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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용서’ 화두 남기고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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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용서’라는 숙제를 이 시대에 남기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났다.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이자 역사에 다시없을 족적을 남긴 만큼이나 우리에게 남기고간 과제 또한 컸다. 동서화합, 국민통합, 지역주의 타파, 남과북의 평화 등 그가 남긴 수많은 과제가 후대에게 남겨졌지만 이 가운데 뿌리 깊은 동서냉전과 지역갈등의 극복이라는 메시지는 그의 죽음으로 인해 십분 부각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기간 우리 사회의 화두는 ‘화해’였고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평가하는데 여야가 따로 없었다. ‘화해와 용서’라는 고인의 유지를 계승해야한다는 목소리가 각계각층에서 쏟아졌고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분열상을 반복했던 우리 사회에 전례없는 화합의 분위기가 넘실댔다.
김 전 대통령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동지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연세세브란스병원을 찾아 문병과 문상을 통해 화해를 이야기했다. 이같은 분위기가 이어진 탓인지 다행히 정치권도 김 전 대통령이 생전 이루려던 국민통합과 화해의 메시지에 수긍하고 반응하는 모습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향후 정국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되고 있고 벌써부터 정치권에서는 ‘화해’라는 물결이 요동치고 있다.
우선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씻기 힘들 것 같은 악연도, 얼키고 설킨 애증도 눈 녹듯 사라졌다. 등지고 갈라섰던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함께 손을 잡고 지역 갈등 해소에 앞장 설 것도 다짐했으며 김 전 대통령의 국장이 엄수된 지난 23일에도 여야는 평생을 의회 민주주의와 남북관계 발전에 헌신해 온 고인의 뜻을 계승하겠다며 한 목소리를 냈다.
고인의 영결식은 사상 처음으로 의회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에서 치러졌고, 특히 국장 기간 내내 여와 야, 진보와 보수, 그리고 남과 북이 한 목소리로 고인을 애도하면서 평소 김 전 대통령이 역설해 온 국민 통합의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다.
현 정권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워왔던 정세균 민주당 대표도 “김 대통령께서 생전에 다 이루시지 못한 유업은 저희 민주당이 꼭 받들어서 실천하겠다”면서 “철학적으로는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 정책적으로는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평화협력의 3대 위기를 민주당이 앞장서서 극복해라, 정치적으로는 모든 민주개혁 진영이 통합해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24일 오전 여의도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잘 받드는 것이 민주당의 책무”라며 이같이 밝혔다.
정 대표는 이어 “저희가 정치를 하고 국정 파트너로 일하는데 있어서는 용서와 화해라는 가르침을 줬다”고 강조하고 “민주당은 대통령님의 유지를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잘 받들어 편히 영면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또 “이 시점에서 제1야당의 책무가 뭔가를 깊이 고민하고 성찰하겠다”면서 “그래서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드는 것과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이 뭔지를 성찰해 실천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이날 이 대통령이 화합과 통합이 시대정신임을 강조한 데 대해 “용산참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서 사랑과 통합을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며 조속한 사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잃어버린 10년’이라든지 김대중, 노무현 10년의 역사를 부정하는 말이 대통령 이하 각 부처 장관과 이하 단체에서 나오지 않기를 기대한다”며 정치보복적 수사 금지와 인사쇄신 등의 후속조치를 요구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김 대통령은 대결의 남북관계를 대화와 타협의 남북관계를 이끈 대통령이라고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한나라당의 태도변화다. 김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색체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가 생전에 이루고자 했던 화해와 통합이라는 진의는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나라당은 김 전 대통령 국장이 차분하게 마무리됐다고 평가하면서 ‘화해와 통합’ ‘남북화해’라는 DJ의 뜻을 받들자고 한목소리를 냈다.
박희태 대표는 이날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삶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 뜬구름이 스러짐이다)이라는 서산대사 게송을 인용, “큰 족적을 남긴 정치인이었지만 떠난다고 생각하니 인생무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국민을 위한 정치에 더욱 신명을 바치라는 게 고인의 뜻”이라고 강조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도 “정부는 김 전 대통령 국장을 한치의 소홀함 없이 최고의 예우를 갖춰 엄수했다”며 “김 전 대통령은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를 던진 만큼 김 전 대통령 국장을 계기로 국회는 대화와 상생의 장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한나라당이 DJ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나선 것은 DJ 서거정국 이후 행정구역 개편 등 정치개혁 방안, 9월 정기국회 정상화를 위한 여야 대화분위기 조성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한나라당은 아울러 김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 조문단을 접견하는 등 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남북고위급 접촉이 이뤄진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안 원내대표는 “북한은 특사조문단을 파견한 뒤 대통령을 면담하는 등 남북관계의 긍정적인 변화를 전망하는 계기도 됐다”며 “망국적 지역주의 극복, 초당적인 대화와 협력으로 국민에게 사랑받는 국회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도 김 전 대통령의 서거가 화해의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가하면서 “이 역사적 장면으로부터 화합과 통합이 바로 우리의 시대정신임을 다시 확인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제22차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통해 “저는 역사의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직감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국민들 사이에는 이미 이념갈등이 약화되고 통합의 흐름이 시작되고 있는데 유독 정치만이 이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도 많이 나왔다고 들었다”며 “저는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앞으로 국정운영에서 통합을 가장 중심적인 의제를 삼을 것을 천명한 바 있다.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이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며 “새로운 민주주의는 대립과 투쟁을 친구로 삼기보다는 관용과 타협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나아갈 길은 서로를 인정하고 대화와 합리적 절차를 존중하는 성숙한 민주주의”라면서 “이번 계기에 지역과 계층, 그리고 이념을 넘어 하나가 돼야 한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선진일류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또 “정치적 양극화와 경제적 양극화를 넘어서기 위해 대통령인 저부터 앞장설 것”이라며 “통합을 위해 꼭 필요한 정치개혁도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반드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옳은 길인 줄 알면서도 작은 이기심 때문에 정치개혁을 외면한다면 역사와 국민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며 “특정 정파에 유리하다, 불리하다를 넘어서 고질적인 병폐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것이 저희 확고한 신념”이라고 여야에 조속한 논의 착수를 촉구했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고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의 일부로 기억해야 한다”며 “대한민국, 그 기적의 역사를 이끌어온 전직 대통령들을 예우하고 존중하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의 권위를 세우는 일이고 곧 우리 스스로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을 김대중이라는 정치 거물의 ‘죽음’이 만든 일시적 ‘신드롬’이라고 치부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모처럼 사회적 관심사가 된 ‘화해’를 구두선에 그치게 하지 않도록 이를 구체화하는 실천적 노력이 전사회적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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