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유한태 기자]‘호남맹주’ 박지원 무소속(전남 목포)의원이 대법원에서 사실상 무죄 취지 판결을 받아 벼랑 끝에서 되살아나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다. 4·13 총선 가도에 최대 걸림돌을 제거함으로써 4선 고지에 ‘정치적 날개’를 달게 됐다. 특히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박 의원은 ‘통합’을 명분으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양쪽의 러브콜까지 받았으나, 그는 “무소속의 길을 가면서 야권 통합에 전력하겠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무소속 출마를 고수하는 박 의원의 입장과 무관하게 야권재편의 새로운 변수로서 박 의원 영입 경쟁도 뜨거워질 전망이다
대법원이 18일 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무소속 박지원 의원 사건을 파기환송한 것은 또한번의 ‘반전 드라마’였다. 지난 2004년 대북송금사건 상고심 선고 당시 2심의 유죄판결을 뒤집고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됐던 때와 비교하더라도 좀더 극적이었다.
◆DJ정부 현대 비자금 사건 때도 정치생명 끝날 뻔
김대중 정부 시절 핵심 실세였던 박 의원은 지난 2003년 노무현 정권 출범 초기 진행된 이른바 ‘대북송금’ 특검으로 기소됐다. 당시 박 의원은 1·2심에서 현대로부터 150억원 상당의 비자금을 건네받고, 남북정상회담 대북 송금 과정에서 직권을 남용했다는 혐의 등으로 징역 12년이 선고됐다.
그러나 지난 2004년 대법원은 박 의원 사건에서 징역 1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150억원 상당의 비자금 수수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당시 대법원은 금품 전달자 등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파기환송심에서 박 의원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혐의가 유죄로 인정, 징역 3년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됐다. 하지만 1·2심에서 유죄로 인정됐던 핵심 혐의가 무죄로 판결됨에 따라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구속 수감 중이던 박 의원은 노무현 정부 말기인 지난 2007년 사면·복권됐다. 그는 이후 2008년 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전남 목포에서 당선, 민주당에 복당해 정치 인생을 다시 이어나갔다.
그러나 박 의원에게 또 다시 위기가 닥쳐왔다. 검찰이 지난 2012년 9월 저축은행 관계자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박 의원을 기소했기 때문이다.
1심 재판 결과까지만 해도 상황은 순탄했다. 1심 재판부는“공여자들 진술의 합리성과 객관적 상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증거 부족을 이유로 박 의원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에 들어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당시 재판부는 박 의원이 오 전 대표를 면담하고 수사 무마 등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유죄로 판단, 박 의원에게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000만원을 선고했다.
‘대북송금·비자금 수수’사건 때와는 달리 무죄가 선고된 1심이 뒤집힌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유죄 판결에 대해 박 의원은“(일부 유죄 판결에) 정치적 이유가 있다곤 생각하지 않지만 고등법원에서 분명히 오판을 했다고 믿고 있다”며“당장 상고해 다시 한 번 사법부 심판을 받겠다”고 밝혔다.
‘대북송금사건’에 이어 다시 한 번 자신을 대법원 판단에 맡긴 것이다. 이번 사건은 대북송금사건 때보다 좀 더 드라마틱하게 전개됐다.
유죄가 인정된 항소심 선고 얼마 뒤인 지난해 8월 대법원이 9억여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72·여) 전 의원 상고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확정하면서 이 같은 판단이 박 의원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날 박 의원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더욱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며 모든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박 의원이 또 다시 대법원 판단을 통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대법원 관계자는“12년 전 대북송금사건 당시 핵심 혐의가 대법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되고, 이번에도 금품 수수 혐의 전부 무죄 취지로 파기된 것을 보면 박 의원과 대법원의 ‘묘한’ 인연에 눈길이 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인연이 다음에도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박 의원은 지난 2014년 6월 라디오 방송과 일간지 등과의 인터뷰에서 ‘언론과 국민, 정치권에서 지금 인사는 비선라인이 하고 있다는 의혹을 가지고 있다’는 취지의 내용과 비선라인으로 ‘만만회’를 지목해 박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1년 6개월째 현재 1심 재판이 진행중이다.
3차 공판이 오는 3월 7일 예정돼 있는 이 사건의 경우 증인들이 법정에서 어떻게 진술하느냐 등에 따라 유·무죄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박지원 “더민주 복당·국민의당도 합류요청”…무소속 출마 고수
더불어민주당은 무소속 박지원 의원이 상고심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받자, 복당을 요청했다. 박 의원은 그러나 즉각 고사했다.
더민주 김성수 대변인은 이날 박 의원의 상고심 판결 직후 낸 구두논평을 통해“박지원 의원이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은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면서“우리당을 오랫동안 지켜왔던 분으로 무죄 취지로 판결이 난 만큼 당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복당을 요청했다.
김 대변인은 특히 “김종인 대표는 최근 박지원 의원과의 통화에서 무죄로 파기 환송될 경우 당으로 다시 돌아오셨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과 가까운 김영록 의원도“이렇게 가다가는 이번 총선에서 야권은 필패한다”며“당에 다시 온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당의 복당 요청 결정을 환영했다.
김 의원은 최근 문재인 전 대표에게도 박 의원의 복당을 건의한 바 있다. 하지만 박 의원은 더민주 복당 요청을 거부했다.
박 의원은 이날 판결 직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더민주, 국민의당에 있는 동료의원들로부터 정치활동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며 국민의당 측에서도 합류를 요청받은 사실을 밝혔다.
그는 “더민주에서 김종인 대표, 박영선 비대위원 등 여러 분들이 전화로 '반드시 승리해 19일에 꼭 더불어민주당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저는 제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대로 무소속의 길을 가면서 야권 통합에 전력을 다 하겠다”며“민주당이 먼저 중통합으로 정리되고 양자구도가 되면 국민의 힘으로 범야권 단일화 운동이 시작될텐데, 저도 거기에 동참할 생각”이라고 무소속 출마를 고수했다.