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묘역 찾아 반성 "죄송하고 또 죄송"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처럼 '무릎 사과'
정강에 5·18 정신 명기, 국민통합특위 설치
DJ 정치 업적 연일 치켜세우며 호남 구애도

[시사뉴스 김영욱 기자]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호남을 찾아가 5·18 민주화 운동을 왜곡한 얼룩진 과거에 대해 사과했다.
비대위원장 자격으로 처음 광주를 방문한 김종인 위원장은 '민주화의 성지'에서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인정하며 과거 지도부와는 차별화 된 행보로 호남 민심을 두드렸다.
김 위원장은 당의 5·18 민주화운동 폄훼, 신군부 시절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한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의미로 보수 정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호남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그는 국립 5·18 민주묘역을 참배하면서 "소위 참회와 반성이 오늘의 호남의 오랜 슬픔과 좌절을 쉬이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5·18 민주 영령과 광주 시민 앞에 부디 이렇게 용서를 구한다"며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정치권에서는 김 위원장의 '무릎 사과'를 놓고 반나치 운동가이자 서독 총리를 지낸 빌리 브란트를 연상케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브란트 전 총리는 1970년 12월 나치 정권 시절 피해를 입은 폴란드를 찾아가 바르샤바 게토 봉기 기념비 앞에서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참회한 바 있다.
김 위원장도 브란트 전 총리의 발언을 인용해 "너무 늦게 찾아왔다. 벌써 1백번이라도 사과하고 반성했어야 마땅한데 이제야 그 첫걸음을 떼었다"며 "작은 걸음이라도 나아가는 것이 한걸음도 나아가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빌리 브란트의 충고를 기억한다"고 되새겼다.
최근 공개적으로 호남을 향한 구애 메시지를 자주 내놓고 있는 김 위원장의 '호남 달래기'는 통합당의 외연 확장 기조와 맞물려 있다. 통합당이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선 호남 끌어안기를 통한 국민통합을 실현해 전국 정당으로 거듭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김 위원장의 친(親)호남 행보도 이런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단계별로 추진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우선 정강·정책에 5·18 민주화 운동을 명기하도록 해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인정하는 것은 물론 민주화 운동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30년 넘게 소유했던 광주·전남당사를 매각한다는 결정도 내렸다. 광주·전남당사는 전두환 정권 시절 민정당 당사로 썼던 건물로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을 거쳐 물려받았지만, 호남 달래기에 나서면서 군사정권의 유산을 유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당 안팎의 지적을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호남 출신인 정운천 의원을 위원장으로 둔 국민통합특위도 가동했다. 특위에서는 호남출신 비례대표 의무 배정, 현역의원 '호남 명예지역구' 배정, 호남지역 당 연수원 건립 등 통합당의 호남 진출 전략과 연계한 추진 과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당의 해묵은 과제였던 5·18 유공자에 대한 예우 강화 법안도 통합당이 검토하고 있다. 법안에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나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책을 강화하고, 유공자에게 연금 지급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폭우로 인한 홍수 피해가 발생한 호남 지역을 민주당보다 먼저 찾은 것도 김 위원장이 호남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호남을 대표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연일 정치적 업적을 치켜세우고 있다.
김 위원장의 호남 밀착 행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로 정점을 찍을 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 취임 이전부터 탄핵 사태에 대한 당의 입장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 시점을 빠르면 취임 100일을 전후로 한 시점이나 박 전 대통령의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는 올 연말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통합당의 외연 확장을 위한 공략 대상으로 호남, 수도권, 청년층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호남을 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고 한다. 호남 민심 공략이 수도권에서 30%가 넘는 호남 출향민들의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당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는 시점에 통합당 입장에선 껄끄러운 탄핵 문제나 5·18 문제를 서둘러 '정리'하려 하는 것도 당의 외연 확장에 있어 발목을 잡았던 고질적인 장애물을 없애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