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삼성 합병 의혹 등에 대한 검찰 수사를 두고 외부 전문가들이 기소 여부 등을 판단하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가 26일 열린다. 검찰이 이번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보고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법처리 방향에 대한 판단도 함께 내려질 예정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검찰청 산하 수사심의위는 이날 현안위원회를 소집해 이 부회장 등의 공소제기 여부에 대한 심의기일을 진행한다.
심의기일은 오전 10시30분에 시작해 오후 5시50분께 종료될 것으로 예정됐다. 다만 논의가 길어져 예정 시간을 초과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 부회장은 직접 참석하지 않을 계획으로 전해졌다. 외부에서 수사심의위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변호인단이 참석해 현안위원들을 설득할 예정이다.
수사심의위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에 대해 수사 적정성, 공소제기 여부 등을 논의하는 자문기구다. 검찰개혁 작업의 일환으로 지난 2018년 설치됐고, 대검 산하에 있지만 법조계,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등 검찰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점이 특징이다.
심의기일에 참여할 현안위원 15명은 법조계, 학계, 시민단체 등 각 분야 인사들 150명에서 250명으로 이뤄진 수사심의위 위원들 중에 선발된다. 이들 중 최소 정족수인 10명이 심의기일에 출석한다면 현안위는 예정대로 열린다.
심의가 진행되면 현안위원들은 이 부회장과 검찰 양쪽이 제출한 의견서를 바탕으로 논의에 착수한다. 양측은 약 50쪽 이내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날 심의기일에서는 검찰 수사팀과 이 부회장 측 등의 의견진술이 진행돼 있다. 현안위원들과의 질의응답도 가능하다. 사건 기록이 방대한 만큼 구두 진술이 현안위원들의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높다.
현안위는 논의를 마친 후 이 부회장 등의 기소 여부를 과반수 표결로 결정한다. 과반수가 동의해야 결론이 정해지며, 만약 찬성과 반대가 동수를 이룬다면 수사심의위의 결정은 없는 것으로 종결된다.
이날 수사심의위 결과와 무관하게 향후 검찰 기소가 이뤄진다면 삼성은 물론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은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계는 큰 우려를 갖고 있다.
◇이재용 기소 결정땐 삼성 대외신인도 추락 우려…바이오 투자 등 '직격탄'
위기 극복을 위해 바이오 산업과 해외건설 프로젝트 등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포스트 코로나’ 전략이 논의되는 가운데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의 직접적인 대상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물산의 경우 대외 신인도가 떨어지면서 바이오 산업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과 해외 건설 프로젝트 수주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업게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4공장 증설 등을 위해 당장 올해부터 2023년까지 3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고 이 가운데 1조원가량은 외부 조달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자금 조달을 위한 유상증자나 공모사채 발행에는 금융감독당국의 증권신고서 수리가 필수적인데, 검찰 기소로 인해 회계 이슈가 다시 부각되면 이를 담보할 수 없게 된다. 또 신용등급이 떨어지면서 은행 차입과 사모사채 발행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또 삼성물산이 현재 수주를 추진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키디야 복합 엔터테인먼트 개발 사업'(9조원 규모)과 '네옴 스마트시티 개발 사업'(500조원 규모) 등이 사법리스크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해외 공사 프로젝트의 경우 회사나 경영진의 재판 내역을 입찰 요건으로 요구하는 게 업계 관행이고, 특히 이는 수주 심사의 고려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투자자-국가간 분쟁(ISD) 소송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국부 유출도 우려된다.
엘리엇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승인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최소 7억7000만달러의 피해를 봤다’며 2018년 7월 ISD 소송을 제기했는데, 검찰 수사팀이 주장하는 의혹이 엘리엇의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검찰 기소가 현실화할 경우 ISD 소송에서 엘리엇에 유리한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4년 넘는 사법리스크...무죄 나와도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 몫
수사심의위에서 불기소 권고를 내릴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지만, 반드시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결론을 낼지도 미지수다.
수사심의위의 결론이 삼성이 원하는 대로 이뤄지고 이를 검찰이 수용해 불기소로 가닥이 잡히거나, 재판 끝에 '무죄'가 선고되더라도 오랜기간 사법리스크에 시달려온 피해는 고스란히 이 부회장뿐 아니라 삼성의 몫이 될 전망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2016년 11월 이후 무려 3년7개월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법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까지 검찰에 무려 10차례나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구속영장 실질심사만 3번이나 받았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과잉 수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검 기소에 따른 재판은 무려 80차례 열렸고, 이 가운데 이 부회장이 직접 출석한 재판은 1심에서만 53차례를 포함해 총 70여차례에 달했다. 특히 오전에 시작된 재판이 다음날 새벽에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재판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문제 등과 관련한 검찰수사도 1년 8개월이나 이어지고 있다. 50여차례의 압수수색과 430여차례의 임직원 소환조사가 진행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오랜 기간 수사를 끌어온 검찰이 책임 회피를 위해 '판결이나 한번 받아보자'는 식으로 기소하는 것은 오히려 더 무책임한 일”이라면서 "나중에 무죄가 선고되더라도 기업의 피해는 회복 불가능하다"고 우려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은 실질적으로 총수 역할을 해 온 지난 6년 중 첫 2년여를 제외한 이후 4년여를 사법리스크에 시달려온 셈"이라며 "검찰이 또다시 비슷한 사안에 대해 기소를 강행한다면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