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 영재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카이스트(KAIST). 그곳에서 4명의 학생이 연쇄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온 국민이 충격 속에 빠져들었다. 비통한 소식이 잇따르자 학계와 정치권을 비롯한 관련 기관단체들은 일제히 학생들의 자살 배경으로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그가 무리하게 추진해왔던 대학 개혁이 학생들을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었다는 질타가 쏟아지고 있는 것. ‘기업식 성과주의’, ‘무한경쟁’, ‘징벌제도’ 등은 모두 서남표 총장이 추진해온 대학 개혁에 따라붙었던 수식어들이다. 학생들이 받았을 스트레스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이같은 서남표 총장의 대학 개혁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상징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경쟁에서 이기는 승자만이 살아남는 승자독식 구도를 지향하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서남표식 개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서남표 총장의 대학 개혁 몰락은 곧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몰락으로 직결되기도 한다. 이번 사태는 나아가 국정 전반에 만연한 시장 만능주의적 사고에까지 경종을 울리게 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서남표 물러나지 못하는 이유? ‘서남표 뒤에 MB 있다’
서남표 총장이 추진한 대학 개혁의 핵심정책 중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차등적 등록금제도’와 ‘전과목 영어 수업’이다. 이같은 정책들은 학생들이 잇따라 자살하게 된 배경으로 꼽히기도 한다. 서 총장은 지난 2006년 카이스트 총장으로 취임한 이후 대학 개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차등적 등록금제도’를 실시했다. 성적이 평점 3.0(4.3 만점)에 미달하는 학생들에게 미달한 학점만큼 등록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0.01학점당 등록금은 무려 6만3천원씩 올라가도록 했다. 성적이 미달된 첫 학기엔 학생이 내야 하는 수업료의 절반을, 다음 학기에 또 미달하면 4분의 3, 세 번 연속 미달 때는 전액을 납부하도록 한 것이다. 이전까지 학생들이 등록금 전액을 국비 장학금으로 면제받았던 것과 비교해서는 등록금 제도가 확 달라진 것으로 징벌적 성격을 갖고 있는 그야말로 잔인함 그 자체의 제도였던 셈이다.
중요한 것은 카이스트 학생들 대부분이 학업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책 속에 파묻혀 사는 이들의 삶은 이미 다양한 매스컴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죽도록 공부를 했음에도 결과가 못 미친다면 벌을 받아야 하는 현실 앞에서 학생들의 자괴감은 증폭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전과목 영어 수업’은 학생들 스스로 언어적 정체성을 잃게 만들었다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서남표식 개혁이 기업식 성과주의로 비판 받았던 대표적 이유가 바로 이같은 ‘전과목 영어 수업’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같이 잔인한 내용의 대학 개혁 정책을 이명박 정부는 크게 환영했다. 서남표 총장이 추진한 정책들에 대해서는 대학 개혁의 상징으로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절대 신임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서 총장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4월 신성장동력기획단장에 임명됐고, 같은 해 5월에는 이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2월엔 이 대통령이 카이스트 졸업식에 참석해 서 총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습까지 보였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2009년부터 정부 권고로 각 대학이 대폭 확대 실시했던 입학사정관제도 서 총장이 대통령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한데 따른 것이다. 서 총장은 교과부를 통하지 않고도 대통령 및 청와대와 직접 독대하고 교감을 나눠왔던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그만큼 이 대통령으로부터 강한 신임을 받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서남표 총장의 뒤에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결국 서 총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로서도 이번 카이스트 사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겉으로는 청와대와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내심 우려하는 기색이 읽힌다. 한 언론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서 총장이 추진해온 정책들이 이명박 정부 교육 개혁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고, 좌파 진영에서는 이를 비판해왔다”며 “교육과학기술부 관료들 또한 지난해 서총장 연임에 반대하는 기류가 있었을 정도로 개혁 정책에 거부감을 보여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쉽게 서 총장이 물러나기는 어렵다”며 “자리를 유지하면서 해법을 찾아가는 게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남표 사퇴는 곧 이명박 정부의 대학 교육 개혁의 철퇴를 의미하게 될 수 있기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치권 한 목소리 집중 질타, “사퇴하라”
하지만 여야를 아우른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서 총장의 사퇴 압박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 12일 열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전체회의는 청문회를 방불케 할 만큼 서 총장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집중 질타가 쏟아졌다. 대부분 의원들이 차등적 등록금제도와 전과목 영어 수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 박보환 의원은 서 총장에게 “책임을 지라”고 요구했고,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징벌적 수업료는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고스톱 방식의 점당 수업료”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의 경우 “학생들이 학교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고 해서 총장이 학생들을 고소해 1년 뒤에야 취하했다”며 “학교 측에서 교수협의회와 소통도 전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서 총장의 학내 소통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서 총장이 일련의 사태에 책임지고 용퇴를 하면서 새롭게 카이스트 2기의 출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강하게 사퇴를 압박했고,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 역시 “서 총장의 정책이 옳았다 하더라도 이 시점에서는 사퇴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여야가 한 목소리로 서 총장의 사퇴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서 총장은 학생들의 죽음을 언급하면서 감정이 북받치는 듯 울먹이기도 했지만 사퇴 요구에 대해선 “교수 학생들과 함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특히 이날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눈물까지 보였던 서 총장은 전체회의가 산회되고 난 후 돌아가는 길에 관계자들과 웃으며 ‘선방했다’는 발언을 했다는 목격담이 나와 빈축을 사기도 했다. ‘눈물 쇼’를 벌였다는 비난까지 덧붙여지며 서 총장에 대한 국민적 공분은 폭발 수준에 다다른 모양새다. 서남표 총장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지 않겠냐는 관측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