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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책과사람】 권위주의자들은 왜, 어떻게 과거를 조작하는가 <역사를 지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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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식민지화…역사 조작 메커니즘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역사’를 둘러싼 싸움은 더 이상 학술 논쟁에 머물지 않는다. 이 책은 권위주의가 어떤 논리와 제도를 통해 과거를 통제하고, 그로 인해 시민들이 현재의 선택 능력을 잃어가는지를 해부하는 현실적인 정치철학 및 역사의 보고서다.

 

권위주의 정치가 어떻게 과거를 재단하나

 

저자는 헝가리, 폴란드, 미국, 인도, 러시아 등의 사례를 통해 권위주의 정치가 어떻게 과거를 재단하고, 교육과 기억 제도를 재설계하는지를 분석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단지 특정 국가의 일탈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잠식하는 하나의 ‘국제적 패턴’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권위주의 정권은 역사를 ‘경쟁 서사’로 인식한다.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는 역사 이해는 시민에게 국가 이야기의 공동 저자로서의 역할을 요구하고, 이는 단일한 권력 서사와 충돌한다. 그래서 교과서·교육과정·공적 기념의 층위를 조정해 복수의 관점을 하나의 신화로 환원한다. 이 책은 그 핵심 메커니즘을 삭제·왜곡·대체라는 ‘지우기’의 기술로 묶어 교육과 문화 전반에서 작동하는 권위주의의 전략을 해부한다.

 

바로 지금 미국 정치를 보면 이 ‘역사 지우기’ 문제는 더 긴급하다. 트럼프 대통령을 축으로 공화당 일각에서 이른바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이니셔티브와 비판적 인종 이론(CRT)의 축소 및 금지, ‘애국 교육’ 프레임의 재가동, 학교·도서관 장서 제한 같은 조치가 확산하며 역사·시민교육의 언어와 기준을 바꾸려는 시도가 거세졌다.

 

이는 한 지역 또는 한 국가의 논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적으로 ‘과거의 영광-타락한 현재-가상의 적의 발명’이라는 동일한 문법이 정책→제도→일상으로 스며들게 되는 흐름으로 나타난다. 이 책은 이러한 흐름을 개별 사건의 나열이 아닌 그 작동 원리로 보여주기 때문에, 파편화된 뉴스를 일정한 패턴으로 읽고 다음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게 한다.

 

교육의 장악, 파시즘의 정치 언어

 

권위주의는 학교를 최전선으로 삼는다. 교실 내에서의 간섭과 도서 검열, ‘정치적 중립’과 ‘애국 교육’ 같은 구호 아래 교육과정을 평면화하고, 구조적 차별을 설명하는 개념 언어를 제거한다. 대학 역시 낙인과 예산 압박, 규제의 표적이 된다.

 

인도에서는 국립교육연구훈련위원회(NCERT)가 널리 사용되는 교과서를 수정해 무굴 제국의 비중을 축소했다. 대학가에서는 반무슬림법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를 ‘반국가적’으로 낙인찍으며 경찰력이 개입한 사례가 반복되어, 고등교육의 자치와 비판적 토론 공간이 직접 압박을 받았다.

 

권위주의는 ‘영광의 과거’와 ‘타락한 현재’를 대비시키고, 그 간극의 책임을 외부자에게 전가한다.

 

이 과정에서 법과 질서를 과잉 동원하고, 성·문화·이민에 대한 불안을 정치 연료로 사용한다. 그러면서 말이 행동을 정당화하고, 행동이 다시 말을 사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순환인 ‘반사실의 정상화’가 작동한다. 러시아 교과서는 우크라이나인이 독립적 역사·정체성·언어를 지니지 않는다고 서술한다. 헝가리는 국가 핵심 교육과정을 재편해 ‘불편한 과거’를 흐리고 단일한 민족 신화를 강화했다. 미국·러시아·인도 등에서도 비판적 관점을 금지하는 제도 변화가 가속화되고, 투표법 강화 같은 정치 공학과 결합했다. 이 책의 결론은 ‘역사 되찾기’를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적극적 정치실천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다양한 자료를 읽고 가르칠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을 지키는 일, 교사의 전문성과 학문의 자율성을 보호하는 일, 지역 아카이브·박물관·도서관·시민사회의 연대를 통해 공공 기억의 기반을 넓히는 일, 그리고 교육 과정과 전시, 공적 서사가 어떤 기준으로 구성되는지를 끊임없이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일 등이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인프라’임을 보여준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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