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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노래하는 아버지가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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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아버지’라는 단어는 복합적 이미지를 안고 있다. 포근하고 아늑한 사랑의 표상과 동시에 마초적 권위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직장에서 밀려나고 가정에서 소외된 ‘고개숙인 남성’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런데 ‘아버지’와 ‘합창’이 만난다면? 이 둘의 생소한 조화는 아버지 문화의 새로운 희망을 보여준다. ‘노래하는 아버지’는 권위가 없어도 행복하다. 그리고 사회는 부성의 세례를 받는다. ‘서울아버지합창단’(이하 ‘아버지합창단’)의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이 마법 같은 화음을 확인하기 위해 서초 문화예술회관의 연습실을 찾았다.

  아빠가 무대에… 아이들이 열광한다
저녁 7시부터 직장의 일과를 마치고 하나 둘 몰려오기 시작한 아버지들은 20~70대까지 연령도 옷차림도 가지각색이다. 이상한 것은 그 누구도 피로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 “노래는 피로회복제”라고 회원들이 입을 모았다. 한서대 음대 교수이기도 한 고성진 지휘자의 듣기 좋은 선창이 울려 퍼지자 아버지들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묵직한 남성적 음색 사이사이에 즐거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1998년 6월 IMF 한파 속에서 만들어진 ‘아버지합창단’은 처음에 20여명으로 시작해 현재 174명에 이르는 대규모 합창단으로 발전했다. 1주일에 한 번 연습하고 1년에 10여번의 공연을 가지면서 노래는 아버지들의 인생을 변화시켰다. 입단 5년차의 김진만(41 공무원) 씨는 “나이와 직업, 종교를 초월해 하나 된다는데 감동을 느낀다”며 이 감동이 삶에 끼친 변화를 예찬했다. “합창을 하면서 일상에서도 조화와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됐다”는 것.
이철환(48 한의학박사) 씨는 “스트레스를 완전히 풀어준다. 여기 사람들 얼굴을 봐라 모두 편안한 인상이지 않나”며 웃었다. 김갑재(52 청소년카운셀러) 씨는 “서로 감싸주고 챙겨주는 분위기가 삶 전체에 큰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변하니까 가족이 변했다. 유홍서 부회장은 합창단 활동이 가족의 화합은 물론, 교육적 효과 면에서도 놀라운 파장을 불러온다고 강조했다. “아빠가 무대에 서 있으니까 아이들이 열광한다. 클래식도 자연스럽게 가까이하게 돼 자녀들의 정서도 풍요로워진다.” 합창단에 반해서 아들이나 형제의 손을 이끌고 오는 회원도 꽤 많다니 그야말로 행복은 가족들에게 직접 전파되고 있는 셈이다.

  헌신하고 베푸는 ‘세상의 아버지’
‘아버지합창단’의 화음은 그 어떤 엘리트 합창단에도 없는 미학을 담고 있다.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을 가족에서 사회로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이들의 합창은 곧 이웃사랑의 메시지다. 교도소 양로원 비무장지대 오지 등을 방문해 문화적 혜택을 누리기 힘든 이들에게 음악을 선사한다. 공연이 끝나면 노인들의 목욕을 시켜주는 등 몸을 아끼지 않는 봉사를 실천한다. ‘아버지합창단’의 ‘아버지’는 사랑을 나눠주고 헌신하는 ‘세상의 아버지’를 지칭하는 것이다. 추동천 회장은 “70대 회원이 60대 할아버지를 정성스럽게 씻겨주는 모습을 보면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버지합창단’은 연습시간에는 열심히 노래 부르고 간식시간에는 김밥을 나눠먹는다. 김밥을 먹으며 새로 데려온 친구를 소개하기도 하고 발성이 안 되는 부분에 대해 서로 조언도 구한다. 일주일 동안 생일이 들어있는 회원을 위한 생일잔치도 펼친다. 초등학교 교실의 음악 시간, 쉬는 시간들이 나이들도 다양한 아버지들의 모임에서 재연된다. ‘술 마시는 아버지’상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천진한 풍경이다. 이렇게 ‘아버지합창단’은 가부장제 질서가 무너진 시점에 새로운 아버지의 대안을 모범적으로, 어쩌면 혁명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버지합창단’은 순수아마추어 합창단인 만큼 오디션이 없다. 노래와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만이 입단 조건이다. 그렇다고 실력을 만만히 볼게 아니다. ‘아버지합창단’에게 자신이 작곡한 ‘귀향아리랑’ 초연을 맡긴 바 있는 중국 국립 연변가무단의 허동규 지휘자는 “1주일에 1번씩 연습하는 아마추어 합창단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수준이 높다”며, “지속적인 교류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연변가무단의 정식 공연에 ‘아버지합창단’이 초청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아마추어의 순수함이 더 아름답다”
회원들은 고성진 지휘자의 열정적인 가르침에 모든 공을 돌렸다. 사실 연습 광경을 조금만 지켜봐도 쉽고 재미있는 설명법에 빨려들지 않을 수 없다. 추 회장은 “교수님이 선창을 일일이 해 주는데 녹음해 뒀다가 반복해서 들으며 연습하는 열혈 회원들이 많다”며 ‘아버지합창단’이 연습량에 비해 높은 음악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비결을 귀띔했다.
아마추어를 지도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고 지휘자는 “전문가가 아니니 발성이 힘들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자유스럽고, 빈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그것이 더 음악을 사랑하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렇게 동참함으로 클래식의 저변확대에 기여할 수 있고, 또 많은 사람들과 형제처럼 지내며 음악을 함께 느낄 수 있어 내가 더 행복하다”며 미소 지었다.
진정한 합창이란 이런 것이다. 모든 것을 초월해 음악 하나로 함께하고, 노래로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것. 추 회장은 “창단 초기에 한 인터뷰에서 다른 지역에도 ‘아버지합창단’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정말로 여러 지역에 만들어졌다. 전국의 아버지 합창단들이 협연하고 교류해서 지역까지 초월하는 화음을 냈으면 좋겠다”며, “한 목소리로 전국의 아버지 문화를 함께 바꿔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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