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에 표류한 북한 주민 31명의 처리 문제를 놓고 정부가 고심에 빠졌다.
월남한 북한 주민들을 조사하고 있는 군과 정보당국은 집단 탈북시도 보다 단순 표류로 인한 월남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이중 일부가 귀순 의사를 밝힐 수도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31명 모두가 북한으로의 귀환 의사를 밝힐 경우 북한에 송환을 통보하고 인도적 절차에 따라 돌려보내면 되지만 일부 또는 모두가 귀순 의사를 밝힌다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우선 김정은 후계구도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내부 단속에 힘쓰고 있는 북한이 이번 사건으로 인한 파장을 최소화하고자 ‘단순표류자를 남측에서 억류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 가능성이 있다.
사건의 본질이 단순표류더라도 월남한 주민이 북한으로의 귀환을 거부한다면 집단 탈북시도 또는 북한 당국의 내부단속 시스템 균열 사례로 대내외에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후계체제 성공 열쇠 중 하나는 인민생활향상이다. 북한은 경제난 극복 노력 캠페인인 ‘150일 전투’, ‘100일 전투’ 등을 김정은이 주도했다고 선전하며 경제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는데 주력해왔다.
이런 가운데 집단 월남자들이 의도한 탈북이든 단순 표류든 생활고를 이유로 북한으로의 귀환 대신 남한행을 결정한다면 후계체제에도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따라서 북한이 이번 사건을 남한 정부가 주도한 ‘기획 탈북’이라고 주장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집단 월남이 예민한 정치적 문제로 받아들여져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월남 사실을 공식 확인하지 않는 등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7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 주민들의 집단 월남 사실을 확인해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말하기 곤란하다”고 말을 아꼈다.
특히 정부는 당장 8일 남북군사실무회담을 앞두고 천안함·연평도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지는 상황에서 북한에 작은 빌미라도 주지 않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그 동안 탈북 행렬이 계속 늘어왔다는 점, 31명의 대규모 집단 월남이기는 하지만 이전에도 20여명 가량의 집단 월남은 있어왔다는 점을 들어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2008년 2월에는 고무보트를 타고 서해상 덕적도 해상에서 표류하던 북한 주민 22명이 우리측 관계당국에 포착돼 조사를 받고 당일 북송됐다. 2000년 이후 해상을 통한 월남 사례 중 최대규모였지만 정부는 이들이 조류에 휩쓸려 남측으로 떠내려온 것으로 판단하고 판문점을 통해 돌려보냈다.
2002년 8월에는 북한 주민 3가족 21명이 어선을 타고 내려와 모두 귀순 의사를 밝혔지만 우려했던 것 만큼 남북관계가 크게 악화되진 않았다.
한편 이번에 월남한 31명의 북한 주민 중 남자는 11명, 여성은 20명으로 파악됐으며 대부분 작업반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