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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배신한 건 땅이 아니라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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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배신한 건 땅이 아니라 정부



평택시 서탄면 현지 르포…정부시책이 키운 빚더미 농촌






업개방과
농가부채로 농촌은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아니 몸살 수준을 넘어 회생불능의 중증환자가 다 됐다. 그러나 정부는 무대책이다. 농업개방은
피할 수 없는 대세고, 농업의 혁신을 이룩해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고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 그 결과가 지금의 농촌에 이르게 했다. 잘못은
정부가 하고 책임 부분에선 발뺌이다.


3,000만원 빚이 별로 없는 편에 속해

직접 농민들의 고충을 듣기 위해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의 소개로 지난 9월25일 경기도 평택시 서탄면 황구지리를 찾았다. 들판은 온통
황금 물결로 출렁였다. 논 곳곳에서는 가을걷이가 한창이었다. 누렇게 익은 벼와 곳곳에서 들리는 콤바인 소리는 마음을 풍성하게 했다. 그러나
황구지리로 들어가는 길에 회화리에서 만난 강경문(57) 씨는 “흉작도 이런 흉작이 없다”고 하소연이었다.

“벌써 2구간(1구간 1,200평)을 베고 왔는데 수확이 평년에 비해 80% 수준도 못 돼요. 품질도 안 좋아 쌀금 받기는 다 글렀지요.”

실제로 벼이삭을 살펴보니 여문 게 별로 없었다. 쭉정이도 많았다. 8월 내내 내린 비 때문이었다. 강씨는 농기계를 들여놓느라 진 빚 때문에
근심이었다.

“작년에 1,200만원에 이앙기를 들여놓고 올해는 700만원에 건조기를 들여놓느라 빚을 졌어요. 사람 구하기가 힘든 형편이라 기계를 들여놓을
수밖에 없어요. 기계값은 오죽 비싼가? 농촌에서 농사 안 지을 수도 없고, 비싸도 어째요. 울며 겨자먹기로 들여놔야지. 이거 정부에서 기계값
좀 안 내려주나? 그나마 나는 나은 편이에요. 기계가 없는 사람들은 아주 죽을 맛일 겁니다. 올해처럼 작황이 안 좋을 때는 아마 인건비가
더 나올 걸요.”

강씨에게 빚이 얼마나 되냐고 물었다. 그는 “별로 없는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3,000만원이나 됐다. 정책자금을 빌린 게 2,000만원,
농협 상호신용을 끌어 쓴 게 1,000만원이었다. 정책자금은 이자가 4%, 상호신용은 10%나 된다고 했다. 상호신용의 경우는 현행 대출금리와
비교할 때 폭리임에 분명했다. 그는 대출 받기 위해 집과 논을 담보로 잡혔다.

한국갤럽이 지난 5월 조사한 2003년 농가부채 현황 발표에 따르면 농가 1가구 당 평균 부채는 3,417만원. 이에 비하면 강씨는 적은
편이긴 했다.



정부,
농작물 피해 보상은 논외


강씨와 이야기를 마친 후 둑방길을 따라 차로 5분 정도를 달려 황구지리로 들어갔다. 황구지리는 옛 농촌의 모습 그대로였다. 마을도 조그마했다.
바로 맞닿은 금각2리와 합쳐도 130호가 채 되지 않았다. 황구지리만 따지면 55호밖에 되지 않는다.

도로변에서 풀을 베고 있던 김기훈(66) 씨를 만났다. 김씨는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올해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는 흉작이라 걱정이
태산 같았다.

“1,700평을 빌려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두 가마니 나면 한 가마니 주는 식이지요. 올해는 벼꽃이 필 때 비가 하도 많이 와서 반은
죽정입디다. 빚만 늘게 생겼소. 땅값, 비료값, 농약값, 인건비 제하면 뭐가 남겠소. 쌀 한 가마니에 2천만원이요 아니면 3천만원이요.
해봐야 5만5,000원이라고. 겨우 먹을 거나 떨어질까 모르겠네.”

사실 정부는 농업재해에는 어떤 실질적 대책도 내놓지 못 하고 있다. 현행 재해대책은 행자부 소관의 자연재해대책법과 농림부와 해수부 소관의
농어업재해대책법으로 이원화돼 있다. 이에 따라 상위법인 자연재해대책법의 운용이 재해로 인한 사회기반시설 복구 등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농업재해는 자연재해대책법에 의존해 소극적인 보조형식으로 지원되고 있다.

그나마 농어업재해대책법에 근거해서 지원되는 대상이 양수에 소요된 비용, 농약, 종묘, 비료대금, 유실 매몰 농경지 복구비, 이재민 구호,
학자금 면제 등의 비용을 보조하거나 지원하는 것으로 한정돼 있다. 농작물 피해와 그에 따른 소득감소 등에 대한 보상은 논외로 치고 있는
것이다.


빚만 키운 정부 정책

마을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신용조(37) 이장을 찾았다. 신 이장은 정미소에서 한창 기계를 손보고 있었다. 그는 황구지리 55가구 중에서
농사를 짓는 곳이 43가구라고 했다. 평균 연령은 66살. 농촌 인구의 고령화가 심각했다. 그는 “농업이 붕괴하면서 농촌공동체 자체도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농업정책 때문에 농촌이 망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농가부채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 이후 발생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급증하는 수입 농축산물에 대응하기 위해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으로 시설 현대화와 규모화를 추진했다. 이때 주로 30~50대 청장년층에게
57조원에 달하는 융자와 투자를 했는데, 이 돈이 IMF 사태와 저곡물가격으로 고스란히 빚이 된 것이다. 정부의 농업정책은 빚만 키우는
정책이었던 셈이다.

신 이장은 정부 방침을 따라서 영농법인을 설립했다가 2억5,000만원의 빚을 진 사람이 마을에 몇 명 있다고 했다.

“농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젊은층한테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경작면적을 늘리고 영농법인도 설립하도록 장려했잖아요? 영농법인은 종묘에서부터 모심기,
비료뿌리기, 수확하고 또 건조하는 일, 미곡처리하기까지 모두 총괄하는 형태였거든요. 그런데 그게 우리 실정에는 안 맞았던 겁니다. 금각2리
형들하고 황구지리 형들하고 다섯이서 법인을 세웠는데 IMF가 터지자 완전히 망했습니다. 그 형들은 연대보증을 서면서 대략 2~3억원씩의
빚을 지게 됐어요. 그 중에 마을을 떠난 사람도 있고 아직 지키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농업을 대형화하면 성공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전통적으로 소농형태인 우리나라에서 대농경영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도 대농으로 7만 호를 육성하겠다는 이야기를 정부에서 하더군요. 경작면적이 5ha 1만5,000평 이상이면 대농에 속하는데, 그 면적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우리 농민회에도 꽤 있어요. 그런데도 다들 먹고살기 힘들어서 허덕여요. 평택에서 3만~5만평, 많게는 7만평
농사를 짓는 친구도 있는데, 눈코 뜰 새 없이 농사일에 매달려 일을 합니다. 그렇다고 삶의 질이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거든요. 오히려 더
열악해지고 있어요. 근본적으로는 농업의 규모보다 농산물의 수입 개방으로 인한 가격의 하락이 문제입니다.”

신 이장은 농사를 1만평 가량 짓는다. 한 해 농사를 지어봐야 2,000여 만원의 수익을 올릴 정도라고 한다. 그가 가진 빚은 2억원.
빚 갚아나가기도 힘들 듯 보였다.


정부정책
믿었다가 파산한 장아무개 씨


옆 마을인 금각2리로 걸음을 옮겼다. 마을회관에 들러 장아무개(39) 씨와 장씨의 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1만평의 벼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부채는 없느냐고 물었더니 포기했다고 말했다.

“부채요? 부채 난 포기했어요. 망해서 포기했지요. 내가 한 3억원이 넘지. 다섯 명이서 법인을 하다가 망했어요. 1993년 3월26일
설립했는데 IMF 때 쫄딱 망했어. 가압류 때문에 파산신고도 안 받아주더라고요.”

우연찮게도 신 이장이 말한 옆 동네 형을 만난 것이었다. 장씨는 현재 마을회관을 임대해서 살고 있다고 했다. 농사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땅을 빌려서 하는 거란다. 그는 요즘 부인과 말다툼이 잦다. 사람을 배신한 농사를 포기하고 차라리 도시로 나가서 다른 일이라도 하면서 살자고
아내는 말하는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농사를 놓지 못 하겠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농사만 짓는 게 아니다. 생계를 꾸리기 위해 막노동도 하고 있다.

“나한테 농업은 이젠 아르바이트지. 망하기 전에는 직업이 농사였는데, 지금은 아르바이트가 돼버렸어요. 막노동이 직업이고요. 그러지 않으면
생활을 못 하는 걸 어째.”

장씨는 15년 전 처음 농사를 지을 때는 사정이 괜찮았다고 했다. 임금을 쌀로 받았는데 80kg짜리 쌀 10가마니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80kg짜리 쌀은 한 가마니에 8만7,000원이었다고 그는 기억했다. 그렇다면 쌀값은 15년 동안 40kg 기준으로 1만5,000원 남짓
오른 것이다. 상승 비율로 따지면 겨우 38% 정도 올랐다. 그러나 물가 상승률은 이와 비할 바가 못 된다. 그에 따르면 400~500만원
하던 콤바인은 현재 4,000~5,000만원이나 나간다고 한다. 기름값이나 비료값, 농약값 등 재료비와 인건비도 엄청나게 올랐다. 그는
“이런 현실에서 쌀 농사를 짓는 사람이 망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농촌
복지 현안 해결 시급


장씨의 아내는 아이들 문제가 걱정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 둘을 두고 있는데 교육여건이 너무 안 좋다는 것.

“초고속 인터넷도 안 되고 학원 차량도 안 들어오니 애들 공부도 못 시켜요. 우리는 궁여지책으로 전화모뎀 인터넷을 이용하는데 한달 전화비가
10만원이 넘게 나오더라고요. 없는 형편에 10원이라도 덜 쓰고 애들 공부시킵니다. 이러니 아이들을 둔 젊은 사람들이 버틸 수나 있겠어요?”

실제로 농촌은 어딜 가나 의료, 교육, 문화 등 복지 현안 해결이 시급하다. 따라서 전농은 정부부처가 단일한 ‘농촌복지특별법’을 제정하고
예산을 확보해 과감한 복지 정책을 시행해나가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장씨는 앞으로 5년 후면 마을 자체가 없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황구지리보다도 금각2리가 더 노인들이 많지요. 평균 70대 중반은 될 겁니다. 한 5년쯤 있으면 그 분들 다 돌아가시고, 젊은 사람들은
떠나가 버리면 마을이 없어지는 거지요.”

마을회관 건너편 집 부부가 비닐하우스를 한다기에 형편이 어떤가 알아보려고 했으나 집을 비우고 있는 탓에 대신 장씨에게 물어봤다.

“나는 하고 싶은 마음 없더라고요. 오이나 호박을 재배하면 값이 잘 나갈 때는 수확이 적고, 또 수확이 많으면 값이 안 나가고. 도대체가
불안해서 어떻게 농사를 짓나?”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은 정부에서 적극 권장한 것이었다. 시설재배를 하는 사람에 한해서는 대출도 쉽게 해줬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대 실패.
특히 유리온실을 하는 사람은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다. “비닐하우스는 1,000평에 1억원 정도 투자비가 들고, 유리온실은 최소한 10억원
이상이 드는데, 그것은 투기지 농사가 아니”라는 황구지리 신용조 이장의 말이 떠올랐다.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 농업예산을 전체 예산의 10% 수준까지 확충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기획예산처는 내년도 농림예산을 심의하면서
올해(8조7,146억원)와 비교해 오히려 7.4%나 삭감했다. 타들어가는 농촌에 물은 못 댈망정 기름을 끼얹는 꼴인 것이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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