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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재협상에서 실종된 시민의 통상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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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 변호사

“점수를 매긴다면 ‘수’라고 생각한다.”
2007년 4월 한미FTA가 공식 타결됐을 때 김종훈 당시 수석대표의 말이다. 미국은 광우병 파동 이후 수입이 금지돼왔던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적 수입 재개 등 네 가지를 협상의 선결과제로 내걸었다. 협상은 불과 10개월만에 끝났다. 미 의회의 TPA(통상촉진권한)가 허가한 시한에 맞추기 위해 2007년 4월까지 협상을 끝내야만 했다. 이번 재협상도 마찬가지로 미국의 시간표에 따라서였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기존 협정문에서 ‘일점 일획도 고치지 않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럼에도 한미FTA는 그간 두 차례의 재협상이 있었다.

2007년 5월 미 의회와 행정부는 신통상정책에 합의했다. 민주당이 새롭게 지배하게 된 미 의회는 노동, 환경 등과 관련된 국제적 기준의 준수를 요구했다. 그 해 6월 29일 한미간 제1차 재협상이 타결됐다. 당시 참여정부는 끝까지 이를 ‘재협상’이 아닌 ‘추가협의’라 불렀다. 우리는 선비준을 준비해놓고 미국을 압박할 수 있다고 믿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2010년 들어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와 사실상 연계되는 재협상으로 가닥이 잡혔다. 형식은 주고받기였지만, 이득의 균형추는 철저히 무너졌다. 얼마 전 12월 4일의 일이다. 더 이상 한미FTA는 자유롭지(free)도 공정하지(fair)도 않다. 미 의회조사국은 한미FTA 첫 협상을 일주일 앞둔 2006년 5월 25일, 미 의회에 “한미FTA는 관세장벽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비관세장벽, 곧 한국의 법과 제도와 관행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보고했다. 이것이 현실이다.

헌법과 법률 위에 있는 한미FTA 

2006년 한미FTA 협상을 시작할 때 양국 사이에 ‘이 부분은 서로 논의하지 말자’고 약속한 사항이 있다. 미국은 네 가지를 요구했다. TPA 지침에 어긋나는 부분 불가, 개성공단은 정치적 사안이므로 불가, 전문직 비자쿼터는 의회의 권한사항이므로 불가, 주정부의 권한과 관련된 부분은 침해 불가가 그것이다. 우리는 딱 하나를 요구했다. 바로 ‘쌀’이었다. 하지만 이는 대미협상용이 아닌 국내협상용이었다. 2014년부터 쌀시장을 사실상 전면 개방하기로 이미 약속돼 있기 때문이다. 수출지상주의, 한미동맹 근본주의, 통상관료 밀행주의는 오래전부터의 일이었다. 당시에도 한국 협상단은 ‘무역구제’ 조치야말로 한미FTA의 성패를 결정할 핵심목표라고 홍보했다. 반덤핑조항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하지만 미국은 협상 초기단계에서 곧바로 이는 법 개정사항이라며 거부했다. 협상단은 이 사실을 시민에게 정직하게 알리지 않았다.

“오스트레일리아가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1만 500개의 전문직 비자를 얻었는데 우리는 경제규모 등으로 볼 때 그것보다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7년 6월 30일 한미FTA 합의문 서명식을 마친 뒤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역시 김종훈 당시 수석대표가 했던 말이다. 이 사안은 FTA 협상과는 별개로 반드시 받아내겠다며 큰소리친 지 3년 반이 지났다. 미국은 의회 권한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안된다고 했던 의제였다. 이번 제2차 재협상에서는 한국업체의 미국내 지사 파견 근로자에 대한 비자(L-1) 유효기간을 늘리기로 했다. 지사를 새로 만들 경우 현행 1년에서 5년으로, 기존 지사 근무시는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난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양보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으며 상호이익을 꾀했다”는 것인데, 초라한 결과에 대한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은 한동안 헌법 위에 국가보안법이 버티고 있는 나라였다. 이제는 헌법의 사회적 기본권과 경제질서조항 위에 한미FTA가 똬리를 틀었다. 미 헌법에는 경제질서조항이 없다. 우리는 헌법 제119조 제2항이 있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정당화한다. 미국은 케인즈주의에 입각한 정부정책에 대해서도 사회주의 논쟁을 몰고다니는 나라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정부개입에 대해 극도의 이념논쟁이 벌어졌던 나라다. 그런데 한미FTA는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를 받아들였다. 정부의 경제정책이나 공공정책이 무력화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조항이다. 이 조항으로 한미FTA가 헌법질서를 변환시킨다. 이처럼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일으킬 곤란함을 잘 알고 있는 같은 영미법 계열의 국가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과의 FTA에서 농업부문을 포기하면서까지 미국의 이 제도 도입 요구를 거부했다. 얼마전 타결된 한EU FTA협상에서도 서로의 동의하에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아예 협상목록에서 제외키로 합의한 바 있다.

미국에서 한미FTA는 단순한 ‘행정협정’에 불과하다. “미합중국의 법률에 일치하지 않는 한미FTA의 어떠한 조항도, 어떠한 법 적용도, 어떤 미국인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도 무효다.” 미 의회가 각 나라와 FTA를 맺을 때마다 제정하는 FTA이행법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내용이다. 반면 한미FTA는 우리에게 법률과 동등한 효력을 갖는 조약이다. 한미FTA로 바뀌어야 하는 대상 법률이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만 30여 개다. 헌법조차 흔들리는데 하물며 법률이야. 이렇듯 한미FTA는 단순한 무역투자협정이 아니다.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다. 도리어 일종의 ‘황금 구속복’이다. 그럼에도 한미FTA에 대한 찬반논쟁은 ‘쇄국이냐 개방이냐', ‘친미냐 반미냐’의 낙인놀이로 흐르고 있다. 공론과 대의제와 공화주의적 전통이 취약한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시민의 통상주권을 보장해야 한다

대통령이 결정하고 통상교섭본부가 협상하면 국회나 시민은 무조건 따라야 하는가. 경제에 좋은 일이고 수출이 늘어날 수 있다면 국민은 무조건 동의해야 하는가. 한미전략동맹을 위해 긍정적 측면이 있다면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가. 제2차 재협상이 끝난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음 네 가지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행정부만이 나라와 이익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한미FTA도 미 의회의 사실상 거부에 따라 지금까지 비준되지 못하고 재협상을 거쳐야 했다. 통상주권도 시민의 것이다. 행정부와 국회는 통상절차법 등의 제정을 통해 시민주권과 대의제 원리를 구체화하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낼 의무가 있다. 통상과 관련해 현재 시행중인 법률보다 조약이 더 많은 나라가 한국이다.

둘째, 오늘날 무역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적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를 확장해가려는 ‘공정무역’의 개념이 있다. 국제적·국내적 공정성, 사회적 공정성까지 포괄하는 의미다. 그렇다면 국회의 비준심사는 더욱 철저해져야 한다. 특히 한미FTA는 ‘최혜국 대우조항’을 통해 한EU FTA 등 다른 FTA와 그대로 영향을 주고받도록 돼 있는 특별한 구조다. 그렇다면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한미FTA의 본협상과 이번 재협상이 함께 심사되어야 한다. 또한 한EU FTA와도 동시에 심사해 영향을 평가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함은 물론이다.

셋째, 우리나라는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은 국가로 분류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경상 국민소득 대비 수출입 비중이 지난 2005년 64.6%에서 2008년 92.3%를 기록했다. 외풍에 그만큼 민감한 경제구조란 뜻이다. 역대 어느 정부도 통상국가를 국가모델로 내걸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중상주의적 통상국가 모델에 대한 심각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넷째, 한미동맹은 전략적 이해와 비전을 같이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전략동맹이다. 과연 전략동맹의 범주와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외교안보적 이해관계와 경제적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려는 한미FTA는 지금 한미동맹의 본질을 묻고 있다. 이는 곧 세계 속의 한반도라는 정체성의 문제이다. 우리는 한국이 어떤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일까.

반드시 남기고 싶은 질문 한가지. 시민과 국회의 심사 결과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우리는 재협상을 요구해서는 안되는 걸까. 만일 우리가 비준을 거부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한미동맹에 치명적 배반이 되는 걸까.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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