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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풀었는데 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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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위기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서의 이탈,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군사적도발, 위태위태해 보이기까지 했던 북한의 벼랑끝 전술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제대로 먹혀들었다. 특히 북한에 억류중이던 미국 여기자들에 대한 석방 감행은 북-미 양측이 모두 윈윈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데다 어찌됐든 표면적으로는 꽉 막혔던 대미관계의 물꼬를 트고 냉각됐던 한반도에 해빙기를 몰고 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 007작전에 가까운 긴박했던 클린턴 방북 뒷얘기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은 국제사회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특히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악의 축’ 발언 이후 양국의 관계가 악화일로에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서 발생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
그러나 지난 4일 각국 외교가는 충격에 휩싸였고 평양에 내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모습을 목격해야했다. 우리 정부는 물론 이명박 대통령조차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며칠전까지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기에 우리가 받은 충격은 메가톤급이었다.
더욱이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정상회담’에 준하는 북한의 의전 및 예우도 파격적인 것이었다. 북한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는 클린턴 전 대통령을 위해 백화원 영빈관에서 만찬을 열었다.
백화원 영빈관은 국빈을 위한 숙소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 등이 현직에 있을 때 이곳을 숙소로 이용했다. 연회에는 대미 핵심라인 등 북한의 핵심 인사들도 대거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강석주 외무성 제 1부상과 김계관 외무성 부상,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참석했고 강석주 제1부상은 북한 대미 외교사령탑으로 1994년 방북한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회담때도 동석했으며 제1차 핵위기 때 북미대화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김 주석 사망 이후 강 제1부상은 김정일 위원장과 대미교섭 등 중요외교사안을 결정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또 1994년 영변 핵시설 동결을 대가로 경수로발전소를 얻어내는 미·북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냈고, 2000년 10월에는 김 위원장의 특사로 미국을 방문한 조명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수행했다.
김양건 통일전선 부장은 대남공작의 책임자이지만 대미 외교정책에도 정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주역으로 그해 11월 서울에 왔고, 남한 정권이 바뀐 뒤 최승철 통전부 부부장 등 기존 대남 라인이 대거 숙청당할 때도 살아남았다.
김 부장이 김 위원장과의 면담 및 북한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 주최 만찬에 참석한 것을 두고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에 억류중인 현대아산 근로자 유모씨 문제, 북한에 나포된 ‘800 연안호’ 문제의 인도적 해결을 요청할 것에 대비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북한 입법부의 수장인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계관 외무성 부상 등은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차원에서,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수석 부부장은 미국 여기자 사건 처리의 최고 책임자로 배석했다.
◆ 4개월 준비 20시간성과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한 이후 다시 순안공항을 이륙할때까지 북한에 체류한 시간은 불과 20여 시간이지만 이같은 이벤트가 있기까지 양국이 공들인 시간은 4개월이 넘는다.
미 고위 관리들의 설명을 토대로 미국 내 언론들이 전한 협상 성사 과정을 보면 북한은 협상 과정에서 여기자 석방을 위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구체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여기자가 소속된 미국의 케이블방송 ‘커런트TV’를 소유한 앨 고어 전 부통령도 여기자 가족과 미국 정부 사이에서 연락 역할 등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이들은 전했다.
방북에 앞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오바마 정부 당국자들로부터 여러차례 브리핑을 받았으며 지난 1일에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함께 사는 워싱턴의 자택에서 브리핑을 들었다.
두 여기자의 석방을 위한 전기는 7월 중순 북한 당국이 허용한 여기자들과 가족간의 전화 통화에서 마련됐다.
이들은 가족과의 통화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이 직접 방문한다면 자신들을 풀어줄 용의가 있다는 북한 측의 의사를 전했다.
가족들은 이를 오바마 행정부에 전달했으며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이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이 임무를 맡을 용의가 있는지 타진한 것은 지난달 24~25일께라고 AFP통신이 전했다.
이에 대해 클린턴 전 대통령은 여기자들의 석방이 가능하다면 기꺼이 이 방문에 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고, 이후 오바마 행정부 관리들은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관을 통해 이뤄진 막후 협상의 진전 속도를 끌어올리는데 주력한 끝에 평양땅을 밟게 됐다.
◆ 남한, 북한, 미국의 손익계산서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이벤트가 있었으나 이후 우리 정부와 북한, 미국 측이 두들기는 계산기상의 숫자는 제각각이다.
우선 최대 수혜자는 북한이다. 국제사회의 그물망식 제재로 자칫 고립무원의 상황에 놓일 처지에 있었던 북한으로서는 나름의 반전카드를 얻어냈고 대외적으로는 북미 대결구도를 대화모드로 전환시키는 듯한 ‘이벤트 효과’를 창출해냈다.
외교가 안팎에서는 북한의 숨통을 조여오던 국제사회의 제재이행 속도와 강도가 일정정도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고, 무엇보다 건강이상로 인한 체제붕괴 가능성까지 점춰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신의 건재와 체제장악 능력을 다시금 과시했다.
올초 3남 정운으로의 권력이양설이 가시화됐을때만해도 북한의 체제붕괴는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고 잇따른 군사적 도발 등 이상행위 또한 붕괴설 확산을 막아보려는 북한 권력수뇌부의 몸부림으로 여겨졌다.
미국으로서는 정권 차원의 부담으로까지 연결됐던 여기자들을 극적으로 구출해내는데 성공함으로써 ‘실속’을 챙겼다. 자국민 보호를 최우선시하는 미국 대외정책의 기조를 가장 극적인 형태로 연출해냄으로써 세계 1등 국가로서의 위상과 철학을 국제사회에 과시하는 계기가 됐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대북 제재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온 미국으로서는 결과적으로 ‘채찍’의 효과를 스스로 희석화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이 핵포기를 확약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현재의 제재국면을 대화국면으로 전환시킨 듯한 ‘착시효과’를 일으킴으로써 국제사회 제재 이행의 강도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수반된다.
우리 정부로서는 이번 이벤트로 인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당초 이번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자국 여기자 석방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일찌감치 선을 그어왔고, 한.미간에도 긴밀한 공조전선을 구축해왔다는게 정부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번 방북을 계기로 북.미 양국간 대화국면이 추진되는 듯한 양상을 보이면서 또다시 한국 정부가 외교적으로 소외된 것 아니냐는 비판론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미국 여기자들의 석방으로 인해 북측에 130일 넘게 억류돼 있는 개성공단 직원 유모씨 문제가 전면에 부상해 정부로서는 난처한 상황에 직면했다. 《자세한 내용은 주간 시사뉴스 창간 21주년 358호에서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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