행 열차에서 KGB에 잡혀 장시간 억류되기도 했고 탐사 일정 내내 이들에게 미행을 당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백두산 탐사를 마친 뒤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다가 공안에 붙잡혀 카메라와 필름을 뺏기기도 했다.
"열차를 타고 폴란드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들어가는 데 KGB 요원들이 아내의 여권을 보더니 '위조 여권'이라면서 붙잡아 놓고 한동안 놓아주질 않는 겁니다. 간신히 풀려나긴 했지만 그때는 정말 '잘못하면 연해주 땅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고진감래(苦盡甘來)'였을까. 김 교수는 연해주의 신갈나무 숲에서 동북아 최북단의 진달래꽃 분포지를 최초로 발견하는 큰 성과를 거뒀다. 진달래꽃은 우리나라의 온대림 식생을 대표하는 식물이다. 일본에는 대마도에만 분포하며 중국에서는 한반도 근처에서만 볼 수 있다.
그는 "진달래꽃은 한반도가 분포 중심지이고 한국인의 문화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민족 식물"이라며 "서식처 조건에 따라 잎의 질감이나 꽃 색감에 미묘한 차이가 있어 한반도 최남단의 진달래꽃과 동북아 최북단 연해주의 진달래꽃의 모양이 조금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처럼 한반도의 식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만주와 연해주의 식생까지 연구해야 한다. 이곳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안 다녀 본 곳이 거의 없다"며 "지금 생각하면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위험천만한 일이었지만 30년에 걸친 식물사회학 연구의 근간이 됐다"고 말했다.
◇"참나무가 '잡목' 이라니…"
1992년 귀국한 김 교수는 국내 식생관리 실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당시만 해도 국가기관에서조차 "참나무'를 '잡목'으로 분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토리 열매가 나는 상수리나무를 비롯한 참나무 종류는 한반도 전역에 가장 많이 분포돼 있는 식물이다.
정체불명의 이름 등 식물에 대한 잘못된 정보도 많았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정보에 오류가 생기거나 평가가 왜곡된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며느리밑씻개'다. 우리말로 '사광이아재비'라는 이름을 가진 이 풀은 줄기에 날카로운 가시가 나 있는 식물이다.
김 교수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이 식물의 이름은 일본명에서 잘못 유래됐다"며 "일제의 잔재에서 비롯된 것인 줄도 모르고 무작정 베끼는 바람에 식물의 이름이 뒤죽박죽되고 심지어 사전에조차 잘못 기재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잘못된 부분을 하나하나 고쳐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밤낮으로 동의보감과 한약구급방을 비롯한 고문헌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관련 서적을 샅샅이 뒤졌다. 희랍어와 라틴어, 자전 등 각종 사전이 김 교수의 책상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런 김 교수의 노력으로 그동안 우리나라의 식물에 대해 잘못 알려졌던 정보들이 점차 하나씩 바로잡혀 갔다. '잡목' 취급을 받던 참나무는 90년대 중반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며느리밑씻개'도 본래의 제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도감'이 아닌 '보(寶)감'…"한국 식생사 집대성"
김 교수는 지난해 말 '한국식물생태보감' 1권을 펴냈다. 도감이 아닌 보배 보(寶)자가 들어간 '보감'이다. 단순히 식물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만 담은 기존의 식물도감과는 달리 그간의 연구를 통해 식물이 갖고 있는 생명성과 생태성을 기록한 책이기 때문이다.
무려 1200쪽에 달하는 이 책에는 집 안팎과 논밭, 제방, 마을 뒷산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 760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식물 이름의 유래와 서식환경 등에 대해 해설을 곁들여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 우리 민족이 식물과 부대끼며 살아온 이야기도 함께 들려준다.
이게 끝이 아니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김 교수는 10년에 걸쳐 모두 10권의 한국식물생태보감을 완성할 계획이다. 그는 "한국의 식생사를 집대성하고자 한다"며 "식물을 매개로 한 언어와 역사, 문화, 환경 논의의 새로운 장을 만드는 데 이바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식물사회 속에 깊숙이 녹아 있는 식물과 인간의 오랜 관계를 찾다 보면 그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식물사회학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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